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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Ma May 18. 2016

[夢裏]죽음을 보는 소년

꼬꼬마의 글공간


*

그때는 미쳐 몰랐다.

모든 것은 타인에게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는 것을... 조금 더 조심했어야 했다.

야심한 밤 답답함에 공원을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나를 향해 신호를 위반한 차량이 멈추지 않고 달려온다.

차량이 시선에 점점 가득 차고 죽음의 공포로 분비되는 엄청난 양의 아드레날린은 시간이 멈춘 듯 천천히 느껴지게 만든다.

흔히 얘기하듯 과거의 조각들이 빠르게 스쳐 흘러간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

언제부터였을까.

어렸을적 유난히 악몽을 많이 꾸었다.

꿈의 종류는 매우 다양했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꿈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떤 꿈이든 아침에 일어나는 행위를 망설이게 만들 정도로 잠든 세상은 현실처럼 다가왔고 공포스러웠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수업시간에도 졸음에 잠이 들면 꿈을 꿀 정도로 항상 꿈속의 세상은 가까이에 있었다.

새벽에는 악몽에 잠이 깨면 어머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겨 울었다.


"엄마... 자꾸 무서운 꿈을 꿔요..."


그럴 때면 어머니는 나의 등을 토닥거리며 안심만 시켜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항상 잠자리는 일찍 들었다.

어머니는 저녁 9시면 내가 잠을 자도록 강요했고 이유는 학교생활을 위해서는 일찍 자야 된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난 꿈을 꾼다는 불안감에 일찍 잠들지 못했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을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 적이 있다.


"어제도 아기가 이상한 꿈을 꿨나 봐요..."

"무슨 꿈인데?"

"그... 왠지 불안해지네요 무슨 일이 나는 건 아닌지..."

"괜찮아 지금까지 별일 없었자나 내가 내일 시댁이랑 장모님댁에 전화 돌려보리다"


그때는 부모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꿈을 꿀까 불안에 떨다가 잠에 빠져들어갔고 다음날 꿈을 꾸지 않았다면 하루의 시작이 상쾌했다.

아마 꿈을 꾸었지만 기억을 전혀 하지 못했던 날이였을 것이다.


초등학생이라서 이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아주 가끔 악몽을 꿀 뿐이였고 얘기한다면 마치 내가 이상한 사람이 돼서 따돌림을 당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나의 환경에 무슨 커다란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였다.

화목한 가정, 많은 친구들 그리고 즐겁게 다니던 태권도 학원까지 내가 생활 속에서 공포를 느껴 꿈속으로 반영될 만한 요소가 거의 없었기에 유독 무서운 꿈만을 꾸는게 마치 나만 다른 세상에서 온 듯했다.



***

그렇게 꿈속의 세상이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며 나이가 들어 중학생이 되었다.

그때 당시 인터넷이라는 것이 많이 보급되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기억나는 모든 꿈에 내용들의 풀이를 전부 찾아본 것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나를 한참 동안 패닉 상태로 만드는 꿈들 중에서 아주 생생한 것들만 찾았다.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총을 맞거나 전쟁터에 나가거나 피를 흘리는 내용 따위의 꿈들이였고 해석은 다양했다.

좋은 일이 생길 징조입니다.

나쁜 일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혹은 불안함 심리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는 뻔한 풀이들만 있었다.


"행운이 있겠습니다" 또는 "불행이 있겠습니다" 따위의 풀이를 원한 것은 아니였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끝없는 악몽이 벗어나고 싶었고 꿈에 대한 풀이는 그러다 보니 알게 되었던 것뿐이었다.

지독한 꿈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너무 흔했다.

꿈을 꾼다는 것은 잠을 깊숙이 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푹 자려면 일찍 잠들거나 규칙적인 생활, 운동 그리고 잠들기 전 따듯한 우유 따위를 마시라는 뻔하고 뻔한 해결책이였다.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모든 방법들을 전부 해보았지만 괜한 짓들이지 그것이 결코 해결책으로 가는 것은 아니였다.

그럼 여기서 두 가지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하나. 정말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꿈을 꾸는가?

아마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모든 꿈이 전부 기억나지 않으니 아침에 일어나 꿈을 꾸지 않았다고 착각했던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둘. 꿈 풀이의 행운이나 불행은 반영되는가?

이 부분은 나이가 들어가며 점차 엄청나게 신경을 쓰게 되어버렸지만 그 당시에는 악몽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에만 빠져있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다행히 어머니를 따라 어렸을 적부터 다닌 교회에서 나는 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있던 탓인지 악몽이 정신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흔히 예배를 시작하기 전 자주 부르는 찬양에서 일부 가사가 귀에 좋은 느낌으로 흘러들어왔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꿈을 꾸리라 주에 영 임하면...  어?'


무언가 나의 꿈들에게서 특별한 의미가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항상 내가 특별하기에 꿈을 많이 꾼다고 말씀하셨다.



****

내가 살던 아파트 1층 출입구에는 항상 이웃 할머니 한 분이 의자에 앉아 계셨다.

인사성을 강조하셨던 아버지 덕에 나는 할머니와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드렸다.

어렸을 적부터 몇 년을 그렇게 할머니께 인사드리며 많은 친분이 생겼지만 결국 언제부터인가 보이시지가 않았다.

궁금해 어머니께 여쭙자 슬픈 대답을 들었다.


"얼마 전... 돌아가셨어..."


그러자 문득 몇 달 전에 꾸었덧 불길한 꿈이 번쩍였다.

그 꿈은 아주 생생하였고 공포였다.

정확하게 기억이 났고 잊을 수 없는 악몽이였다.

그리고 그럴 듯 아닐 듯 큰 불길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꿈의 행운이나 불행 따위가 이렇게 크게 누군가가 죽을 정도로 크게 반영되거나 예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됐을뿐더러 절대 인정할 수 없는 것이였다.

근데 자꾸만 진정되지 않고 불안했다.


'설마...'


그 할머님은 나에게 큰 의미였다.

매일을 그곳에 계시며 매일을 나와 만났고 인사를 나누었고 담소를 나누었고 용돈을 주신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불안한 마음 때문에 나의 꿈 따위가 반영됐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였다.

그렇게 된다면 왠지 나 때문에 돌아가신 것만 같았고 한동안은 슬픔이 가시질 않았다.


이전까지는 꿈을 악몽으로만 생각하고 그것을 꾸지 않는 방법만 생각했다면 이번 일은 나의 생각을 전환하게 되는 계기 정도일 것이다.

나는 꽤 낙천적이였기에 그렇게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렸어도 일상생활을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물론 만성 피로에 시달렸지만 어머님의 큰 도움이 뒷받침 되었다.



*****

하루에 꾸는 꿈은 수없이 많았다.

저녁에 잠들고 하나의 꿈만을 꾸는 일은 없었다.

수없이 많은 영화가 찍히듯 여러 꿈들이 단편소설처럼 이어졌고 그중에 기억나는 것은 한두 가지 또는 깨는 순간 머리 속에서 소멸되었다.

학교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졸다가 잠이 들어도 꿈은 찾아왔다.

악몽의 수위가 높을 경우 잠에서 깨며 순간의 발작이 책상을 덜컹거리게 하거나 짧은 신음을 뱉게 하여 창피했던 적이 적지 않았다.


여기서 꿈이 특별해진 두번째 사건이 이어진다.

저녁에 잠이 들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꾸었던 그 불길한 꿈을 비슷하게 꾸었던 것이다.

똑같은 꿈을 꾸게 되는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

다만 그 불길한 꿈과 비슷하게 흘러갔던 내용이 또다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꿈을 꾸고 일어나 학교를 가기 위해 어머니와 밥상에 앉았다.


"엄마... 제가 어제 꿈을 하나 꾸었는데요... 그게..."


얘기를 전부 들으신 어머니는 그 꿈이 단번에 불길한 것임을 눈치채신듯했다.

바라본 모습에서는 눈빛이 흔들렸다.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그냥 꿈이니까"


애써 나를 안심시키시고는 다시 식사를 하고 평범한 하루를 시작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숙제를 하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수단이 있는데 불길한 꿈의 풀이가 무엇인지 한번 찾아보면 될 일이 아닌가?

바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으로 풀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가까운... 지.. 인이... 심하게 다치거나... 죽... 어? 뭐?'


말도 안 되는 풀이를 믿을 수 없어 또 다른 풀이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분명 잘못된 풀이라 생각했지만 마찬가지였다.

허탈함보다는 불안함이 더 커졌다.

혹시 나의 꿈 때문에 누군가가 해를 입는다는 것은 엄청난 죄책감을 불러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할 수는 없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그렇구나라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수도 없었다.


두어 달이 지났을 무렵 나를 잘 챙겨주시던 삼촌이 하늘나라를 가시게 되었다.

입원해 있었다는 사실을 부모님은 나에게 숨겨오셨던 것이다.

항상 과자를 사오시고 장난감, 용돈 외에도 나에게 유독 큰 따스함이 되어주셨던 삼촌의 빈소에 찾아가자 그 우라질 놈의 꿈이 생각났고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통곡하며 울었다.

이웃 할머님과 삼촌의 빈소 앞에서 떠오른 꿈과 휘감싸오는 불길함 이 세 가지가 섞여오는 공포는 이상하리만큼 하나인 것 같았다.

분명 큰 불행이 있다면 커다란 행운도 있을 터인데 점점 꿈속의 세상이 현실에 악하게 다가오는 것은 무서운 일이였다.

왠지 내가 악을 몰고 오는 악마의 존재로 느껴졌다.



******

그렇게 중학교 시절 두번의 큰 사건은 꿈이라는 것이 나에게 때어놀 수 없는 존재이며 조심해야 되고 불행을 막을 수 있다면 막아야 되는 것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꿈 풀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돼지꿈, 똥꿈 따위의 행운에 관심을 가져 복권이라도 당첨되는 해피엔딩이어야지만 두번의 큰 충격 탓인지 불행에 초점이 맞춰졌다.

가끔 행운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어른이 돼버린 지금까지도 만원 한번 주어본 적이 없다.

꿈 풀이는 매우 어려웠다.

사람, 사물, 건물, 배경, 날씨 등은 반드시 무언가를 의미하며 행동, 사건, 상황, 대화 등 여러 요소들을 집합시켜 꿈이 나타내는 것을 해석해야 했다.

그렇기에 풀이되는 꿈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었고 해석하는 전문가에 따라서도 다른 풀이가 나오기도 한다.


그럼 여기서 두가지 큰 난관이 생기게 된다.


하나. 불행이 찾아오는 꿈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많이 어렵지는 않았다.

여러 풀이를 찾다보니 어떤 요소들이 나쁜 것인지 그리고 어떤 상황과 맞물릴 때 불행으로 다가오는지 대강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두번의 불행을 준 그 꿈 외에는 대부분 작은 행운이나 불행을 의미하여 현실의 반영 정도가 느껴지는게 거의 없을 정도로 미미했다.


둘. 불길함을 암시하는 꿈을 꾸었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부모님이나 친분이 큰 친구 등에게 조심하라고 일러주는거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보다는 무언가라도 해야 되고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이 지나가며 오랫동안 커다란 불행이 오지 않았고 점점 무뎌져 갔다.



*******

그렇게 끝이 났다면 좋았겠지만 어김없이 꿈은 나를 계속 찾아왔다.

고등학생이 되고 학업에 집중하게 되며 꿈 풀이에는 관심이 멀어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의 연속이고 악몽에 대한 두려움보다 잠을 자고 싶다는 욕구로 잠자리에 잘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가고 똑같은 일상을 보내며 학교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귀가하고 바로 침실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이빨들이 바스러진다.

혀로 이빨을 이리저리 확인하지만 바스러진 조각들은 입속을 떠돈다.

성한 이가 하나도 없이 입속에 바스러진 이가 가득하다.

손에 부서진 조각들을 뱉어낸다.

고통은 없지만 극도의 공포감이 감싸온다.

다시 혀로 입속을 이리저리 만져보자 이빨이 없는 잇몸이 느껴진다.

눈물을 흘리고 흐느끼며 뱉어낸 조각들을 다시 입속으로 넣는다.

혀로 바스러진 이를 잇몸에 밀어 넣으며 원상복구되기를 바라지만 조각들은 그저 하염없이 입속을 떠돈다.


'이빨이... 이빨이... 이빨이... 아...'


극도의 긴장과 공포감으로 무서움에 떨며 통곡한다.

되돌릴 수 없을 것만 같다.

다른 생각은 하나도 없다.

모든 초점은 오로지 입, 입속, 이빨... 그렇게 부질없어진 조각들을 전부 뱉어내며...



눈을 뜨자 완전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일어나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못 했다.


'아 씨발... 또...'


커다란 불행을 가져왔던 그 꿈이 또다시 비슷하게 찾아왔다.

그렇지만 일상생활을 멈출 수도 불행을 막을 힘도 없기에 부모님이나 친한 친구들에게 간접적으로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꿈이 반영되려면 언제가 될지 모르게에 생각날 때마다 불안했고 일상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또 무뎌져갔다.


"아들 할머니가 좀 아프시데 이따 병원 갈 거니까 어디 나가지 말고 있어"


주일 아침 어머니는 무거운 말투로 나를 깨웠다


"어디가 얼마나 아프시데요?"

"가서 보면 알아 아버지 점심때 오전 일 끝내고 오시면 같이 가자"


그냥 연세가 많이 드셔 자연스럽게 기력이 왔다 갔다 하기에 아픈 것으로 생각하고 병원을 찾아갔다.

힘없이 침대에 밀착되어 누워있던 할머니의 얼굴에서 검은 어둠이 보였다.

입을 열지 못하시고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얼마 전에 꾸었던 거지 같은 꿈을 다시 상상하게 되었다.


'아... 이게 아닌데...'


도저히 누워있는 할머니의 침상 앞에 서있는게 힘들어 복도로 나와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어머니가 나오셨다.


"아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에요 그냥 할머니가 아프신게 속상해서..."

"너 때문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고"

"예?"


어머니는 다시 병실을 들어가시고 한적한 병원의 복도는 조용했다.



********

집으로 돌아와 생각했다.

무슨 연결의 고리들이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할머니의 얼굴에 보였던 어둠을 무엇이였을까.

피부색이 검은건 아니였다.

마치 빛이 비치지 않는 어두운 방안에 있는 것처럼 암흑 속에 누워있는 느낌이였다.

숨겨져있는 단서들을 찾는다면 분명 지금까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던 악몽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을 것만 같았다.

가까운 지인에게 해가 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직감적으로 떠오르는 꿈과 불길함들이 연결되어 있고 할머니에게서 본 어둠도 나에게 알려주는 신호가 아닐까.


다음날 선생님께 하소연하듯 매달려 할머니에게 매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아침부터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의 담임 선생님께 찾아가 소중한 할머니가 아프시다는 것과 내가 매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심각하게 어필하였다.


"어머님께 잠시 전화할 거니까 교실로 가있어"

"아... 어머님한테 말씀드리는 건 좀..."

"왜 불만 있어? 그럼 그냥 수업 열심히 들을래?"

"아닙니다! 교실에 가있겠습니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야간 자율학습이 시작되기 전 선생님은 나를 복도로 불렀다.


"오늘부터 야간 자율학습 하지말고 병원 가 단 할머님 나으실 때까지만이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당장 가방을 싸고 할머니가 있는 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맙소사... 역시나 어머님이 와계셨다.


"너 누가 야간자율학습 빼고 병원 오라고 했어"

"죄송합니다... 그래도 전화로 허락하신거..."

"꿈 때문에 그래?"

"아뇨... 그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끝없는 악몽의 시간을 함께 있으셨던 어머니는 대충 짐작을 하신듯했다.


"병실 들어가 그래도 왔으니 할머니 뵈야지"


무서운 꿈속의 세상을 버틸 수 있게 해준 커다란 기둥 같은 어머니의 존재에서 슬픔이 느껴졌다.

꿈속의 세상에서 벗어나 두려움에 떨면 항상 나를 따듯하게 안아주시고 눈물을 흘리시던 사랑이 없었다면 아마 진작에 정신병이라도 생겼을 것이다.


병실을 들어가 침상 옆에 앉아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아주 깊은 잠에 빠져계셨고 얼굴을 바라보자 아직도 어둠은 사라지지 않았다.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도 닦이지 않는 허공의 어둠에 대한 존재는 마치 저승사자 같이 느껴졌다.

그 후 며칠 동안 찾아간 할머니는 계속 꿈속에 계셨다.

간절한 바랬다 일어나시기를...


반복이 시작되었다.

악몽, 학교, 병원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무서운 꿈으로 들어가기를 한 달 정도 되었을까.

학교 수업을 듣고 있는데 담임 선생님이 불렀다.


"가방 싸서 일단 집으로 가봐"

"예? 왜요?"

"할머님이 안 좋으신 갑다 얼른 가라"



*********

유독 악몽을 많이 꾼다.

그 꿈들을 현실과 연결시킬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분명 꿈속의 이야기가 무언가를 암시한다고 믿기도 한다

운수 대통의 꿈이라면 좋은 꿈이 분명하고 그것이 현실에서 이뤄진다면 큰 행운일 것이다.

만약 그게 큰 불행이라면 반대로 꿈을 꾼 자는 불길한 인간이 될 것이다.

꿈을 많이 꾼다고 해서 모든게 현실로 반영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잠든 세상의 이야기가 큰 불행을 암시한다고 해서 무조건 현실과 연결시켜 꿈이 예지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큰 행운이나 큰 불행이 연속으로 멈추지 않고 일어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 커다란 재앙이지 않을까?


할머니는 다행히 돌아가시지 않았지만 악화되어 혼수상태에 빠지셨다.

어두운 방안의 책상에 앉아 메모장을 펴고 꿈과 현실의 연결고리들을 적으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괜한 어거지식 연결이였는지... 정말 연결이 되어 있는지... 단서도 많이 부족했고 증거도 없다.

단지 내가 꾸는 꿈과 느끼는 직감 그리고 일어나는 사건만 가지고는 확정 지을 수 없다.

그리고 어차피 죽을 운명의 사람이라면 내가 꿈을 꾸었다고 해서 운명을 거스르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이 복잡하고 답답함이 밀려온다.

때마침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할머님은 좀 괜찮으시냐?"

"아직 어떻게 될지 몰라, 넌 머하냐 답답한데 지금 공원이나 나와라 얘기나 좀 하게"

"지금? 엄마한테 허락맡고 나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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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해몽이나 글의 내용들은 실제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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