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반쪽 '우리 엄마'
딸이 가난할 때, 병들었을 때,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 외로울 때, 엄마는 딸의 고통보다 천배로 앓는다. 온몸이 찢어지는 아픔을 삭여 내는 것이다.
- (신달자 저, ‘엄마와 딸' 중에서)
‘엄마와 딸’이라는 책을 읽고 우리 엄마를 생각했다. 나와 엄마는 무척이나 닮았고, 정말 친한 모녀 사이이다. 내가 엄마에게 기쁨이 되는 딸이기도 하겠지만, 엄마는 나 때문에 많이 울었을 것이다.
때로는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엄마는 안 겪어봐서 몰라!’ 라고 매몰차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당사자인 내가 더 아프겠지. 엄마는 안 겪어 본 일이니 잘 모르겠지 라고 생각한 건 나의 착각이었다. 책에서 이야기 한다. 딸이 아프면 엄마는 천배로 앓는다고…
불의의 교통사고로 온 몸에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40번이 넘는 수술을 견뎌낸 이지선씨. 그녀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랑 엄마랑 바꿀 수 있다고 하면… 만약에 말이야…
그럼 엄마는 바꿀 수 있어?”
“그럼, 지선아, 천번 만번 바꾸지. 할 수만 있는 거라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바꿀 수 있어.”
(‘지선아 사랑해’ 중에서)
나는 묻지 않아도 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아플 때 대신 아파해주고 싶다는 것을.
난자채취를 하는 날은 쉬어야 하기 때문에 보통 휴가를 낸다. 힘든 시술이 끝나고 돌아오면 엄마는 늘 맛난 점심을 차려놓는다. 시술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땐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퉁퉁 붓고, 무슨 말이든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엄마 나 오늘은 좀 혼자 있고 싶네. 내일 봐요’
라고 문자를 보내놓으면 엄마는 그냥 와서 밥만 먹고 가라고 몇 번을 설득한다. 그런데 정말로 단 몇 시간만이라도 너무도 혼자 있고 싶었다. 엉망이 된 기분을 혼자 삭이고 싶은 그런 날 말이다. 집으로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일단 자고 싶은 그런 날.
오늘은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해도, 엄마는 기어이 우리 집에 와서 설거지라도 하고 간다. 내가 정말로 괜찮은 건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 일 것이다.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오늘 혼자 있고 싶다고 보낸 문자 한 통이 얼마나 엄마의 가슴을 후벼 팠을까. 나는 거기까지 생각이나 한 것일까.
계속 시술이 실패가 되자, 엄마는 나만큼, 아니 나보다도 더 속상해 했다.
‘왜 안 되는 거니.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때로는 엄마의 이런 극대화된 관심과 걱정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이유는 나만 힘들면 되는데 엄마까지 힘들게 하고 있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 문제는 나 혼자 해결하고 싶었다.
이런 건 나누고 싶지 않다. 엄마를 속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 엄마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도리어 더 속상해지기 때문이다.
침과 뜸 치료를 받으려고 한의원을 열심히 다닐 때도 엄마는 항상 같이 가 주었다. 오랫동안 엄마는 수족냉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여러 병원을 다녀 봐도 호전을 보이지 않았다. 한의원을 같이 다니면서 엄마가 한의사에게 아픈 곳을 이야기했는데 나는 너무 놀랐다. 엄마는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다리는 찬 얼음물에 담그는 느낌으로 시린 게 허벅지까지 올라와요. 수족 냉증 뿐 아니라, 손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잠을 잘 못자서 머리도 늘 아프고, 어깨가 아파서 가방도 못 매요.”
심지어는 너무 아픈 데가 많아서 몇 개는 생략하고 말하기도 했다. 단 한번이라도 엄마의 고통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나 했을까.
그러면서도 꼭 마지막엔 내 부탁이다.
“선생님, 우리 딸 꼭 잘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너무 안쓰러워서 그래요.”
엄마는 결혼시키면 끝인 줄 알았는데 죽을 때까지 끝이 아니라고 말했다. 영화 ‘장수상회’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자식은 가슴 어딘가에 묵직하게 들어앉은 돌덩이 하나라고.
시집보내면 걱정은 이제 끝일 줄 알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요렇게 속을 끓이게 할 줄이야. 엄마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독히도 끈끈한 모녀관계에서 나는 딸 역할만 해보고, 엄마 역할은 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엄마가 되 봐야 진짜 철이 든다고 하는데, 나이는 먹었어도 아직 철이 들려면 멀었다.
내가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나는 엄마가 나에게 무조건적으로 기댈 수 있는 존재이듯이 나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그리고 진심으로 바라건대, 엄마가 내 걱정은
조금 접고 마음이 편안했으면 좋겠다.
엄마 사랑합니다.
* 작년에 엄마에게 선물로 준 시를 소개합니다.
내 영혼의 반쪽 엄마
누군가는 물었지.
둘이 쌍둥이냐고
눈, 코, 입 아무리 보아도 닮은 구석이 없는데
묘하게 둘이 똑 닮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환하게 웃는 모습.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맑고 밝은 태도
당신이 나에게 인생을 통해 알려 주었네
넘어져도 일어나는 법을, 절망 속에서도 웃는 법을.
험난한 세상 속 지구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건,
이토록 건강하게 하루를 감사하게 보낼 수 있는 건
나를 늘 뜨겁게 바라봐 주는 당신의 보살핌이었음을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되었네.
지금의 내 나이 34살,
9살 딸과 6살 아들을 아끼고 아껴가며 키웠고
당신의 젊은 날을 바쳐 ‘나’라는 꽃을 피웠네
그 헌신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은 영원히 영롱하다는 것.
이 지구상에 나와 똑 닮은 영혼의 반쪽
그 사람은 바로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