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검사 Oct 23. 2020

골든스테이트킬러 - 1. 프롤로그

I'll be gone in the dark

내가 처음 '골든 스테이트 킬러'라는 말을 들은 것은 지난 2018년 4월 뉴스에서였다. 매일 저녁 빨래를 개면서 반은 영어 공부 삼아, 반은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기 위해서 뉴스를 보는 것이 일상인데(참고로 나는 캐나다에 살고 있음) 골든 스테이트 킬러라고 불리는 한 늙은 범죄자가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서 붙잡혔다는 것이었다. 이 범죄자가 누구인지, 어떤 범행을 저질렀는지 몰랐던 나는 연쇄살인범이 사건 후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난 후 DNA 분석을 통해서 붙잡혔구나 정도로 생각을 했다. 마치 감옥에 갇혀있던 이춘재가 DNA 분석을 통해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진범이 지목되었듯이 말이다.



2018년 체포 당시 찍힌 조셉 디앤젤로(Joseph Deangelo)의 머그샷



하지만 처음 그 소식을 들은 이후 뉴스, 팟캐스트 그리고 관련 책들을 통해서 이 사건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이 사람이 저지른 범죄는 알면 알 수록 끔찍해서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리고 범인을 붙잡은 방법도 가족들의 DNA(Genetic Genealogy) 분석을 통해서 잡았다고 단순히 이야기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 뒤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전혀 예상치도 못한 사건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약 일 년 전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에 이 사건에 대한 글을 썼는데 이번 기회에 그 글들을 조금 가다듬고 최근 재판 내용을 업데이트하여 이 곳에 옮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골든 스테이트 킬러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미쉘 맥나마라(Michelle McNamara)라는 사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한 트루크라임(True Crime) 작가로 오랜 시간 골든 스테이트 킬러의 흔적을 좇아 다양한 글들을 썼다. 심지어 이 범죄자에게 가장 처음 '골든 스테이트 킬러'라는 이름을 붙여 준 사람도 바로 이 미쉘 맥나마라였다(*).


(*) 골든 스테이트(Golden State)는 캘리포니아주의 별칭이다.


그녀가 골든 스테이트 킬러라는 명칭을 붙이기 전까지 이 범죄자는 지역에 따라 'East Area Rapist(EAR, 동부 지역 강간범)', 'Original Night Stalker(ONS, 원조 나이트 스토커)', 'Visalia Ransacker(바이살리아의 좀도둑)' 등등으로 불렸다. 그 이유는 범행이 발생했던 1970~80년대에는 이 사건들이 동일범에 의해서 저질러진 것인지 몰랐거나 혹은 동일범이 저지른 것이라고 인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지역 경찰들 사이 정치 문제였던 탓이 크다). 


하지만 계속된 몇몇 수사 기관의 노력으로 EAR과 ONS는 2001년 DNA 분석 결과 동일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바이살리아에서 벌어진 범행들도 모두 한 사람의 소행으로 보이기 때문에 맥나마라는 대중들에게 이 범인의 범죄행위를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게 된다. 


마케팅에서 말하는 리브랜딩(Rebranding)과도 같은 개념인데, 실제로 미국과 같이 땅덩어리가 넓은 곳에서 'East Area Rapist'라고 한다면 어느 동네의 동부를 말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관심을 끌기에는 부족했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렸기 때문에 이 범인이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는지 한눈에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또 부정할 수 없는 것이 끔찍한 범죄를 얼마나 많이 저질렀느냐에 따라 언론의 관심을 받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2~3명의 살인 사건을 저지른 연쇄 살인범과 10건 이상의 살인 및 50건 이상의 강간을 저지른 연쇄 강간/살인범 중 누가 더 언론의 관심을 끌지는 자명한 일이다. 


그녀는 이렇게 범인의 이름을 새롭게 붙여줌으로써 한 명의 범죄자가 캘리포니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연쇄 강간과 연쇄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였다. 그녀는 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다시 관심을 갖고 새로운 제보가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2016년 4월, 자신이 이름 붙여 준 골든 스테이트 킬러에 관한 책을 쓰는 도중 사망하고 만다. 40대 후반의 나이로 잠을 자다가 사망을 하였는데 주 사망 원인은 약물 과다 복용이었다. 그녀가 사망했을 당시에는 책이 절반 정도만 쓰인 상태였다. 하지만 이렇게 그녀의 노력을 날려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힘을 모아 그녀가 남긴 노트와 블로그에 적은 글들을 묶어 2018년 2월 'I'll Be Gone in the Dark: One Woman's Obsessive Search for the Golden State Killer'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하게 되었다(**). 


(**) 이 책의 제목인 I'll be gone in the dark는 범인이 범행 중 피해자에게 했던 말이다. 그는 피해자에게 자신은 어둠 속으로 사라질테니 경찰에 신고할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런 그녀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던 것일까? 


책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8년 4월 25일, 그리고 마지막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32년이 지난 이후 드디어 베트남 참전 군인이자 전직 경찰관이었던 조셉 디앤젤로(Joseph Deangelo)가 붙잡히게 되었다. 기자 회견 당시 경찰은 그녀에 대해서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분명 그녀의 노력이 범인을 붙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확신했다.


한편 책 자체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작가가 집필 도중 사망하는 바람에 챕터가 갑자기 끝나버리거나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오랜 시간 동안 범인을 쫓으며 다양한 추측을 하고 분석을 하는 것들은 아주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절대 알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었던 범인의 행동들 중에서 이제는 그 이유가 알려지게 된 사실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책에서는 범인이 초기에 범행이 이루어졌던 캘리포니아의 랜초 코르도바(Rancho Cordova)나 카마이클(Carmichael) 주변에서 살았거나 학교를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두 번째 범행 당시 범인이 바지를 입지 않은 상태로 피해자 집을 떠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한밤중이라고 하여도 다 큰 남성이 바지를 안 입고 거리를 활보하기에는 남들의 눈에 띌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는 범인이 그 주변에서 살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 주변 지리를 매우 잘 안다고 추측을 했다.


그런데 실제로 범인이 잡히고 나서 보니 이 사람이 랜초 코르도바 주변의 고등학교(Folsom Senior High School)와 대학교(Sierra College and Cal State Sacramento)를 졸업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심지어 범인이 체포 당시 살았던 집도 연쇄 강간 범행을 저질렀던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주황색이 범인의 체포 위치. 파란색은 연쇄 강간 발생 위치


그리고 범인은 범행 도중 (그렇다, 도중에) 몇몇 피해자들에게 


I hate you, Bonnie(보니, 난 네가 싫어)


라고 말을 했다. 맥나마라는 책에서 과연 범인이 했던 말이 무슨 뜻일까, 보니는 누구일까 무척이나 궁금해한다. 범인이 잡히고 나서 보니 범인과 처음 약혼을 했던 사람이 바로 보니였다. 범인은 베트남전 참전 이후 대학에서 그녀를 만났고 많은 나이 차이에도 둘은 연애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거짓말, 폭력적인 성향, 지배욕 등으로 그녀는 그와의 약혼을 파기하고 만다. 결국 그 일로 인하여 범인이 범행 중 계속해서 그런 소리를 했다니 정말 소름이 끼치는 일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가장 소름이 끼쳤던 것은(내가 지금까지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소름이 끼쳤던 적이 있었나 싶다) 바로 지난 2001년 4월 EAR과 ONS이 동일한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의 일이다. 당시 언론을 통해 그 사실이 보도되고 나서 이틀 후 14번째 피해자의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14번째 피해자는 77년 3월 새크라멘토에서 피해(강간)를 당했는데 그때까지 동일한 곳에서 살았나 보다. 피해자는 전화를 받자 단번에 범인임을 알아챘다. 그는 수화기를 통해, 


Remeber when we played? (우리가 했던 거 기억나지?)


라고 말했다.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범인은 그날 분명 자신이 저질렀던 범죄 피해자들의 집에 일일이 전화를 걸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가 마침 계속해서 같은 곳에 살면서 같은 전화번호를 쓰고 있었던 14번째 피해자가 이 끔찍한 전화를 받은 것이 아닐까?



골든 스테이트 킬러는 대략 1973년부터 1986년까지 약 120건의 좀도둑질, 약 50건의 강간, 그리고 13명을 살해했다(시간이 오래되어 증거가 부족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자료에 따라 강간이나 살인의 수가 약간씩 다르기도 함). 다음 장부터는 그가 저질렀던 범죄와 어떻게 붙잡히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