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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Nov 01. 2020

골든스테이트킬러 -7. 그의 마지막

이제 다시 골든스테이트킬러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범인이 어떻게 붙잡혔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범인이 마지막으로 살인을 저질렀던 것은 1986년의 일로(마지막 범행 또한 5년 만에 저지를 것이다) 그 이후 그가 피해자에게 했던 말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폴 홀스(Paul Holes)는 UC Davis(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에서 생화학(Biochemistry)을 전공하였고 1994년 샌프란시스코 동쪽에 위치한 콘트라 코스타(Contra Costa County)에서 부(副) 과학수사관(Criminalist, 하는 일을 보니 과학수사관 정도로 번역이 될 듯하다)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 경, 그는 온갖 수사 기록과 책들이 보관되어 있는 서류 보관실에서 구석에 놓여있던 4단 철제 캐비닛을 발견하였다. 무엇이 들어있나 궁금해서 열어보니 아래 두 개의 서랍 모두 빽빽이 서류들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그 서류들 탭에는 빨간색으로 'EAR''이라는 글자만 적혀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 몰랐던 그는 얼마 전 은퇴한 과학분석실장 존 머독(John Murdock)에게 그 사건이 무엇인지 물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 사건에 빠져들게 되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이 사건은 그가 해결할 운명이었나 보다. 1970년 대 EAR(East Area Rapist, 동부 지역 강간범)이 범행을 저질렀던 주변 지역의 모든 경찰들은 공소 시효가 한참 지난 그 사건의 자료들을 모두 폐기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콘트라 코스타 경찰만 사건 관련 자료와 증거를 보관하고 있었다. 사실 이는 단순히 요행으로만 치부할 일은 아니었다. 콘트라 코스타에서도 관련 자료들을 폐기하려고 하였지만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관들이 이 사건과 관련된 수사기록과 증거들은 절대 폐기하면 안 된다고 주장을 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폴 홀스는 우선 증거실에서 보관하고 있던 피해자의 Rape Kit(강간 사건 발생 시 피해자에게서 물리적 증거를 확보, 보관해 놓은 것)을 꺼내 범인의 DNA를 검사하였고, 과거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당시 수사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이때 전화를 받았던 은퇴한 형사 래리 크롬튼(Larry Crompton, 이 사람은 EAR 수사 경험을 토대로 'Sudden Terror'라는 책도 자비로 출판했었다)은 폴 홀스에게 


남부 쪽에 전화를 해봐. 산타 바바라에서부터 시작을 하면 될 거야.
그쪽에 5명 정도가 살해당했다고 들었어. 
나는 알 수 있어.
분명히 그놈이 한 거야.

라고 말을 하였다.  


폴 홀스는 그의 조언에 따라 산타 바바라(골든스테이트킬러의 첫 번째, 두 번째, 여섯 번째 범행지) 경찰에 전화를 해보았다. 폴은 전화에서 예전에 산타 바바라에서 EAR 범행과 비슷한 살인 사건들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20년 전 지역 경찰들끼리 전혀 협조가 안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산타 바바라 경찰은 자신들에게는 EAR 사건과 비슷한 사건은 없었다고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아마 얼바인(Irvine, 골든 스테이트 킬러의 다섯 번째, 일곱 번째 범행지) 경찰에 전화를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을 해주었다.


골든스테이트킬러가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벌인 살인 목록


한편 얼바인 지역을 관할하는 오렌지 카운티 경찰의 과학 수사관인 메리 홍(Mary Hong)은 1996년 이미 자신들의 카운티에서 벌어진 두 건의 살인 사건 현장들에서 발견된 DNA 분석을 통해 골든스테이트킬러의 네 번째, 다섯 번째 범행이 동일인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폴 홀스의 전화를 받은 메리 홍은 EAR 사건이 본인들의 사건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기관의 DNA 검사 결과를 비교해 보고자 했지만 콘트라 코스타 경찰이 보유한 DNA 분석 기계가 너무 낙후되어 비교가 불가능하였다. 결국 두 명의 수사관은 나중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메리 홍도 한국계인지 궁금하여 다양하게 찾아보았지만 확인에 실패했다. 사진은 링크드인. 사람들도 나와 같이 그녀와 폴 홀스를 함께 검색하나 보다.


결국 4년이 지난 2001년, 폴 홀스가 속한 콘트라 코스타 경찰의 DNA 분석 기계도 업그레이드되어 두 지역의 DNA를 비교할 수가 있게 되었다. 검사 결과 완벽하게 일치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로써 캘리포니아 북부 지역에서 벌어진 EAR 사건과 남부 지역에서 벌어진 ONS(Original Night Stalker, 오리지널 나이트 스토커) 사건이 모두 동일 인물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이, 마지막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25년이 지나서야 밝혀지게 되었다. 


뉴욕타임즈에 소개된 폴 홀스.



관련 책을 보면 폴 홀스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골든스테이트킬러가 쉽게 잡힐 것으로 예상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EAR 사건은 20년 이상 전혀 진전이 없었지만 DNA 검사 단 한 번으로 큰 진전을 이루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앞의 글에서 언급한 대로 범인의 DNA를 확보했어도 그것과 비교할 대상이 없다면 범인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는 미국 전역에 등록되어 있는 범죄자 DNA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범인이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지 현장에서 발견된 DNA와 동일한 DNA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수사는 또다시 답보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물론 그 이후에도 폴 홀스나 다른 경찰들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의 피해자들과 경찰관들을 다시 만나 인터뷰를 하였고, 증거를 재분석하였으며 옛 용의자 그리고 새로운 용의자들을 조사했다. 


폴 홀스에 따르면 자신이 처음 조사를 시작한 이후 약 8,000명의 용의자를 조사했고(2012년 기준이로 범인이 붙잡혔을 당시에는 더 많은 용의자를 조사했을 것이다) 그중 수백 명에게서 DNA를 채취하여 검사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 오렌지 카운티의 경찰인 래리 풀(Larry Pool)은 볼티모어까지 날아가서 땅 속에 묻힌 용의자의 시신을 꺼내 DNA의 검사를 했다고 한다. 


수 천 명이 넘는 용의자들 중에서 DNA 검사까지 실시했을 정도이면 어느 정도 범인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검사를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DNA 검사 결과 진범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을 때 담당 수사관들의 좌절도 무척이나 컸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어 실망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폴 홀스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하기로 하였다. 그것은 바로 범인의 DNA를 이용하여 그의 가족을 찾는 것이었다(Familial DNA). 그래서 그는 EAR의 Y-STR Markers(*)를 일반 사람들이 이용하는 데이터베이스(참고한 책들에서는 정확히 어떤 곳인지 설명이 안되어 있다. 앞의 글에서 설명한 GEDMatch는 아닌 듯하다)에 업로드하였다.  


(*) Short Tandem Repeats on the Y Chromosome. 이쪽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다. 그래도 책에 나온 대로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이것은 사람의 지놈(Genome)을 이루는 23쌍의 Chromosome 중 하나이며 부계(父系)를 따라 유전된다고 한다.


폴 홀스가 애초에 왜 범인의 수많은 DNA 정보 중 Y-STR만 사용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범인의 Y-STR에 전 세계 인구 중 약 2%만이 가지고 있는 극히 희귀한 Marker가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타깃을 좁게 설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처음 이러한 시도를 한 것이 정확히 몇 년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는 기술의 한계로 현재처럼 많은 유전자 표시자를 비교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데이터베이스에서 범인의 DNA와 일치하거나 매우 가까운 DNA는 발견할 수 없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주마다 한 번씩 다시 검사를 돌려보았다. 폴 홀스 본인조차 이렇게 반복해서 검사를 해보는 것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2013년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범인의 DNA와 일치하는 DNA를 발견하게 된다


매번 하는 식으로 검사를 돌려봤다가 일치하는 DNA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너무 놀랐다. 그러고 나서는 드디어 범인을 잡았구나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범인과 일치하는 DNA 정보는 한 아마추어 탐정이(아마추어라고는 하지만 전직 Secret Service Agent였다고 한다) 익명으로 EAR의 DNA를 동일한 데이터베이스에 업데이트한 것이었다. 결국 범인의 Y-STR을 이용한 검색 방법은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  






한편 2017년 2년 폴 홀스는 피트 해들리(Peter Headley, Lisa의 신분을 찾아 준 샌 버나디노 경찰)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된다. 이때 피트 해들리는 폴 홀스에게 자신이 어떻게 리사의 DNA와 그녀의 가계도를 이용하여(Genetic Genealogy) 피해자의 신분을 확인하고 살인범의 신분을 찾을 수 있었는지 말해주게 된다(다음 글에 설명할 Bear Brook 살인사건을 말 함). 여기서 힌트를 얻은 폴 홀스도 Y-STR이 아닌 범인의 전체 DNA 정보를 분석하여 이를 (지금쯤이면 모두들 익숙하실) GEDMatch에 올렸다.

 

GEDMatch에서 범인과 다른 사람들의 DNA 비교를 통하여 수사관들은 범인의 먼 친척들(본인의 5대 조가 동일한 친척) 10~20명 정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리사의 신분을 찾아내었던 바바라 레이-벤터(Barbara Rae-Venter)가 그 친척들의 정보를 이용하여 가계도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처음에는 5명 정도의 용의자를 골라낼 수 있었다. 경찰은 범행이 발생했던 시기 용의자들을 나이와 사는 곳 등을 조사하여 한 명씩 한 명씩 제외해 나갔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2명의 용의자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그와 가까운 친척의 DNA 검사 결과를 통해 배제되었고 이제 아탈리아 계통의 남자 한 명만 남게 되었다.  


오직 한 명만 남게 된 주 용의자가 이탈리아 계통이라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의 폴 홀스의 반응은 모르겠지만, 이 사건에 매달려있던 아마추어 수사관들에게는 분명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범인의 Y-STR 분석을 통하여 범인은 영국이나 독일계의 성(姓)을 가진 사람이라고 추정했었다(Y-STR은 부계로 유전되기 때문에). 실제로 미쉘 맥마나라가 쓴 'I'll gone in the dark'에도 이러한 추측이 등장한다.


어찌 되었건 폴 홀스가 24년 동안이나 매달렸던 이 사건은 새로운 방식으로 DNA 정보를 이용한 지, 즉 유전자 가계도(Genetic Genealogy)를 이용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주 용의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수사과정에서 맛봤던 수많은 좌절로 인하여 이 용의자도 진범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 용의자가 경찰에 체포되거나 주목을 끈 적도 없었기 때문에 더 확신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폴 홀스는 용의자의 주변 사람들과 옛 직장 동료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인의 퇴직을 하루 앞두고 용의자의 집 앞으로 찾아가서 대화라도 해볼까 싶어 직접 용의자의 집 앞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차에서 내리다가 자신이 이 사람에 대해 너무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돌아오고 만다.


다음날 폴 홀스는 경찰에서 퇴직을 하였지만 계속해서 계약직 신분으로 조사를 하였다. 결국 경찰은 용의자가 쓰레기를 버릴 때를 기다렸다가 그것을 뒤져 용의자의 DNA를 확보하였고 놀랍게도 동부 지역 강간범(EAR, East Area Rapist), 오리지널 나이트 스토커(ONS, Original Night Stalker), 골든 스테이트 킬러(Golden State Killer) 등등의 많은 이름으로 불렸던 범인은 바로 당시 72세의 조셉 디 앤젤로(Joseph DeAngelo)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결국 그는 마지막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32년이 지난 후, 최초 연쇄 강간 사건이 발생했던 새크라멘토 동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트러스 하이츠(Citrus Heights, CA)에서 체포가 되었다.  


조셉 디 앤젤로는 앞의 글에서 언급한 대로 1970년대 절도 및 강간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 그 주변 지역에서 경찰로 일을 했으며 1979년 7월 가게에서 망치와 개 퇴치제(Dog Repellent)를 훔치다 걸려서 경찰에서 해고를 당했다. 현재까지 그의 1980년대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한창 강간 사건이 발생하던 1973년 결혼을 하여 딸 세 명을 얻었다고 한다.  


2018년 4월 구속된 조셉 디 앤젤로는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13건의 살인, 13건의 납치 및 강간, 그리고 50건에 달하는 강간에 대해 인정하는 조건으로 사형을 면죄받는 플리 바겐(Plea Bargian)을 하였다. 결국 2020년 8월 이 모든 범죄들에 대해 유죄가 선고되었고 가석방이 불가능한 여러 번의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 골든 스테이트 킬러 사건 이후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영구 미제 사건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유전자 가계도(Genetic Genealogy)를 이용하여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골든 스테이트 킬러 사건이  해결된 지 겨우 2년 반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수 십 건의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체포되었고 십여 명의 신분을 알 수 없던 피해자의 신원도 밝혀졌다(참고 문헌). 내가 지금까지 캐나다 뉴스에서 이 방식으로 용의자를 찾았다고 말하는 것을 본 것만 두 번이나 될 정도이다.


어쨌든 이 유전자 가계도 방식을 사용할 경우 미국 모든 백인 남성의 신원을 확인을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범인의 DNA 정보, 충분한 시간 그리고 비용만 있다면 백인 남성이 저지른 영구 미제 사건들은 대부분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물론 용의자를 기소하여 유죄를 입증하는 것은 또 다른 수준의 문제이긴 하다). 


물론 일반 대중들이 이용하는 DNA 정보 사이트를 경찰이 수사에 사용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지에 대한 논의는 현재 계속 진행 중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연쇄 강간이나 살인 사건에 이러한 정보가 사용되는 것에 대해서 찬성을 하는 편이라고 한다. 


윤리적인 논란은 있으나 한 번 시작된 물길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주기적으로 영구 미제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뉴스를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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