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는 과연 누구일까?
드디어 골든스테이트킬러가 어떻게 붙잡혔는지 이야기를 해야 할 차례이다. 과연 어떻게 조셉 디엔젤로가 1986년 마지막 살인을 저지른 이후 32년이나 지난 2018년에야 붙잡히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골든 스테이트 킬러는 결국 현장에 남아있던 DNA 증거(주로 정액에서 채취)로 인하여 붙잡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DNA를 이용하여 범인을 기소를 하기 시작한 것은 벌써 30년도 더 된 일로 DNA로 범인을 붙잡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 참고로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DNA 증거를 이용하여 기소된 사례는 1987년 9월 영국에서 2건의 강간 및 살인 혐의로 붙잡힌 콜린 피치포크(Colin Pitchfork)이다. 당시 경찰은 8개월 동안 사건이 발생한 지역 남성 5000명 이상의 혈액을 채취하였으나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DNA와 동일한 DNA를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콜린 피치포크의 직장 동료 중 한 명이 몇 개월 후 술을 마시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피치포크의 부탁으로 그 대신 혈액을 제출했다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꼬리가 잡혀서 범인을 붙잡을 수 있었다.
물론 범행 현장에서 DNA 증거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손쉽게 범인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발견된 DNA와 비교할 DNA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용의자조차 알 수 없는 상태라면 경찰이 그 DNA와 일치하거나, 적어도 직계 가족의 DNA를 가지고 있어야만 범인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수많은 강간과 살인 사건 조사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용의 선상에 오른 적이 없었고,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아서 경찰의 데이터베이스에 DNA 정보조차 등록되어 있지 않았던 조셉 디엔젤로는 어떻게 붙잡을 수 있었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길고 복잡한 이야기이다. 놀랍게도 여기에는 한국계 미국인도 등장한다.
우리나라야 땅덩이가 무척이나 좁기 때문에, 우리의 조상들은 그래 보았자 조선 팔도 어딘가에서 태어나셨을 것이다. 간혹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의 피가 섞여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원주민(Indigenious People)이 아니고서야 본인들의 조상은 전 세계 어디선가에서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을 것이다. 그리고 수 십 년, 수 백 년을 거치며 그런 사람들끼리 섞이고 섞였기 때문에 자신이 조상이 정확히 어디에서 온 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최근에는 개인의 DNA 분석을 통해 자신의 조상이 어디서 왔고 어딘가에 흩어져있는 가족들과 먼 친척들을 찾아주는 회사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23andMe나 Ancestry인데 돈을 내고 본인의 타액을 보내면 자신의 DNA를 분석해 준다. 가격도 많이 저렴해져서 이제는 보통 100불 이하의 가격으로도 검사가 가능하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이런 회사에서 제공하는 DNA 검사를 통해 직계 가족들뿐 아니라 먼 친척들까지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DNA를 분석하는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예전에는 기술의 한계로 DNA 상의 20여 개의 유전자 표지자(Generic Marker)만을 비교했기 때문에 직계 가족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Autosomal DNA Test(상 염색체 검사, 나도 처음 들어 보는 말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쉽게 쓰기는 어렵다)라는 방식으로 검사를 진행하여 70만 개 이상의 유전자 표지자를 비교한다고 한다. 이렇게 세밀한 비교를 통해 본인의 6대 조가 동일한 친척들까지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그런데 사실 6대 조가 같은 친척이라면 친척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할 듯하다. 한편 내가 찾아본 자료에서는 한 가족이 2~3명의 자녀만 낳았다고 가정해도 6대 조가 동일한 친척(5th Cousin)이 4,000~5,000명에 달한다고 하는데 계산 방법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냥 많다고만 해야겠다.
그런데 이러한 회사들은 자신들 회사를 통해 DNA 검사를 한 사람들의 DNA 정보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회사를 이용하여 DNA 검사를 한 사람들 중에서는 가족이나 친척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얼굴도 모르는 친척들을 찾기 위해 돈을 더 내고 다른 업체에서 또 검사를 받기에는 돈이 아까울 것이다.
그래서 2010년 커티스 로저스(Curtis Rogers)라는 사람이 GEDMatch('젯매치'로 발음)라는 사이트를 만들어서 회사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DNA 정보를 업데이트하여 가족과 친척들을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 사이트를 만든 사람조차 이 사이트가 이렇게 인기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커티스는 처음 이 사이트를 통해 등록되는 DNA가 매년 10% 정도 증가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엄청나서 매년 2배 이상 DNA 등록 수가 늘어나는 바람에 한때 서버가 마비되는 일도 발생할 정도였다.
한편 지난 1986년, 고든 젠슨(Gordon Jensen)이라는 남자가 5살 된 딸 리사(Lisa)를 데리고 스캇 밸리(Scott Valley)라는 캘리포니아 조그마한 마을의 트레일러 파크(캠핑장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에 나타나게 된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딸의 엄마는 사고로 죽었다고 했는데 그 '사고'가 때에 따라서는 텍사스에서 발생한 교통사고가 되기도 했고 때에 따라서는 강도사건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이번에 글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찾아본 글에서는 암으로 죽었다고 했단다.
그런데 5살의 어린 나이에 변변한 장난감도 없이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리사를 불쌍히 여기는 한 이웃이 있었다. 이 노부부는 리사를 보며 자신의 손자를 떠올렸고 차라리 우리가 입양을 하여 손자와 함께 살게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든에게 입양 의사를 내비쳤고 이에 고든은 마침 다른 곳에 가야 할 일이 있었다며 자신이 집(트레일러)을 비운 사이 3주간의 '시험' 입양 기간을 가지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였다.
그렇게 리사는 이 노부부와 함께 자식과 손자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가서 3주의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리사는 그 사람들과 잘 지냈는데 이상한 점은 종종 나이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어린아이를 성적으로 학대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었다. 어쨌든 노부부는 입양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트레일러 파크를 찾았으나 약속한 3주의 시간이 지나도 고든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이웃은 우선 이와 같은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게 된다. 경찰은 현장에서 이런저런 조사를 했는데 현장에 남아있던 지문을 감식해 본 결과 자신을 고든 젠슨이라고 발했던 이 남자는 사실 1985년 음주운전과 아동 보호 미흡(Child Endangerment)으로 체포되었던 커티스 마요 킴발(Curtis Mayo Kimball)이라는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경찰은 고든이 그동안 리사를 성적으로 학대를 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당시 조사를 했던 경찰은 후에 '심하게 성적 학대를 하고 고문을 했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경찰은 고든(혹은 커티스)에게 자녀 유기와 아동 성학대로 체포 영장을 발부하게 된다. 그리고 리사는 아동 보호 센터로 보내지게 되었다.
2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다시 경찰에 붙잡히게 되는데 이번에는 절도 차량을 운전하다 경찰에 붙잡히게 된다. 이때 그는 자신을 제럴드 모커만(Gerald Mockerman)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지문 감식을 통해 그가 커티스 킴벌 혹은 고든 젠슨이라고 불렸던 사람과 동일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당시 경찰과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리사가 그의 친자식이 아닌 것을 강하게 의심하였고 DNA 검사를 해보겠다는 말도 하였지만 끝내 친자 확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왜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녀 유기 혐의에 대해서만 기소되어 3년형을 선고받았고 아동 성학대와 차량 절도에 대해서는 기소되지 않았다. 그리고 1년 정도 수감 생활 후 가석방되었고, 곧바로 보호감찰을 피해 또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리사가 그의 친딸이 아닌 것이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친자 확인 후 자녀 유기가 아닌 아동 납치 및 감금으로 기소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유죄가 선고된 형사 사건의 90% 이상이 범인이 유죄를 인정하고 형을 조정하는 플리 바겐(Plea Bargain 또는 Plea Deal)을 통하여 유죄가 확정된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 고든(혹은 커티스)도 재빨리 자녀 유기 혐의를 인정하여 친자 확인 등의 추가 조사를 막고 나머지 범죄들에 대한 기소 취하도 받아내지 않았을까 추측만 할 뿐이다.
한편 이렇게 보호 감찰을 피해 사라진 고든 젠슨 혹은 커티스 킴벌은 오랜 시간 동안 나타나지 않다가 13년 후인 2002년 경찰에 다시 한 번 붙잡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