명절을 보내고 나서.
일전에 결혼의 본 모습에 관한 얘기를 쓴 적이 있다.
명절을 보내고 나서 리얼 그대로의 결혼 2를 쓰기로 했다. 명절이란 결혼생활의 난코스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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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이 저기 남쪽나라라서 명절은 오래 보내고 오는 편이다.
3박 4일 잘 보내고 돌아왔는데, 남편과 조금 다투었다. 남편은 명절 때 고향을 다녀오면 후유증을 앓는다. 그간 못 본 부모님을 만난 후의 반가움, 그리고 다시 떠나는 걸음의 무거움, 부모님에 대한 감사, 죄송함이 막 뒤엉켜서인지 평소 같지 않은 예민함으로 미운 말을 내뱉었다.
부부간에도 규칙 이라는 것이 있다. 절대로 상대방의 가족, 특히 부모님에 대한 비난을 하지 않는 것.
그렇게 되면 그 싸움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간에 서로 쌓아올린 믿음과 배려, 가치라는 것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오만 정이 뚝 떨어진다.
(싸운 내용은 너무도 유치해서 언급할 수조차 없다. 결국 2시간 만에 냉전을 종료하고 화해의 포옹을 했지만 너무 유치해서 말을 할 수가 없다.)
결혼이라는 것은 참 어렵다.
나는 그저 한 남자를 사랑한 것 뿐 인데 그래서 더욱 가까이 있고 싶어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몸을 던졌다. 근데 결혼이라는 제도는 한 남자를 선택하는 순간 같이 딸려오는 패키지 같은 사람들이 있다. 생전 모르던, 길가다가도 마주치지 못했던 남편의 식구들, 친척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학교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동네에서 이웃들을 알게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혼인도장 쾅쾅 찍는 순간 ‘가족’이라는 바운더리에 묶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족 안에서 내 역할과 지위라는 것은 아직도 여성들에게 불리한 것들이 많다. 시대가 바뀌어도 결혼제도라는 것은 주로 과거의 것들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명절 때 왜 시댁먼저 가고 친정은 나중에 가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사위는 가서 아무것도 안하고 먹기만 해도 되는데 며느리는 부엌에서 시어머니를 졸졸 쫓아다니며 음식을 돕거나, 뭐 시키실 일이 없는지 분위기를 살펴야 한다. 우리 시어머니는 일하고 온 며느리를 백방으로 배려해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댁, 시댁의 외갓집을 가게 되면 엉덩이가 가장 가볍기를 기대되는 사람은 며느리이다. ‘나도 우리 집에서는 귀한 딸이라고~~’ 속으로 외치는 몇몇 순간들.
나보다 어린 남편의 동생과 그리고 어린 사촌들에게 왜 ‘도련님’,‘아가씨’하며 말을 높혀야 하는가. 남편은 내 동생과 사촌들에게 편안하게 이름을 불러도 되는데.
내탓이오 내탓이오. 모든 건 결혼 한 탓이다. 명절연휴가 길면 머해. 혹시나 시간이 날까 들고간
책은 한페이지도 못읽었고 술을 안마시니 술을
좋아하는 시댁 식구들 틈에서 음료수를 홀짝
거리다 6살 8살먹은 조카들 만화보는데 끼어서
니들이 내친구다 하는 시간들.
긴 연휴.. 여행을 훌쩍 떠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 일이다.
그래도 새로 생긴 가족들은 소중하다. 6년간 만나도 만날 때마다 다시 어색해지는 사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 고주알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 거리감과 가끔 밀려오는 적막감에 숨이 막히는 순간들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생판 모르던 ‘가족’들의 존재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나를 배려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우리 시어머니를 존경하는 이유도 그러하다. 절대 며느리를‘부려먹으려고’ 한 적이 단연컨대 없다. 최대한 내가 신경 쓰지 않게 해주신다. 그래서 나는 시어머니가 너무 좋아서 시댁에 가서 3박 4일을 보내고 오는 것에 대해 불평을 한 적이 없다. 물론 불편하다. 무척. 내 집도 아닌 데다가 시댁에서 3박 4일이라니.
그래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다녀온다.
그런 착한 마음(?)으로 다녀온 나에게 이런 저런 비교를 하며 미운 말들을 내뱉는 남편이 어찌나 얄미운지. 명절 때만 되면 남편의 효심은 하늘을 찌르고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질투가 날 정도로 강해진다. (그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갔다와서 며칠간 말이 없어지거나 예민해지는 후유증을 앓는다. 이번엔 그것이 지나쳐 나에게 상처되는 미운 말을 했다.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결혼을 현명하게 보내려면 어떠한 약속들이 필요하겠다는 것을 말이다.
* 미리 인정하고 약속해야 되는 것!
1. 사위는 아들이,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 반대로 장모,장인이 시어머니,시아버지가 나를 이제껏 길러준 부모님에게 향한 마음이 똑같이 될 수 없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자식이 아닌데 자식처럼 대한다, 부모가 아닌데 부모처럼 대한다는 거짓말은 애초부터 거짓말이다.
2. 1번을 인정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조금씩 내어드리는 것이다. 마음을 내어드리는 척하면서 비난하지 말고 인정할 것은 미리 인정하고 그다음에 조금씩 내 마음을 움직여보는 것이다.
3. 절대로 부부 싸움에 상대방의 가족에 대한 비난이 있으면 안된다. 선을 넘는 행동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섭섭한 것들이 서로 생길 수 있다. 장인장모는 사위에게, 시부모는 며느리에게. 그럴 때 중간에서 잘 조율해야 한다. 그 말을 그대로 전하는 짓은 시한폭탄을 던지는 것과 같다. 들어서 나쁠 말은 전하지 않는다. 누구도 비난을 듣고 반성하는 사람은 없다. 칭찬을 들었을 때만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5. 그리고 절대로 남과 비교하지 말자. 그건 모든 관계를 깨뜨리고 불행으로 가는 첫 번째 열차이다.
사위는 백년손님인데.. 다른 사위는 살갑던데.. 다른 며느리들은 일찍 와서 장도 본다던데..
다른 시어머니는 명절에 일찍 보내주는데..
시작하게 되면 결국 피터지는 싸움 뿐이다.
회사에 어떤 분은 말했다. '내 인생의 황금기는 결혼 후 남편땜에 같이 캐나다에서 3년을 산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내 황금기였어. 친정, 시댁 아무도 신경안쓰고 오로지 우리 둘만 즐기면 됬으니까. '
그러면 좋겠지만, 서로에게 소중한 가족 안에 잘 안착하려면 부부가 서로 도와줘야 한다.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서로를 가족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한다.
화내고 투정부려도 늘 받아주는 부모님, 못난 점이 있어도 감싸주는 내 자식이 아니다~!!
말 한마디에 금이 가고, 행동 하나하나에 감시받는 그런 사이라는 말이다.
미숙한 인간이다. 완벽할 수는 없다. 겸손하고 또 겸손하고 서로 도와주자. 부부간에 단단하면 그 어떤 일들도 다 겪어 낼 수가 있다. 중요한 것은 시댁도, 처가도 아닌 바로 두 사람의 믿음과 배려이다. 시작이 두 사람에게서 시작되었듯이 매순간 서로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고 도와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