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설날이 즐겁다

by 남궁은호

결혼을 하고 나서 나의 명절은 180도 바뀌었다.


나는 일 년에 제사를 7-8개 정도 지내는 집안의 손녀였다.

처음 7살 무렵 비행기를 타본 것도 아빠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가며 나를 데려갔기 때문이다.

우리 집안은 그렇게 제사에 진심이었다.


어릴 적, 명절 전날은 할머니댁에 가서 머물며

엄마와 큰엄마들의 전 부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 옆에서 한입씩 먹고 상차리는데 숟가락을 놓는 잔심부름을 했었다.


그 기름진 것과 알맞게 먹게끔 할머니는 늘 자식들이 오기 전에 막걸리를 담아두곤 했었다.


기름내가 진동해서 머리 아플 때면 사촌들과 논밭에 뛰어나가 놀거나 얼음이 어는 설날즈음엔 논 위로 얼음썰매를 타며 놀았다.

도시의 나는 그때마다 시골에서 노는 것이 마냥 재밌기만 했다.



성인이 되고선 명절 전날은 시골에 가기 싫어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기름진 전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안 가고 안 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가끔 약속을 못 잡고 끌려가게 되는 때엔 전 부치려 팔을 걷었지만 나이 든 나의 큰엄마는 시집가면 안 하고 싶어도 해야 한다며 말렸다.



지금은 만나지 않는 큰엄마에게 이것만은 말해주고 싶다.


큰엄마, 나 제사 안 지내는 집에 시집갔어요 “




제사 안 지내는 집은 명절 전날 안 가도 되고 확실히 명절이 즐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 전날 동네 산책을 하며 떡볶이도 먹고 겨울 풍경도 즐기고 한산한 동네도 느끼고 연휴가 이렇게 풍요로운 것이었나 싶다.

그냥 심심하면 엄마집에 가서 엄마 좀 돕거나 억지로 전 안 부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조상 잘 만난 후손이 아닌가!


어쩌면 우리 친가가 대대로 조상님의 식사를 잘 챙겨 후손인 나에게 이런 복을 내려줬을 수도 있다.

그래도 제사는 안 지낼 거다.



다만, 까치설날 잠들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며 놀리던 큰아빠들이 그립긴 하다. 잠잘 때 몰래 밀가루 묻히며 놀리던 그들은 이제 늙거나 다 땅에 묻혀있지만,



나는 이제 명절이 즐겁다. 확실히 즐거운 연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