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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Dec 12. 2020

라 콜롬브 커피(La Colombe)

비둘기 커피?

나는 캐나다에 오기 전 까지는, 아니 캐나다에 와서도 한동안은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았다.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잠이 잘 안 오기도 했거니와,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씁쓸하기만 한 것이 별로 맛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했을 때는 점심을 먹고 사람들과 산책을 할 때 회사 카드로 사 마실 때가 있긴 했지만 굳이 내 돈을 내고 마시지는 않았다.


캐나다에 오고 나서 초반에는 팀 홀튼스(Tim Hortons)나 세컨드 컵(Second Cup)과 같은 커피숍에 갈 일이 많았다. 취업에 성공하기 전 영어 튜터링이나 멘토링 등으로 커피숍에 갈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취업을 하고 나서는 집을 기지 삼아 여기저기 검사를 다니는 지금과 달리 사무실로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때때로 사람들과 팀 홀튼스에 갔다. 그때마다 커피를 마시지 않았던 나는 핫초코렛를 주문하고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아저씨들이 나를 보고 맨날 핫초콜렛만 마신다고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점심시간에 혼자서 식당에 앉아 밥을 먹기 애매하여 몇 달 동안 빨리 먹을 수 있는 핫도그를 두 개씩 싸갔다. 재빨리 먹고 다른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사람들이 ‘너는 핫도그를 정말 좋아하지?’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만 몰랐지 모든 사람들이 내가 점심때 핫도그만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보다. 그러니 분명 핫초콜렛만 마시는 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커피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언젠가 '커피부심'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커피를 마시면서 절치부심을 한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해괴망측한 말인가라고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회사 식당에 있던 커피를 마셔보게 되었다. 정확히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 사람들이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식당으로 가서 커피를 채워가는 것을 보고 나도 자연스럽게 한두 잔 마셔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이 뭐라고 참 맛이 있었다. 여기 사람들처럼 크림을 넣어서(한국에서는 다방 커피라고 불릴 그런 커피다) 마시니 맛이 괜찮았다. 그래서 나도 아침에 출근을 하자마자 식당에 가서 커피를 채우는 무리에 동참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회사에서 마신 커피는 캐나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밴 후트(Van Houtte)' 커피였다. 요즘 기계들은 그 자리에서 커피를 갈아서 커피를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우리 회사의 커피 기계는 봉투에 담긴 커피 가루를 기계에 집어넣은 후 뜨거운 물을 통과시키는, 아주 단순한 형태의 기계였다.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커피 기계'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물건이다. 그저 커피를 여과한 후 보온 통에 담아주는 물건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밴 후트 홈페이지에서는 Traditional Brewer라고 부르고 있다


이렇게 나도 어느 순간부터 커피를 마시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커피부심 따위가 있지는 않았다. 좋은 콩만 찾아다니지도 않았고, 커피는 역시 '밴 후트야'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격이 저렴한데 맛까지 괜찮으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하고 마셨다.


그런데 몇 년 전 미국에 내려갔다가 타겟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미국의 월마트나 타켓과 같은 마트들은 팔고 있는 물건들의 종류도 많고 캐나다에서 팔지 않는 물건들도 많기 때문에 이것저것을 구경하다가 처음 보는 캔커피를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라 콜롬브 (La Colombe, 비둘기라는 뜻)'라는 듣도 보도 못한 커피였는데 4개 묶음이 거의 10불이나 하였다. 미국 달러와 캐나다 달러의 환율을 생각하면 이 캔 커피 하나로 팀 홀튼스 커피 라지 사이즈 두 개를 사 마실 수 있을 정도였다. 분명 이렇게 비싼 커피를 캐나다에서 발견했다면 거들 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이다 보니 '이렇게 비싸다면 분명히 엄청난 맛일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행을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오는 길에 운전을 하면서 한 캔을 따서 마셔보았다. 그런데 한 입 들이키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뭐 이렇게 거지같은 맛의 커피가 다 있지?


너무 맛이 없어서 혹시나 상한 것은 아닐까 싶어 운전을 하면서도 몇 번이나 캔에 찌그러진 곳이 없나 다시 살펴보았을 정도였다. 나보다 오랜 기간 커피를 마셔 온 우리 와이프도 한 번 맛을 보더니 참 특이한 맛의 커피라는 의견을 주었다. 결국 괜히 비싼 돈 주고 이상한 커피를 샀구나 후회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주 특이하게도, 정말 알 수 없게도, 남아 있는 3캔을 하나씩 마시는데, 마실 때마다 어떻게 이런 맛의 커피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 마셔버리고 나니 왠지 나도 모르게 다시 한번 맛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비싼 커피가, 이렇게 맛이 없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 일이 있은 이후 한 동안 미국에 갈 일이 없어서 이 커피를 다시 마셔 볼 일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작년(2019년) 8월에 필라델피아에 갈 일이 생겼다. 필라델피아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면 좋을까 검색을 하다가 이 '라 콜롬브'의 커피 매장이 필라델피아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또 마침 첫 번째로 문을 연 바로 그 매장이 우리가 묵는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라델피아에서의 마지막 날 세 명의 아이들을 이끌고 그 매장을 향해 걸어가 보았다.


Rittenhouse Square 근처에 있는 라 콜롬브 매장. 아이들 세 명과 함께 갈 만한 곳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 집의 자랑은 바로 'Draft Latte'라는 커피로 가격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3~4불 정도였다. 우선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면 생맥줏집에서 생맥주가 나오는 바로 그런 탭에서 커피를 따라 준다. 탭에서 바로 나오기 때문에 생맥주처럼 커피에도 거품이 많이 들어있어 아주 부드럽고 괜찮은 맛이었다. 캔커피와는 맛이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달랐는데, 내가 느꼈던 캔 커피의 그 알 수 없는 맛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민이 될 정도였다.


이 가게의 자랑 'Draft Latte'. 생맥주 탭에서 맥주를 따르듯 오른쪽 모자 쓴 아저씨 앞에 보이는 탭에서 커피를 따라 준다


한 번 맛 보니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캐나다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마트에 들러서 캔커피를 종류별로 사 왔다. 모카맛은 처음 마셔보았는데 아주 맛이 괜찮았다. 그런데 처음 마셔보았을 때 이상했던 맛의 바닐라 커피는 다시 마셔봐도 역시나 이상했다.




앞으로 언제 다시 미국에 가 볼 수 있을까 싶지만, 커피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길을 지나가다 이 커피 가게를 발견하게 된다면 들어가서 마셔볼 만한 곳인 것 같다. 필라델피아 이외에도 뉴욕, 보스턴, 시카고, LA 등지에 매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한국에도 매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더 놀랍게도 한국에서는 드래프트 라떼를 팔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이야 말로 앙꼬 없는 찐빵, 붕어 없는 붕어빵 같은 경우가 아닐까 싶다(lacolombe.com에 해외 매장 소개가 없는 것을 보면 뭔가 상표만 빌려서 운영하나 보다).



라 콜롬브 1호 매장 위치. 브런치는 구글맵 삽입이 안되어서 지도를 캡처했다. +, - 버튼을 누르셔도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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