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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Dec 16. 2020

그(녀)의 이름은 톰-피에르(Tom-Pierre)

그런데 그(녀)는 칠면조

온타리오 킹스턴에 처음 살게 된 집은 단독주택이었지만 매우 조그마한 집이었다. 게다가 내가 태어난 해에 지어진 집이었기 때문에 구조가 꽤나 비효율적이었다. 이층에 지하까지 있는 집이었는데 불필요한 벽이 많고 집 크기에 비해 계단이 과도하게 커서 낭비되는 공간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이 집의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이었는데 결정적으로 일층에 화장실이 없었다. 그래서 화장실을 가려면 매번 이층으로 올라가야 했는데 자식이 늘어날수록 이것은 뭐 집을 이따위로 지었나라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그렇다고 돈을 들여서 리노베이션을 하기에는 뭔가 투자할 돈이 아까웠다. 이 집은 물리적인 제약으로 아무리 아름답게 고친다고 하여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 옆집 할머니에 따르면 한 번 들어가면 십 년 넘게 사는 동네의 다른 집들과는 달리 우리가 살았던 집주인들은 대부분 몇 년 살고 금방 이사를 갔다고 했다. 결국 우리 또한 2년도 채 살지 못하고 이사를 떠나야만 했다. 셋째가 생긴 이후 이 집은 더 이상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집이 있던 동네는 매우 조용하고 이웃들도 모두 좋았다. 특히 옆집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정말 좋은 분들이셨다. 그중 할머니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시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할머니의 자식들과 동네의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우리 집 뒷마당에 한동안 방치되어 잡초가 무성한 조그마한 모래 놀이터가 있었다. 내가 그곳에 있던 잡초를 뽑고 있는데 옆집 할머니가 담장 너머로 등장하여 '오 거기 모래 놀이터가 있었지! 그게 알렉스가 마지막으로 사용했는데, 보자.... 알렉스는 리즈의 아들이었고 리즈는 크리스 다음다음에 살았던 사람이니 한 10년 정도 되었나 보다'라고 말씀을 하신다. 


또는 오랜만에 만나서 'How are you?'라고 물으면, '우리는 잘 지내고 있지! 그리고 아니사(첫째 딸)는 타일러(그녀의 아들)와 메건(그녀의 딸)이랑 이번에 어디를 가서 어떻게 했어. 그리고 팸(둘째 딸)은 소피랑 애비랑, 맞다, 소피랑 애비는 쌍둥이인건 알고 있지? 아무튼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어. 그리고 달시(셋째 딸)는 이번에 어디에 나갔는데 마침 누구를 만나서 뭐시기를 했대. 그리고 배써니(넷째 딸)는 다시 일을 나가는데 오랜만에 나가서 그런지 힘들기는 한데 괜찮대....'라고 속사포를 쏟아 내신다. 


참고로 위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할머니 딸들의 이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충 적은 이름들이다. 그 모든 이름들을 기억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본인의 주변 사람 및 동네 모든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실 정도니 당연히 동네 반장 역할도 하셨다. 그래서 매년 연말이면 가족과 주변 이웃 및 그전에 살던 이웃 등을 초대하여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곤 했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집에 모이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두 밖에 나가서 크리스마스 캐럴들을 부리는 것으로 파티가 마무리된다(이것도 벌써 옛날 일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 때문에 이제 이런 파티는 꿈도 못 꾼다). 


아무튼 이러한 인연으로 이사를 간 후에도 때마다 연락을 주고받고 연말에 크리스마스 카드도 드리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거의 일 년 정도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난 주말에 크리스마스 카드와 간단한 선물을 들고 할머니 할아버지 집 앞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여전히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 후 할머니는 본격적으로 입이 터지기 시작하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할머니 할아버지의 근황과 가족들의 근황, 동네 사람들의 근황까지도 간략하게나마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이한 것을 말씀해 주셨는데 갑자기 칠면조(Turkey)를 본 적이 있냐고 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예전에 그 동네에서 살 때 봄에 돌아다니는 야생 칠면조가 있길래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인 줄 알고 예전에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고 요즘에 이 동네에 야생 칠면조가 살고 있는데 자기네 뒷마당에서도 자고 다른 집 뒷마당에서도 자고 지붕에도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별의별 일이 다 있네라고 이야기하면서 짧지만 반가웠던 만남을 마무리하였다. 


그러고 나서 차를 돌려 나오는데, 길을 나오자 반대편 집의 앞마당에 무엇인가 큰 동물이 있는 것이 보였다. 혹시 했는데 역시나 였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바로 야생 칠면조가 있는 것이었다. 이런 구경은 안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차를 세우고 (나만)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이 칠면조 녀석이 차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우리가 차를 세우자 갑자기 일어나서 차로 다가왔다


나는 처음에는 오리나 캐나다구스같이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많이 주어서 다가오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리들에게 많이 하는 것처럼 손으로 먹을 것을 던지는 시늉을 하였다. 보통 그런 시늉을 하면 오리들은 뭐를 던졌나 살펴보는데 이 녀석은 그런 것 없이 계속 차에 가까이 다가왔다.


칠면조는 무척이나 크다. 와이프는 이렇게 크니 슈퍼에 파는 칠면조들이 그렇게 크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계속 다가가자 이 녀석은 오히려 나에게 '꾸르르륵'하는 소리를 내면서 다가왔다. 나는 이것이 좋아서 그런가 싶었지만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등을 돌려 돌아가는데 갑자기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깜짝 놀라서 달아났다. 내가 차에 탄 뒤에도 이 녀석은 차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갑자기 뛰어서 차를 쫓는 것이었다. 다행히 조금 따라오다 말았지만 분명 우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우리가 이 칠면조를 만났다고 할머니에게 사진을 보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That's my Tom-Pierre!'라고 답을 하셨다. 아니 이 녀석의 이름이 '톰-피에르'였다니! 그런데 이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톰-피에르'같이 중간에 하이픈까지 들어있는 이름을 갖게 된 거지?


할머니에 따르면 이 녀석은 자동차를 좋아하지만 사람은 싫어한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녀석이 사람이 좋아서 오는 줄 알았다. 알고 보면 나를 보고는 '꾸르르륵' 소리를 내면서 싫어하고 자동차가 달릴 때는 신나서 함께 달린 것인데 말이다. 아무튼 할머니는 톰-피에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지 않았지만 아래와 같은 사진을 보내주셨다. 


나무와 지붕에 올라간 톰-피에르. 늠름하다.


칠면조도 새라고 지붕이나 나뭇가지까지는 날아서 올라갈 수 있나 보다. 와이프는 아무리 생각해도 저 큰 녀석이 지붕이나 나무에 올라가는 것이 상상이 잘 안되나 보다. 그러고 보면 어떻게 올라갈까 싶기도 하다. 비행기가 이륙하듯 먼 거리를 달린 후 날갯짓을 해서 올라갔을까? 


그런데 도대체 톰-피에르는 기나긴 겨울을 어디서 보내려고 저 동네에 머무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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