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86 원조나이트스토커 Original Night Stalker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실제 발행한 범죄 사건을 주제로 글을 쓰거나 방송을 만드는 '트루크라임(True Crime)' 장르가 꽤 인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분야이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야 말로 바로 트루크라임 장르의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언론의 자유가 매우 높은 북미에서는 범죄자나 피해자의 정보가 어느 정도 노출되어도 문제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장르가 발달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을 한다.
비록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분야이지만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장르에 흥미를 느낄 것 같다. 나 또한 추리소설류를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범죄 매니아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이 장르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의 책이나 팟캐스트는 사실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영어의 난도가 높지는 않은 편이라 즐겨 찾고는 하였다.
그런데 계속 이 장르만 읽거나 듣고 있다 보면 세상이 온통 악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서 인생이 우울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매우 유명한 트루크라임 팟캐스트나 책이 아니고서는 잘 듣거나 보지 않는다.
그래도 이 '골든스테이트킬러'의 이야기는 2016년 범인 잡혔다는 뉴스를 들은 이후 항상 궁금해하던 사건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이와 관련된 팟캐스트와 책을 여럿 찾아서 듣거나 읽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벌써 네 번째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한동안 어두운 이야기에 집중을 하였더니 다시 인생이 우울해지려고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힘을 내 어서 글을 마무리하고 좀 더 밝고 재미있는 주제에 매진해야겠다(*).
(*) 2019년 12월 처음 이 글을 썼을 당시 2~3달 정도 골든스테이트킬러 이야기에만 매진하였다. 너무 어두운 주제였기 때문에 글을 쓰면서 꽤나 우울했다.
아무튼 오늘 이야기할 내용은 골든스테이트킬러의 마지막 범행인 연쇄 살인에 대한 것이다. 참고로 범인인 조셉 디엔젤로는 총 13건의 살인으로 기소가 되었고 재판 과정에서 사형을 면하고자 플리 바겐(Plea Bargain)을 통해 이 모든 살인을 인정하였다. 이 중 10명이 이번에 소개할 1979년부터 1986년 사이에 살해당하였고, 1명은 바실리아 좀도둑 사건 당시, 2명은 동부 지역 강간범(EAR) 사건 당시 살해당하였다.
(**) 'Original'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1984-1986년 사이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Night Stalker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다른 연쇄살인범이 존재했다. 하지만 1984년 이전부터 그 연쇄살인범과 비슷한 수법으로 범죄를 저질렀던 범인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구분하기 위해 다른 범인을 Original Night Stalker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1979년 10월, 후에 오리지널 나이트 스토커(ONS)라고 불리게 되는 범인이 LA 서쪽에 위치한 산타 바바라 카운티 골레타의 한 집에 침입하였을 때만 하여도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끔찍한 연쇄 살인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범인이 단순히 연쇄 살인범이 아니라 바로 직전까지 약 50건의 연쇄 강간범이었다는 것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범인은 처음 범행에서(물론 전체적으로 본다면 처음은 아니지만) 커플이 살고 있는 집에 침입하여 둘을 결박하였다. 하지만 범인이 잠시 방을 떠난 사이 피해자가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렀고 마침 옆집에 살고 있던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나타나서 피해자들은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 옆집에 살고 있던 사람은 마침 FBI 요원이었는데 만약 이 범인이 후에 골든스테이트킬러라고 불리는 사람인 줄 알았다면 더욱 필사적으로 그를 쫓았을 것이다.
범인은 이 일이 있은 후 3개월 정도 후부터 다시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하여 남부 캘리포니아를 돌며 1년 반 동안 총 9명을 살해하게 된다. 특이한 점은 1981년 7월 이후 한동안 범행을 멈추었다가 1986년 마지막으로 한 번의 살인을 더 저지른 후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지난번 동부 지역 강간범(EAR) 사건 당시 설명했던 것과 유사하게 이 범인의 살해 방식 또한 매우 잔인하였다. 하지만 내가 읽어 본 책들과 인터넷 자료 그리고 들어 본 팟캐스트들에서도 이 범인의 살해 방식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저 범행 장소에서 집어 든 흉기(예를 들어 난로용 땔감)로 피해자를 '때려죽였다고' 정도로만 표현이 되어있다. 범인의 살해 방식이 무척이나 잔인했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책이나 팟캐스트에서 이것을 자세히 설명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초기 범행에서는 피해자를 그냥 때렸다가 살해 횟수가 증가함에 따라 혈흔이 여기저기 튀는 것을 방지하고자 침대 시트나 수건 등을 덮어서 때려죽였다고 한다. 이런 것은 자세히 알게 된 다고 하여도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앞서 소개한 'I'll be gone in the dark'라는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도록 하자.
OOO 형사는 Offerman/Manning 살인사건 (ONS의 두 번째 범행) 조사 후 정신 안정을 위해 휴가를 떠나야 했고,
Ray는 자기가 본 살인사건 중에서 이것이 가장 최악이라고 했다.
왜 Offerman/Manning 살인사건이 Domingo/Sanchez (ONS의 여섯 번째 범행) 사건보다 더 잔인했는가(***)?
(***) 여기서 언급된 Sanchez라는 사람은 키가 190cm 정도이고 범인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둔기에 수차례나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고 한다. 상황만 들어봐도 매우 잔인하게 살해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에도 안타까운 사실은 EAR 강간 사건과 마찬가지로 살인이 발생한 지역의 경찰 사이에 협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범인은 지역을 옮기면서 총 7번의 범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것들이 모두 한 사람에 의하여 벌어졌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물론 당시에도 실제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들이나 EAR의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들 중에는 이것이 모두 동일범에 의하여 저질러졌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의견은 상부에서 무시되었고, 1996년이 되어서야 DNA 분석을 통해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저질러진 몇몇 살인 사건들이 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당시 지역 경찰들은 오직 자신의 지역만 담당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과는 달리 더 넓은 지역을 담당하는 검시관(Coroner)이 다른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보면서 동일인이 벌인 것임을 확신했다. 시간이 흐르고 DNA 검사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이 검시관은 다른 두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의 DNA 조사를 요청했다. 검사 결과 동일인에 의하여 벌어진 것이라고 확인되었다고 한다.
한편 나중 글에서 등장할 폴 홀스(Paul Holes)라는 수사관이 90년대 중반부터 EAR를 추적하였고 은퇴한 형사의 조언에 따라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했던 캘리포니아 남부의 경찰들과 접촉하였다. 이번에는 다행히 협조가 잘 이루어졌고, 결국 2001년 ONS와 EAR이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아직까지 범인인 조셉 디엔젤로가 왜 지역을 옮겨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1980년대의 그의 행적에 대해서도 현재까지는 많이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그가 경찰로 재직 중이던 1979년 7월 망치와 개를 쫓는 약품(Dog Repellent)을 훔치다 걸려서 경찰에서 해고되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경찰에서 해고된 이후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 시간이 지나고 나니 명확하게 보인다. 경찰관이 망치와 Dog Repellent를 훔치다니! 딱 보아도 남의 집에 침입할 때 쓰기 좋은 물건들이다. 아마도 그는 그가 그런 것을 샀다는 기록이나 증인을 만들지 않고 싶었을 것이다.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만 마무리하고 다음부터는 어떻게 이 잔인한 범인이 잡혔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전에 이쯤 되면 누구나 마음속에 품을 수 있는 의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아야겠다. 연쇄 살인범이나 연쇄 강간범은 본인의 의지만으로는 범행을 멈추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갑자기 범행을 멈추는 이유는 주로 범인이 다른 일로 붙잡혔거나, 사고를 당해서 움직이기 어렵거나, 사망을 했다고 들었다. 심지어 연쇄 살인마인 정남규는 감옥에 갇혀서도 살인에 대한 충동을 이기지 못해서 자살을 했다고 표창원 아저씨가 이야기하는 것도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와이프가 이 글을 보면서 왜 골든스테이트킬러는 1986년 살인을 한 이후 범행을 저지르지 않고 있다가 30년이 지나서 붙잡혔느냐라고 물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검색을 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다음은 뉴욕타임즈에 소개된 기사이다. 제목은 '연쇄살인범이 갑자기 그냥 살인을 멈추기도 하는가? 그렇다. 가끔씩은.'이다. 기사를 보면 모든 연쇄살인범이 평생 살인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가끔씩 그 충동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서 더 이상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정말 관심 있으신 분은 상기 기사에서 언급한 FBI의 보고서를 읽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나는 읽어보지 않았다).
https://www.nytimes.com/2018/04/26/health/serial-killers-golden-state.html
그리고 다음은 골든스테이트킬러를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폴 홀스'와의 인터뷰이다. 간단히 요약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골든 스테이트 킬러는 1981년 Gregory Sanchez와 Cheri Domingo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키가 190cm에 달하는 Sanchez와 육체적으로 다툼을 했는데 아마 이것이 그를 겁먹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서 5년간 살인을 멈추었다가, 1986년 젊고 아름다운 피해자를 발견하고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살해를 한 것 같다. 하지만 (비록 그가 계속 겁을 먹은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마지막 범행을 저질렀을 때는 이미 그의 나이로 인하여 예전만큼의 활동력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범인이 감옥에서 죽기 전에 자신이 진짜로 범행을 멈춘 이유를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위의 기사들이 나의 궁금증에 어느 정도는 답을 해주는 것 같다. 그럼 이제 어두운 부분에 대한 글쓰기는 마무리하고 다음에는 나쁜 놈은 결국 잡힌다는 희망을 이야기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