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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Oct 31. 2020

골든스테이트킬러 -6. 살인범을 잡는 새로운 방식(2)

전은순 씨 살인사건

리사를 유기한 혐의로 붙잡혔다가 1989년 가석방 기간 중 도주한 고든 젠슨(혹은 커티스 킴벌)은 그 이후로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13년의 시간이 흘러 2002년. 이번에는 래리 배너(Larry Vanner)라는 사람이 부인인 전은순(Eunsoon Jun)을 살해한 혐의로 캘리포니아의 리치먼드(샌프란시스코 동쪽에 위치한 도시)에서 체포된다.


래리 배너는 1999년경 전은순 씨 집의 지붕을 고쳐주다가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 이후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하여 2001년 결혼식까지 올리게 되었다(서류상으로는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 주변의 모든 사람은 그녀가 이 남자와 만나는 것에 반대하였다. 래리 배너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예를 들어 자신이 캘리포니아 여기저기에 집을 몇 채 소유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디인지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행색이나 그가 타는 차는 너무도 지저분하여 제대로 된 소득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절대 말을 하지 않았다. 한 번은 파티 도중 전은순 씨의 친구가 그에게 과거에 대해서 묻자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며 내 과거에 대해 물어보지도 말고 알려고 하지도 말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이렇게 수상한 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결국 모든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와 함께 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결정에 반대했던 대부분의 가족 및 친구들과의 연락을 끊게 된다. 


한편 결혼식을 올린 지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전은순 씨와 관계를 유지하던 한 친구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그런데 여행 당일 연락도 없이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 여행 전날 마지막으로 짧게 통화를 했을 때도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다급해 보였다. 이러한 상황을 이상하게 여긴 친구가 래리 배너에게 연락하여 몇 번이고 그녀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그는 그녀가 가족 일로 버지니아로 잠시 떠났다, 정신 치료를 위해서 오레건으로 갔다는 등의 말만 하였다. 결국 그 친구는 경찰에 전은순 씨의 실종 신고를 하였고 경찰은 조사를 위해 래리 배너를 경찰서로 불렀다. 


처음에 경찰에 불려 갔을 때 래리 배너는 의외로 경찰 조사 협조적이었다. 그는 경찰에게 친구에게 이야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지금은 오레건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경찰들은 아주 특이한 것을 발견하였다. 그가 제시한 이름으로 신분 조회를 해보니 인덱스 번호(Index Number, 캘리포니아에서 정식 신분증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번호)를 제외하고는 그 어떠한 기록도 조회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범죄 기록은 물론이고 운전면허증조차 조회가 되지 않았다(물론 그는 운전을 하고 다녔다). 


이를 매우 수상하게 여긴 경찰은 그에게 지문 채취를 요청하였고 놀랍게도 그는 지문 채취에 순순히 응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록산 그루엔히드, Roxane Gruenheid)의 인터뷰에 따르면 아마도 그는 자신이 곧 풀려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지문 채취에 응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마지막으로 경찰에 체포되었던 것은 10년도 전의 일로 그때는 지문 조회에 며칠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래서 그는 지문 감식 결과가 나올 때쯤이면 이미 자신은 어디론가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2002년 당시에도 이미 몇 시간 안에 지문 조회 결과를 받아 볼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전했다.


결국 경찰은 심문이 끝나기 전 지문 조회 결과를 받을 수 있었다. 지문 조회 결과에 따르면 그 지문 앞으로 커티스 마요 킴발이라는 이름으로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앞서 말한 대로 커티스 킴발은 가석방 기간 중 도주를 하였기 때문에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구속이 되었다. 


한편 캘리포니아에서는 가석방 중인 사람에 대해서는 영장 없이 그의 집을 수색할 수 있기 때문에 경찰은 곧바로 전은순 씨와 그가 함께 살던 집을 조사하였다. 경찰은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차고 한쪽에 높이 쌓여있는 고양이 리터(Litter, 고양이용 화장실에 쓰이는 모래 같은 것)를 발견하였다. 그것의 높이는 성인 허리에 다다랐고 지름은 최대 1.5m 정도에 달했다. 성인 여성 시체를 숨기기에 충분한 크기였기 때문에 경찰은 곧바로 과학 수사팀을 불렀고 그들은 그 속에서 미라처럼 변한 상태의 절단된 사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피해자가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왠지 더 안타까웠다).  


래리 배너 사건의 피해자(출처 https://abcnews.go.com/)






경찰은 조사 결과 이 래리 배너라는 살인범이 이전까지 Robert Evans, Curtis Kimball, Gordon Curtis Jensen, Gerald Mockerman, Lawrence Vanner 등등의 이름으로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록산 그루엔히드(Roxane Gruenheid)은 이 남자의 과거 기록을 살펴보다가 리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 남자가 리사의 친아버지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2003년 드디어 그와 리사의 DNA 검사를 실시해 보게 된다.  


검사 결과 역시 이 남자와 리사는 전혀 남남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리사(이제는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음)는 그때까지 평생을 가학적인 아빠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을 했지만 알고 보니 자신은 사실 그 사람에게 납치가 되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 래리 배너, 아니 이름도 알 수 없는 범죄자는 끝까지 리사를 모른다고 하다가 결국 감옥에서 2010년 사망하였고 리사는 영영 자신의 정체를 알 길이 없었다. 


한편 최초 리사의 유기 사건을 담당했던 샌버나디노(San Bernardino) 경찰도 리사의 실제 이름과 친부모의 존재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왜냐하면 이제 리사가 범인의 자식이 아닌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유아 납치에 해당하고 정황상 범인이 리사의 친모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사는 번번이 막다른 길에 도달하고 말았다.


2002년 이후 큰 진전이 없던 수사는 2013년 피트 해들리(Peter Headley)라는 경찰에게 맡겨졌다. 어느새 리사는 32살이 되었고 여전히 자신의 실제 이름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피트 해들리는 계속해서 그녀가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열심히 조사를 이어갔다. 미국 전역의 실종 신고를 뒤져서 리사와 비슷한 나이 때의 아이가 실종된 적이 있는지 확인했다. 만약 비슷한 경우가 있으면 그 가족들의 DNA를 검사하기도 하였지만 성과가 없었다.


그래서 피트 해들리는 리사의 엄마로 시선을 돌렸다. 예전에 범인이 리사의 엄마가 캐나다에서 간호사로 일했다고 한 적이 있어서 캐나다에서 발생한 실종 신고를 뒤졌지만 역시나 허사였다. 그리고 범인이 리사의 엄마의 이름이 도나(Donna) 혹은 데니스(Denise)라고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수 천장의 캐나다 간호사 기록을 뒤졌지만 이번에도 허사였다. 


피트 해들리는 수사 과정에서 리사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2014년 경 리사가 그에게 DNA 정보를 이용하여 가계도를 알려 주는 사이트들(Genealogy Sites)이 있는데 그것을 이용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처음에는 이 생각을 별로 내켜하지 않았지만 계속되는 리사의 권유에 그녀의 DNA를 23andMe나 Ancestry와 같은 사이트에 올려보았다. 그러자 리사와 5대 조 또는 6대 조가 같은 친척(4th Cousin, 5th Cousin)이 검색되었다. 그들은 리사와 너무도 먼 친척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신분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피터는 어쩌면 이러한 방법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 그는 전혀 몰랐지만 이 순간이 바로 향후 미국의 장기 미제 사건들을 해결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순간이었다(*).


(*) 미국뿐 아니라 심지어 캐나다도! 몇 주 전 캐나다에서도 이 방식을 이용하여 1984년 살해된 9살 여아의 실제 살인범을 36년 만에 밝혀냈다.


피트 해들리는 리사의 친척들을 본격적으로 위해서 입양된 아이들의 친부모를 찾아주는 DNAAdoption.com이라는 기관에 연락을 하였다. 그래서 2015년 그곳에서 자원 봉사자로 일하던 바바라 레이-벤터(Barbara Rae-Venter)라는 사람과 연결되었다. 리사의 가족을 찾는 일은 그동안 그녀가 하던 일과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일이었다. 하지만 리사는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랐는지도 전혀 모르기 때문에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어쨌든 바바라는 리사의 DNA 정보를 23andMe, Ancestry, 그리고 GEDMatch에 업데이트하여 그녀의 가계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게 말이 쉽지 본인의 이름도, 생년월일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계도를 만들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바바라의 인터뷰에 따르면 리사의 가족을 찾기 위해 약 100여 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약 20,000 시간 정도를 소요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중에서도 주로 GEDMatch를 통해 리사의 모계 혈통으로 약 18,000명의 친척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정보를 이용해서 계속 가계도를 그려나갔다. 때로는 신문의 부고란을 이용해서 가계도를 그렸고 아무런 정보가 없을 때는 DNA 검사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과 노력 끝에 결국 리사의 외할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외할아버지와 그 주변의 친척들은 리사의 존재에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계속 할아버지를 설득하여 DNA 검사를 받게 하였고 검사 결과 그는 리사의 외할아버지가 맞는 것으로 밝혀졌다. 


외할아버지에 말에 따르면 이 리사의 원래 이름은 던 보댕(Dawn Beaudin)이라고 한다. 그녀의 엄마의 이름은 데니스 보댕(Denise Beaudin)으로 1981년경에는 뉴햄프셔주 멘체스터(Manchester, NH)에 살고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데니스 보댕과 그녀의 6개월 된 딸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81년 추수감사절이라고 하는데 당시 데니스 보댕은 밥 에반스(Bob Evans)라는 남자 친구를 데려왔다고 한다. 데니스 보댕의 가족들은 그녀가 사라진 이후에도 실종 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녀와 밥 에반스는 주변에 빚을 많이 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저 야반도주를 했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물론 이 밥 에반스라는 남자는 래리 배너, 커티스 킴벌, 고든 젠슨 등이라고 불렸던 남자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그의 범행 방식을 볼 때 데니스 보댕은 그에게 살해당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지만 벌써 10년 전에 범인이 죽었기 때문에 아마 그녀의 시신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미국 뉴햄프셔의 경찰의 기자회견 자료. 피해자들의 사진이 있다.



이렇게 리사를 신분을 찾는데 처음 사용된 유전자 가계도(Genetic Genealogy, DNA를 이용하여 가계도를 만드는 것)는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장기 미제 사건들을 해결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의 원래 주제인 골든스테이트킬러도 바로 이 방식으로 붙잡히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가 과연 골든스테이트킬러가 어떻게 붙잡혔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지만 골든스테이트킬러가 붙잡힌 이야기를 쓴 이후 꼭 언급해야 할 사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전은순 씨를 살해하였고, 리사를 데리고 있었던 범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중에 밝혀진 그의 본명은 테리 라스뮤센(Terry Peder Rasmuseen)이다. 그리고 그가 데니스 보댕과 함께 살았던 뉴햄프셔의 한 주립 공원에서는 1985년 두 구의 시체가 들어있는 드럼통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15년 후  2000년에 또다시 두 구의 시체가 들어있는 드럼통이 발견되었다. 놀랍게도 피해자들은 20-30대로 보이는 성인 여성, 10살 전후의 여자 아이, 2-4살 사이의 여자 아이, 그리고 1-3살 사이의 여자 아이였다. 


지난 30년 동안 용의자조차 파악할 수 없었던 이 끔찍한 사건도 결국은 한 남자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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