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진정한 구세주
1번 구세주가 2번 구세주들에게 우리를 인수인계 해주고 떠났지만 아직까지도 완전히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정말 도난방지용 휠넛 키가 없어도 교체를 할 수 있을지, 그리고 내 차에 딱 맞는 사이즈의 타이어를 가지고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하지만 외관은 볼품없어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프로였다. 내가 키가 없다고 이야기하자마자 그런 것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나에게 나중에 집에 가면 일반 휠넛으로 바꾸라고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가게 안쪽에 들어갔다 오더니 사이즈에 맞는 타이어가 있다고 했다. 비용은 80불인데 자기네는 현금만 받는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물론 이런 곳에서 카드를 받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사실 평소에는 그 정도의 현금을 들고 다닐 일이 없지만 여행 중이라 어느 정도 미국 달러를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내가 문제없다고 답을 하자 앞에 들어온 차가 끝나면 바로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차 말고도 이미 차가 한 대 더 들어와 있었다. 무엇이 이상해서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차 주인은 웃통을 벗고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것처럼 Fxxx, Yo Man, What the fxxx are you talkin' about, Mother Fxxxer과 같은 말을 연발하고 있었다. 카메라와 비트만 있었다면 뮤직비디오를 찍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리듬감 넘치는 쌍욕이었다. 물론 무서웠지만 먼 곳을 바라보며 태연한 척했다. 곧 수리가 끝났는지 차 주인은 구세주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도 수화기 너머로는 계속 신나게 욕을 하며 어디론가 떠났다.
우리 차례가 되자 젊어 보이는 형 1이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몇 시간 전에 견인차를 기다리면서 인터넷에서 찾아본 것과 같이 형 1은 능숙하게 도난방지용 휠넛보다 약간 큰 소켓을 망치로 쳐서 휠넛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는 소켓에 렌치를 연결한 후 휠넛을 풀려고 하였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계속 헛돌고 말았다. 형 1은 'What the FXXX'을 외치며 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이번에도 휠넛은 풀리지 않았다.
나는 순간 긴장이 되었다. 이때가 이미 밤 11시에 가까워졌을 때였다(아시다시피 타이어는 오후 6시경에 터짐).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타이어를 못 고치는 것은 아닐까 긴장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그들은 프로였다. 이게 안 빠지니 다른 방법으로 타이어를 빼낼 수밖에 없겠다며 뭐라고 뭐라고 말을 하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차에 달려있는 채로 바꿔야 한다는 것 같긴 했는데, 차에 달려있는 채로 바꾸든 차를 뒤집어서 바꾸든 어쨌든 바꿀 수만 있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나 싶었다.
형 1은 그 방법은 시간이 꽤나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120불을 받아야겠다고 하였다. 캐쉬 온리, 오케이? 라는 친절한 부연 설명과 함께. 이 먼 길까지 함께해 주신 장인 어르신과 그 지인분은(*) 이 놈들이 분명 그냥 할 수 있는데 조금 더 돈을 받아내려고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던 고치기는 해야 했고, 뭐 80불이든 120불이든 캐나다의 물가와 비교해 본다면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이라 형 1에게 알겠다고 하였다.
(*) 참고로 앞서 글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나는 견인차를 타고 오고, 장인 어르신과 그 지인분은 메릴랜드 로컬이신 그 지인분의 차를 타고 여기까지 와주셨다. 따라서 애초에 견인차 아저씨가 나를 어디로 끌고 가지는 못했을 것 같지만, 그래도 그 어두운 길을 가다 보면 온갖 잡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자 형 1은 이것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며 형 2를 불러왔다. 형 2는 형 1보다 관록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형 2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 전에 자기가 한 번 풀어보겠다고 하였다. 형 1은 괜히 힘 빼지 말라고 하였지만 형 2는 다시 소켓을 망치로 쳐서 휠넛을 돌려보았지만 역시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형 1은,
그 거봐 내가 안된다고 했잖아. 이거 지난주에 들어왔던 차랑 똑같아.
그거 기억나?
그것도 X같이 안되어서 XX 고생했잖아.
라고 하였다.
참고로 크라이슬러가 차는 거지같이 만들지만 휠넛은 잘 만드나 보다. 나도 왜 휠넛이 안 풀렸을까 궁금해서 나중에 유심히 살펴보니 이 휠넛의 몸통은 빙글빙글 돌아가게 되어있어서 키를 사용하지 않고 소켓을 찍어 넣어 돌리면 헛돌게 되어있었다. 이것을 보면서 나는 만약 다음번에 차를 사야 한다면 차는 현대차를 사고, 도난방지용 휠넛은 크라이슬러에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아버님들은 아직까지도 이 놈들이 돈을 더 받으려고 안 풀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냥 안 풀려서 못 풀었다고 생각한다.
(**) 2013년 액센트 수동을 타 본 이후 현대차에 반하고 말았다(https://brunch.co.kr/@hohohyo/87)
형 2마저 실패하자 본격적으로 다른 방법으로 타이어를 빼내기 시작하였다. 어디선가 망치와 긴 바를 가져오더니 힘으로 타이어를 벗기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타이어를 가는 것은 난생처음 보아서 엄청 신기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아버님들은 '허허, 이거 70-80년대에 우리가 타이어 갈 던 방법이네' 하면서 신나 하셨다. 예전에는 이렇게 많이 했다며 저 통속에 들어있는 것이 비눗물인데 비눗물을 계속 발라가면서 긴 바로 타이어를 밀어서 빼는 것이라고 하였다. 저거 계속하다 보면 '뻥'하고 타이어가 빠진다고 옛 추억을 떠올리셨다.
옛날 생각나네... 우리도 왜 타이어 끼려고 저거 뉘어놓고 위에서 뛰고 그랬잖아
형 1과 형 2가 한 십여 분 정도 고생을 했을까. 어느 순간 '뻥'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의 아버님들은 그거 보라며, 오랜만에 듣는 소리라며, 드디어 빠졌다며 또다시 신나 하셨다. 드디어 뺐으니 이제 새 타이어, 아..., 중고 타이어를 달 차례가 되었다. 나도 구경하고 싶었는데 형들이 시키는 대로 차에 들어가서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었다가 뺐다가 해야 해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결국 천신만고 끝에 타이어를 교체할 수 있었다. 형들도 다 끝나서 신이 나 보였다. 형 1이 이거 봐라, 내가 쉽지 않다고 했지? 너라면 할 수 있겠어?라고 물어보았다. 형 그런 것을 왜 물어봐요... 당연히 못하니까 여기 왔지... 이번에도 고마움의 표시로 팁을 포함하여 130불을 쥐여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20불을 쥐어주고 싶었지만 잔돈이 없었다.
형들은 캐나다까지 조심히 가라며 인사를 해주었고 나와 장인 어르신은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하니 이미 12시가 다되었다. 이렇게 장장 6시간 동안의 대장정이 마무리가 되었다.
다음 날 예정대로 북쪽으로 올라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매우 찜찜한 점이 있었다. 아무리 임시로 단 타이어라고는 하지만 형들이 달아 준 타이어를 보니 중고도 그런 중고가 아닐 수 없었다. 타이어의 마모 상태를 보니 적어도 5~6만 km는 달린 타이어가 분명해 보였다. 형들은 아마도 여기저기의 타이어 가게에서 교체하고 나온 타이어들을 공짜로 받아다가 급한 사람들에게 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형들은 공짜로 타이어를 얻어다가 장사를 하고, 급한 사람들은 한밤 중에도 저렴하게 타이어를 교체하고, 지구는 쓰레기가 줄어드니 이것이야 말로 지속가능경영의 모범사례가 아닐까 싶다. 그것을 증명하듯 우리가 형들을 뒤로하고 떠나는 와중에도 그 한 밤 중에 타이어를 고치려고 들어오는 차가 끊이지 않았다.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