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Nice White Parents
미국과 캐나다에는 Parents Council 또는 PTA(Parent Teacher Association) 등으로 불리는 학부모회가 존재를 한다. 이것의 명칭은 주나 지역별로 조금씩 다른데 어쨌든 학교 운영이나 선생님들을 돕고자 학부모들이 모인 조직이다. 옛 기억을 떠올려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반장이나 공부 잘하는 사람들의 학부모가 반강제적으로 학부모회에 들어가고는 했는데 여기서는 순전히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하지만 한국이나 캐나다나 비슷한 점은 이런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적어도 우리 아이들 학교에서는).
나도 첫째 아이가 5년째 이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그동안은 한 번도 이러한 모임에 참석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둘째도 이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3년 후에는 셋째도 들어가기 때문에 학교 발전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뉴욕타임즈에서 나온 'Nice White Parents'라는 팟캐스트를 듣게 되었다.
이 팟캐스트는 첫 번째 에피소드가 나오기도 전 예고편만 올라온 상태에서부터 크게 논란이 되었다. 그래서 에피소드가 시작하기도 전에 무수히 많은 평점이 올라와 있었다. 당시 평점은 지금 평점과 마찬가지로 극과 극, 1점 아니면 5점이었다. 인종차별이라느니 엄청 기대된다느니 평도 참 많았다. 나는 처음에 이렇게 후기가 많길래 에피소드가 시작된 줄 알았다. 그런데 인트로만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는 내 핸드폰이 잘못되었나 생각을 할 정도였다.
아니 내 핸드폰에서는 왜 에피소드들을 볼 수 없지?
혹시 캐나다에서는 못 듣게 막힌 건가?
하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만큼 미국 사람들에게는 강렬한 제목과 인트로였나 보다.
이 팟캐스트는 미국 공교육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팟캐스트를 만든 리포터는 본인의 자식이 처음으로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주변의 학교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백인 학생들이 모이는 몇 개 학교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들어가기가 힘들 정도였지만 나머지 학교들은 백인은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심지어 백인이 적은 학교에서는 주로 백인 학생들만 모아서 'Gifted Class(영재반)'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 1954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백인과 흑인 학생들을 분리해서 가르치는 것이 위헌임을 만장일치로 결정한 이후(Brown vs Board of Educaiton 케이스라고 함) 거의 70년 동안 미국 공교육은 인종간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리포터가 유색인종이 많이 사는 지역 가까이 위치한 한 중학교의 설립부터 현재까지 변화되는 과정을 취재하였다.
사실 처음에는 매우 흥미진진하여 다음 에피소드가 기다릴 정도로 괜찮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를 정도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팟캐스트의 결론은 미국의 공교육에서 인종간, 빈부 간 통합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백인 부모들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다른 인종의 학부모들에 비해 학교 운영이나 교육청에 미치는 과도하게 크니 이것을 바로 잡자였다(고 나는 이해했다).
중간부터 팟캐스트의 내용이 내 마음에 잘 와 닿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캐나다와 미국의 교육 시스템이 너무 크게 차이 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미국의 공교육이 캐나다에 비해서 경쟁이 치열하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팟캐스트를 듣고 있다 보니 미국의 공교육은 캐나다와 비교하면 정말 장난이 아닌 것 같다.(반대로 말하면 캐나다에서는 정말 학교 공부만 해서는 무엇을 배우기는 하나 싶을 때도 있다).
내가 가장 놀란 것은 뉴욕에서는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공립학교도 학교를 골라서 간다는 사실이었다. 캐나다의(적어도 내가 살아 본 3개 주에서는) 공립학교는 본인 집 주소에 지정된 학교를 보내야만 하기 때문에 평판이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는 그 학군으로 이사를 가는 수밖에 없다(물론 예외도 있음. 예를 들어 시험을 봐서 들어가는 고등학교 등). 하지만 미국에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내의 공립학교들 중에서 몇몇 학교를 골라서 지원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백인 학생들만 모이는 학교가 생기고 반대로 흑인, 라틴학생들이 모이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그 결과 결국 목소리가 큰 백인 학부모들에 의해 백인들이 모이는 학교에 지원이 몰리고, 같은 학교 내에서도 유색 인종들은 혜택을 잘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이것을 들으면서 생각한 것이 있다. 바로 이번에는 나도 학부모회(Parents Council)에 반드시 참석해야겠다는 것이다. 팟캐스트에서 인종별로 섞여있는 학교라도 어딜 가든 학부모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대부분 백인이라는 말에 나도 이제부터는 적어도 '참석'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학부모회에서 얼굴을 내밀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학교 운영이나 교육청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인 가운데 문을 연 아이들의 학교는 다행히 아직까지 별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고 매주 교장선생님이 학교 소식지도 보내주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보니 학교 소식지에 10월부터 학부모회가 시작되니 참석을 원하는 학부모들은 회신을 달라고 쓰여있었다. 드디어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참석을 하겠다고 회신을 보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10월과 11월, 두 번의 학부모회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한 달에 한 번씩 학교에서 모여 회의를 하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Google Meet으로 회의가 진행되었다. 사실 첫 회의는 매우 고역이었다. 다들 처음 해보는 온라인 미팅이라 마이크 문제가 많았고, 생각보다 회의가 길어지는 바람에 옆에 있는 아이들이 점점 난리 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처음이라 이것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아무튼 참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주에 두 번째 회의가 진행되었다. 다행히 첫 번째 회의보다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이크 문제도 대부분 해결되었고, 진행도 조금 빨랐다. 그리고 이번에는 지난번 회의록과 이번 회의 어젠다를 미리 보내주었기 때문에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많이는 아니지만 두 번의 회의 참석을 통해 느낀 것은 역시 대부분 백인 학부모가 회의에 참석한다는 것이다. 남아시아(인도 혹은 파키스탄 쪽) 학부모 2명과 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백인이었다(화면으로만 봐서 남미 쪽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이들 학교에 한국 사람은 적어도 중국 사람은 좀 있으니 중국 학부모들도 참석하면 좋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대부분 여성 학부모인 것이 특이했다. 나와 회장 아저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이었다.
결국 회의에 참석한 선생님을 제외하면 총 10명 정도의 학부모만 참석을 하였다. 학교의 학생수가 300명에서 400명 사이이니 적당한 것인지 적은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절대적인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임원진을 다 채우지 못했다. 회의를 조용히 듣고 있다 보면 이거 나도 한자리해야 하나 싶었지만 일단은 올해는 참석에 의의를 두고 내년에 조금 더 활동하자는 생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예년과 달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행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우면서 다행이었다. 아직까지는 본격적으로 그러한 행사에 참석할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혹시 한 해 한 해 더 많이 참여하다가 셋째가 학교 갈 때쯤에는 학부모회의 회장이 되어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