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나는 나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입장을 더 많이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상대가 기뻐하면 그걸로 충분했고,
내가 고생하더라도 좀 더 이해하려 애썼다.
그런 내가,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달라졌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우선하다 보니
스트레스와 부담이 점점 쌓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에게로 갔다.
그래서 이제,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해 쓰기로 했다.
운동을 하든, 맛있는 걸 먹든,
잠을 푹 자든.
그리고 나서 아이가 돌아오면,
그때 충전해둔 에너지를 아이에게 쓴다.
그렇게 하니 화낼 일도,
괜히 지치고 피곤할 일도 거의 없어졌다.
요즘엔 동네 아줌마들이나
셔틀버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굳이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헛소리를 들을 틈을 아예 없애버렸다.
친구들도
정말 편한 사람들과만 가끔 연락한다.
요구가 많던 시댁과는
연을 끊다시피 했다.
남편의 쓸데없는 말이나 요구도
이젠 그냥 무시한다.
나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할 거다.
그러니 너도, 나에게 더 바라지 마.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과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 아이는
꽤 안정감을 찾았고,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그거면 됐다.
누군가는 나를
이상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 내가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최근 본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어느 대사가 마음에 깊이 남았다.
“사슴이 사자를 피해 도망가면 쓰레기야?
소라게가 소라 안에 숨으면 겁쟁이야?
다 살려고 그러는 거잖아.”
그래,
나는 그냥 살고 싶어서 도망친 거다.
나르시시스트들로부터 멀어진 건
비겁함이 아니라
내 삶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어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분명히, 좋은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