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느낌표
엄마는 젊었을 때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로부터 혹독한 시집살이를 당했다. 강원도에서 애 둘을 데리고 내려와서 찬 냇가에서 이불빨래하고 부모님들 밥상 차려드리고 동갑인 시누이에게 모진 말을 들어가면서 다 참고 인내한 세월이 있다.
한 번도 시부모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다른 작은 어머니들은 그런 시집살이에 남편과 크게 다투고 명절에 안내려 온적도 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적이 없었다. 그저 참고 참고 또 참았다. 나는 딸이니까, 엄마의 속 시끄러운 마음을 다 안다.
이제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순해지고 늙으신 할아버지, 할머니.
다른 며느리들은 이전 세월을 보상이라도 하듯 이제 명절에 잘 안내려온다. 와도 명절 당일날 아침에 빼꼼히 와서 밥 한 끼 먹고 가버린다. 하지만 엄마는 꾸준히 명절 전날에 가서 음식하고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빼먹은 적이 없다.
지난 명절에도 혼자 미리 내려가 음식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엄마에게 목욕을 시켜달라고 했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영 씻는게 시원찮으셨던 모양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때를 밀어드리고 나왔더니 할머니가 돈 10만원을 들고 와서 말했다.
고맙다. 니가 최고다.
그리고 또 서랍을 열더니 할머니 환갑 때 맞춘 루비 반지를 꺼내더니 ‘이거 너 줄게’ 라고 하셨단다.
엄마는 평생 할머니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들어본 게, 그리고 소중한 반지를 딸도 아닌, 첫째 며느리도 아닌 엄마에게 주었다는 것에 너무도 감동했다고 말했다.
나 이번에 어머님한테 감동 받았어.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씀하셨거든.
할머니도 엄마에게 감동받아 안하던 말과 행동을 하셨고 엄마도 할머니의 말에 감동받아 행복해
보였다. 두 사람은 감동을 주고 받았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감동 뿐이다.
절대로 누굴 비난해서는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격을 받은 마음을 다시 공격으로 대응한다. 그리고 그 싸움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감동과 사랑이 없는 비난, 권위적인 명령은 몸을 움직이게 할 수는 있으나 절대로 마음까지 움직일 수는 없다.
정은길님의 '나는 더 이상 여행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책에서 나온 사례이다.
평이 좋지 않은 후배를 엄청 챙기는 동료가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동료 : 나 걔 싫어해.
은길님: 싫은데 어떻게 잘해준다는 거야?
동료: 개가 이상한 짓 할 때마다 나는 칭찬하고 챙겨주고 밥 사주고 그랬어. 근데 그랬더니 걔가 조금씩 변하더라. 내가 뭘 기대하고 잘해준 건 아닌데 옛날보다는 나아지더라고.
책에서의 사례는 별로 좋아하지 않은 후배에게 미운 놈 떡하나 더 준다는 마음으로 잘해주었더니
그 후배의 마음이 움직여 변했다는 말이다.
만약 훈계하고 비난만 했다면 절대로 마음까지
움직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데일 카네기는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에서 말한다.
인간의 행위에 관하여 중요한 법칙이 하나 있다. 이 법칙을 지키기만 한다면 친구는 점점 많아질 것이며 항상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 법칙은 아래와 같다.
늘 상대방에게 중요감을 갖도록 하라. 인간은 누구나 주위 사람들에게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다. 자기의 진가를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마음으로부터의 아낌없는 칭찬은 무궁무진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거의 예외없이 자기를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를 칭찬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법이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이다.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거나 짜증을 낸다고 해서 바뀌는가?
엄마가 잔소리 한다고 공부하는가? 사람의 마음이 움직일 때는 오직 감동받았을 때이다.
짜증은 짜증으로, 비난은 비난으로, 사랑은 사랑으로 돌아온다.
그 사람을 바꾸고 싶을 때는 먼저 이해해줘야 한다. 그러면 바뀌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비난과 훈계를 들으면 사람 마음엔 방어장치가 작동한다. 자기 방어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감동밖에 없으며 사람을 뒤 흔드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