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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Jan 22. 2024

구멍 (4/4)

4. 굿이어 다니는 이웃이 굿이여!

급한 대로 타이어를 교체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한편으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찜찜하기 그지없었다. '새로' 단 타이어가 닳고도 닳은 상태였기 때문에 과연 캐나다까지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전을 하면서 계기판을 보니 타이어의 압력이 42~43 psi까지 올라가 있었다. 이 차의 적정 타이어 압력은 36 psi이고 타이어 옆면을 보면 '절대로 45 psi를 초과하지 말라'라고 쓰여있는데 말이다. 


사실 타이어를 고치고 나서 형 2가 캐나다까지 조심히 가라며 (굳이) 열심히, 모든 타이어에 바람을 채워 넣어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타이어가 아주 빵빵하게 잘도 부풀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봐도 놀란다고, 이미 한 번 크게 당해봐서 그런지 운전 중에 타이어가 갑자기 터져버리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우선 타이어에서 공기를 조금 빼주었다(권장 타이어의 압력은 바퀴가 차가운 상태에서 맞추어 주어야 함). 


불안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다시 북쪽으로 올라갈 수는 있게 되었으니 가족들 모두 어제 일을 이야깃거리로 삼아 길을 떠났다. 몇 시간을 달려도 다행히 별 문제가 없어서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을 때 공교롭게도 앞에서 달리던 차의 타이어가 터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고속도로에서 화물차들의 바퀴가 터지는 장면은 두세 번 본 적이 있지만 승용차의 타이어가 눈앞에서 터져버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차는 운전석 쪽의 앞바퀴가 터졌는데 차가 뒤집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차가 흔들렸고 까만 타이어 조각들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사이드 미러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쳐다보고 말았다. 저 사람들 어디를 가고 있는지는 몰라도 오늘 하루, 어쩌면 내일까지도 정말 날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날은 다름 아닌 일요일!). 그리고 호텔을 나서기 전 타이어에 바람 빼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캐나다로 올라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집에 도착하면 당장 타이어를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집에 와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바꾸지 않게 되었다. 들어올 때 마음이 다르고 나갈 때 마음이 달라서 그랬던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에게도 변명은 있었다. 첫째는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이 함께 계시니 계속 차를 써야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어차피 시간과 돈을 들여서 정비소에 가야 했기 때문에 그냥 타이어 네 개를 모두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세 개의 타이어들이 '새로' 단 타이어만큼 엄청 닳은 것은 아니었다. 한 3만 km 정도 달린 상태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4~5년은 더 탈 수 있을 것이다(겨울에는 윈터타이어를 담). 그럼에도 한 번에 모든 타이어를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바로 타이어를 하나만 바꾸나 타이어를 네 개를 바꾸나 드는 돈은 200~300불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 직장에서 일을 할 때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했는데 옆 동네에 있는 굿이어(Goodyear) 타이어 공장에도 갈 일이 자주 있었다. 그 공장에서는 언제나 짙은 고무 냄새가 났는데, 스팀과 압축공기로 고무를 찍어서 타이어를 만드는 듯했다. 타이어를 만드는 과정은 내가 하는 일과는 상관이 없어서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푹슉푹슉 소리를 내면서 기계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도넛처럼 표면이 매끄러웠던 고무들이 그 기계들을 거치면서 쓰레드(Tread)도 파이고 옆면에는 회사 로고도 새겨졌다. 


꽤나 큰 공장이라 내 주변에도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특히 바로 옆집 아저씨도 작년에 은퇴하기 전까지 그 공장에서 일을 했다. 언젠가 옆집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회사에서는 복지 혜택의 하나로 타이어 할인권을 일 년에 몇 장 정도 준다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타이어를 바꿀 일이 없었을 때라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흘려듣고 말았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듣고 나서 몇 년 후가 지나고 중고차를 사야 했는데 그때 윈터 타이어도 장만해야 했다. 당시 나는 장장 3개월에 걸친 파업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돈이 한 푼이라도 아쉬운 상황이었다(한 푼이라도 아쉬운 상황에 '차'를 사야 했던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링크된 글을 읽어 보신다면 이해가 되실 것이다). 그래서 옆집 아저씨에게 타이어를 사야 하는데 혹시 할인권을 받을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저씨가 흔쾌히 할인권을 가져다주셨다. 


그 용하다는 굿이어 타이어 할인권



처음에는 얼마만큼 할인해 주겠다는 쿠폰 같은 것을 주실 주 알았는데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기다란 종이 한 장을 가져다주셨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쓰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받아 쓰는 주제에 꼬치꼬치 캐묻기도 미안해서 우선은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이 쿠폰을 쓸 수 있다는 타이어 샵에 갔는데 생각보다 사용하는 방법이 복잡해서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우선 카운터에 가서 아는 사람에게 받은 쿠폰인데 사용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쿠폰이 발급된 직원의 이름과 사원 번호, 전화번호 등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아닌 것이라고는 옆집 아저씨의 이름 (First Name)뿐인데 말이다. 심지어 성도 기억이 안 나는데! 그래도 우리 집 바로 옆집이니 머릿속으로 집 주소는 계산할 수 있었다('우리 집 주소 - 4' = 옆집 아저씨 주소). 


그래서 타이어 샵 직원에게 일단 이름(First Name)은 뭐시기이고 집 주소는 뭐시기인데 그것으로 조회가 가능하냐고 물어보았다. 다행히 이런 경우가 많은지 직원은 일단 찾아보자고 했다. 그래서 컴퓨터로 이름(First Name)을 집어넣고 조회를 해보았다. 다행히 엄청 흔한 이름은 아니라서 4~5개만이 검색되었다.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그중 하나의 성이 왠지 낯이 익었다. 그래서 이 사람 성이 매우 낯이 익은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 사람 같다고 했다. 직원이 클릭해서 주소를 보니 주소가 우리 집 옆집이었다. 


옳다구나!!


직원은 조회된 화면을 보면서 할인권 종이에 이름, 주소, 사원번호 등을 적었다. 할인권 종이에 써져 있는 내용을 보면 우편으로 보내는 옵션이 있는데, 모르긴 몰라도 나중에 정말 이 종이들을 모아서 굿이어에다 제출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직도 이런 것을 종이로 처리를 하다니! 어떤 면에서 보면 캐나다가 정말 대단하긴 하다. 


그래도 뭐, 이 종이가 더 대단하긴 했다. 내가 구입했던 타이어는 14인치로 매우 조그마한 사이즈이기 때문에 애초에 가격이 비싸지 않았다. 그래도 영수증을 보니 타이어 한 개 가격이 112.8불인데 온갖 할인을 받아서 타이어 네 개를 사는데 든 가격은 172.08불이었다. 물론 공임비와 세금이 더해져서 총 332불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타이어 신발보다 싸다'라는 홍보 문구를 사용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 타이어 하나에 112.60불인데 74.78불을 할인 받았다(공임 별도) / (우) 37.82불짜리 타이어와 25불짜리 알로이 휠(중고)를 달고 잘도 달리는 나의 액센트!



이렇기 때문에 나는 타이어를 바꾸기 전에 우선 옆집 아저씨를 만나서 내가 미국에서 겪은 장황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남은 할인권이 있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옆집 아저씨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름에는 마당일을 하거나 잔디를 깎다 보면 자주 마주칠 일이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새로' 단 타이어가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앞쪽에 달려있던 그 타이어를 상대적으로 마모가 적은 뒤쪽으로 옮겨 달고 몇 주를 더 기다리니 드디어 옆집 아저씨와 이야기를 할 일이 있었다. 옆집 아저씨는 흥미진진했던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역시나 할인권을 하나 쥐어주었다. 


예이! 고마워요 아저씨!!


일하는 시간을 쪼개서 할인권을 들고 다시 타이어 샵에 갔다. 이번에는 아주 능숙하게 옆집 아저씨의 이름과 주소를 말하고 예약을 시작했다. 예약을 하려면 우선 어떤 타이어를 구입할 것인지 정해야 하는데 타이어 샵에서는 할인을 받을 수 있는 타이어의 리스트를 엑셀 파일 한가득하게 가지고 있다. 사이즈, 브랜드(굿이어뿐 아니라 계열사인 던롭, 켈리까지) 및 제품(랭글러, 어슈어런스 등) 별로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종류가 참으로 무궁무진하다. 지난번에는 내 차에 맞는 타이어는 딱 하나밖에 없어서 고를 것도 없었지만 이번에는 고를 수 있는 종류가 많아서 고민이 되었다. 


몇 번 터짐을 당해보니 뭐 이렇게 터지나 저렇게 터지나 매한가지인 것 같아서 처음에는 제일 저렴한 것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직원 아주머니가 이것저것 살펴보다니 이 제품이 이러쿵저러쿵 해서 좋은데 나도 이거 샀다고 해서 그래 그럼 나도 (생각하기 귀찮으니) 그거 주세요 했다. 


할인권이 있다고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 따로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할인이 시작되는 (2023년) 9월 말로 예약을 잡고는 타이어 샵을 나왔다. 






예약한 날에 타이어를 바꾸고 결제를 해서 보니 온갖 할인을 받아서 공임 포함 688.44불이 청구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이 일이 있기 딱 1년 전에 타이어에 나사가 박혀서 타이어 하나만 교체를 해야 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때 바꿔 달았던 타이어(하필 이 타이어가 미국에서 터져버림)가 이번에 달았던 타이어와 똑같은 종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타이어를 하나 바꾸었을 때랑 할인권을 이용해서 네 개를 모두 바꾸었을 때 비용을 정확하게 비교해 볼 수 있었다. 하나 바꾸었을 때 총 331.81불이 들었는데 네 개를 모두 바꾸니 688.44불이 들었다. 엄청나게 돈을 절약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 뿌듯했다.




(좌) 이번에도 참으로 많이 할인을 받았다 / (우) 반짝반짝하는 새 타이어들!




아! 애초에 타이어가 터지지 않았으면 이렇게 돈을 절약하지도 못했을 테니 정말 잘 터뜨렸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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