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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Ma Jul 21. 2016

 [過去] 과거의 단편

꼬꼬마의 글공간



*

"자~ 주목! 집에 가고 싶은 인원이 있으면 일어납니다!"


부모님과 작별 후 306보충대의 강당으로 안내한 조교가 첫마디를 땐다.


"건강이 안좋다. 오늘 입대가 후회된다. 얼른 일어납니다. 집에 보내드립니다"


강당은 방금 전 작별의 시간을 가진 밖과는 다르게 공기가 무겁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이왕 들어왔는데.. 머리도 밀었는데.. 버티자는 각오로 무게를 버텨본다.
주변에는 온통 모르는 사람뿐이고 친구와 함께 입대한 사람들 마저 혼자 온 듯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조용하다.
버릇처럼 자꾸 주머니를 만지작거린다.
놓고 온 휴대폰이 허벅지에서 계속 진동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과 습관에 손이 갈 곳을 잃는다.
강당의 무대 위에서 조교의 설명이 이어지지만 지금 생각나는건 오로지 담배뿐이다.


'아... 춥다...'


그렇게 생각을 닫는다.
이제부터 나의 생각은 없다.
이제부터 나의 두뇌는 없다.
그저 시간이 빨리 가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벗으라면 벗고
입으라면 입고
먹으라면 먹고
하지 말라면 안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입었던 군복을 탈의 후 활동복을 입고 침낭에 누워있었다.
언제 군복을 입었던 건지... 난로 없는 내무실의 11월은 너무... 춥다.


'1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녀와 이별하지 말고 올 것을.. 
그녀를 생각해준다 하며 선택한 결정에 후회를 하며 깊은 잠에 빠진다.




**

"아직 둘이 학생이고 군대도 갔다 와야 되니 둘이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녀의 어머님은 그녀의 휴대폰을 몰래 보게 되었고 연애를 눈치채셨는지 바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안그래도 한동안 계속 고민해왔던 문제였다.
긴 시간 힘들어할 그녀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생각해왔고 헤어지라는 권유는 그 선택의 버튼을 눌러주는 발단이라고 한다면 거짓일까.
그녀를 위한다지만 보지 못하는 두려움으로 진작에 선택하고도 떨쳐내지 못한 나의 비겁함이다.


"우리 헤어지자..."
"왜 군대 때문이야?"
"응 미안..."


기다린다고 매달리는 그녀를 매몰차게 밀어냈다.
그녀는 흐느껴 울었고 나는 잔인하게 돌아서며 모든 것을 끊어냈다.




***

"저기요 저기요 일어나세요"


해도 뜨지 않은 새벽 팔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다.
낮에 설명을 들었던 불침번이다.
새벽시간 적의 침입이나 비상시를 대비해 경계를 서며 자는 군인들에게 상황을 전달해주는 중요한 역할이며 졸거나 딴짓을 하다 걸리면 영창에 갈 정도로 큰 일이였다.
20분의 군복을 입는 시간과 1시간 30분의 불침번 시간.. 다시 탈의 후 자는 시간 20분... 앞으로 거의 매일 이 짓을 해야 한다는데 졸음에 미쳐버릴 것만 같다.
자고 있는 인원을 파악하고 희미한 불빛이 켜져 있는 내무반 가운데 의자에 앉는다.


'우라질... 씨발...'


20명 남짓 자고 있는 내무반 가운데 홀로 뜬눈으로 어둠 속에서의 시간이 더디기만 하다.


'외롭다... 힘들다... 죽고 싶다...'


혼잣말이 늘어난다.
그녀의 얼굴... 함께 했던 추억... 끊임없이 떠오르지만 막을 방도가 없다.
대체 며칠을 보내야 여기서 자유를 얻을까.
아까 입대 전 입고 온 옷과 소지품들은 상자에 넣고 집으로 보내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받고 울지나 않을지 걱정이 된다.
본격적인 훈련은 자대를 가면 시작된다던데 ... 계속 이런저런 걱정만 한다.


'아... 자고 싶다'


"저기요 교대요"


한 명은 복도에 서서 불침번을 보는데 45분씩 교대를 한다.
새벽시간 멍청이 서있으려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오늘과 같이 아주 긴 하루들이라면 버틸 수 있을까.




****
306보충대에서의 3일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본 부대를 가기 위한 중간 다리 역할인 듯했고 본격적인 훈련은 자대 훈련소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같이 입소한 동기들 전부 강당에 모여 호명을 하는 순으로 차례로 밖의 버스에 올라탄다.
나 역시도 버스에 올라탄다.


'히터 좀 꺼주지 겁나게 졸리네...'


그렇게 추운 11월 따듯한 히터 바람에 잠에 빠진다.


"이런 씨발세끼들! 일어나!"
"내려 이 개세끼들아"
"자고 있어? 미친놈들 내려! 너네 다 뒤졌어!"


눈을 뜨기도 전에 덩치가 큰 조교의 손은 나의 어깨를 휘어잡고 나를 버스 가운데로 끌어당겨 밖으로 밀쳐낸다.


'아... 머야...  여긴 머야 대체...'


큰 배낭을 메고 있던 동기들과 함께 연병장에 열을 맞춰 무릎을 꿇고 서로의 눈치만 본다.


"소곤대면 다 죽여버린다!"


거인 같은 조교의 말에 다들 숨죽이고 두뇌가 자기방어를 하듯이 나는 다시 생각을 비운다.




*****
힘겨운 훈련이 지속된다.
재식, 총검술, 화생방, 각개전투, 교양 등등
훈련은 견디지만 잠을 많이 자지 못하는게 힘들다.
그놈의 불침번... 근데 돌아가며 야외 경계 근무도 서야 한다는데 추워서 어떡할지... 난 추위가 징그럽게 싫다.
훈련 시간, 불침번 시간, 모든 시간에 그녀가 떠오른다.
편지를 받는 동기들이 부러웠고 헤어진게 자꾸만 후회가 된다.
시간의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입대 후 얼마나 지났는지 잊어갈 즈음 조교가 오늘의 야간 경계근무 명단을 내무실 게시판에 붙인다. 

내 이름이 보이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일어나 경계야"


새벽 불침번의 기상 신호에 군복을 입고 지시대로 조교에게 가자 더 두꺼운 외투를 꺼내주며 입으라고 한다.
내복, 군복, 깔깔이, 외투, 두꺼운 외투까지 입고 총을 들고 조교와 함께 야외로 나간다.


'어? 눈 오네...'

"닥쳐라 중얼거리지마"
"죄송합니다..."


경계 근무로 가기 위한 길은 많은 눈이 쌓여있고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뽀드득 거리는 소리가 난다.
위병소에 도착 후 거치대에 총을 올려 조준 자세를 취하고 앞만 바라본다.
눈이 총구의 끝에 하나씩 떨어지고 앞에 있는 이차선 도로에는 가끔 자동차가 한대씩 지나간다.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린다.
춥고... 외롭고... 맘이 저리지만... 그렇게 서서 졸음을 참으며 앞만 바라보고 국가를 위해 나를 내리고 억지 애국자가 된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너 내가 닥치라 했지!"


조교의 훈계에 입을 닫고 아련히 과거의 모든 조각을 미친 듯이 끄집어내어 지루함을 달랜다.
시선은 한없이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고 시간이 가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눈은 그칠 생각이 없이 쏟아지고 눈앞의 모든 시야가 흑과 백으로 뒤섞인다.
그렇게 군대에서 며칠을 보냈는지 생각하기가 괴롭다.

손이 너무 시려 장갑 속에서 조교 몰래 주먹을 쥐고

발이 너무 시려 군화 속에서 끝도 없이 꼼지락댄다.

몸과 마음이 전부 시리지만 뒤에 서있는 조교의 감시 아래서 정면만을 응시한 채 고통을 참는다.
총구의 끝에 눈이 떨어져 녹기를 반복한다.


'하아...'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오고 총구의 끝이 차갑게 얼어 눈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할 때쯤 발가락 끝이 얼어 간질간질하다.
당신을 떠나보낸걸 잘했다고 위안하다가
당신을 떠나보낸걸 미치도록 후회했다가
겪었던 모든 삶의 순간들을 전부 생각하다
그렇게 첫 야외 위병근무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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