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검사 Jan 18. 2021

노조에 가입해 보셨나요?

나의 두 번째 노조 이야기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만 해도 내가 평생 노조(Union)에 가입할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예전에 대학교 친구가 했던 말을 떠올려 보면 현대자동차에서는 대졸 사무직들도 대리까지는 노조에 가입된다고 하지만 그곳 말고 대졸 사무직에 노조가 있는 기업이 있는지 모르겠다(이 말은 취소해야겠다. 그러고 보니 공무원이나 공공 기관에는 노조가 심심치 않게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회사에서는 입사하기 몇 년 전 생산직 노조원들이 크게 파업을 벌이는 바람에 사무직들 사이에서는 '노조'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로 취급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노조가 있는 것 자체가 크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가입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노조는 그저 남의 나라 일이라고만 생각하였다. 




6년 전 캐나다에 처음 도착하여 아주 어렵게 붙잡은 첫 번째 직장은 사스카추완 주의 정부 관련 기관이었다. 한때 주 정부에 속해 있던 부서였으나 내가 입사하기 몇 년 전 분리되어 별도의 비영리 단체로 운영되는 곳이었다(한국으로 친다면 무슨 무슨 공사 정도 된다고 보면 맞을 듯). 주 정부에 속해 있었을 때는 모든 직원들이 사스카추완 주 정부 노조(Saskatchewan Government and General Employees' Union, SGEU)에 가입되어 있었다. 하지만 주 정부에서 분리되면서 엔지니어는 노조에서 탈퇴하였고 내가 속해있던 검사원(Inspector)과 기타 사무직들은 그대로 노조에 남아있게 되었다. 그 결과 나도 입사를 함과 동시에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노조에 가입을 하게 되었다.


내 인생의 첫 노조 SGEU


노조에 가입을 했다고 하지만 노조는커녕 캐나다 직장 생활 자체가 낯설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내가 노조에 속해 있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조차 알지 못했다. 심지어 나의 임금과 혜택은 단체 협약이라는 것을 통해서 정해 지고 있다는 사실도, 노조 사무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물론 이런 것을 몰라도 회사 생활과 내 인생에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다. 


문제가 될 것이 있기 전까지는.



한편 이 회사의 수습 기간(Probation)은 무려 12개월이나 되었다. 비록 그 사이에 나를 자를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수습 기간 중에는 특별한 조건 없이 해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입사 후 12개월이 지나 수습 기간이 끝났을 때 이제 갑자기 잘릴 일은 없겠구나 싶어서(게다가 나는 노조원인데!) 이곳에 정착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마련하였다. 캐나다로 오면서 들고 온 전세금, 퇴직금, 연금 등을 대부분 집어넣어 집값의 20%에 해당하는 다운페이를 지불하였고 남은 80%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이렇게 안정되는가 싶었던 나의 인생은 2016년 4월 경부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사스카추완의 경제는 원유(Oil)와 포타쉬(Potash, 비료로 사용되는 광물)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당시 그 두 가지 모두 가격이 계속 하락하여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직원을 해고하는 회사들도 매우 많았고 문을 닫는 회사들도 많았다.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는 그런 상황을 보면서도 나는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내가 다니는 회사는 '비영리' 기관이었고, 나는 '노조원'이었으며, 내 고용 계약서에는 'Permanent'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CEO가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서 앞으로 상황이 좋지 않으니 퇴직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회사에서 제공하는 좋은 조건으로 미리 퇴직하는 것을 고려해 보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명예퇴직을 권고하는 것이었다. 퇴직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던 나는 그저 '왜 이런 메일을 나한테도 보낼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퇴직을 선택하는 사람이 없자 회사에서는 몇 주 후 퇴직 설명회를 진행하였다. 처음에 나는 당연히 내가 참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노조에서도 사람이 나왔고, 사무실의 모든 사람들이 다 회의실에 들어갔기 때문에 나도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설명회에서 CEO는 적자(한국 돈으로 겨우 6억!)가 예상되는 회사의 전망을 설명하였고 다시 한번 좋은 기회가 될 테니 퇴직 생각이 있는 사람은 말을 해 달라고 하고는 노조원끼리 이야기를 하라고 자리를 비웠다. 당시까지도 전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던 나는 갑자기 노조에서 나온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는 눈이 번쩍 뜨였다. 누군가 앞으로 어떻게 될 거 같냐고 묻자 그 사람은 만약 나간다는 사람이 없으면 밑에서부터(Seniority가 낮은 순으로) 내보내지 않겠냐고 답을 하였기 때문이다.


아!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다. 이 회사에서 가장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니던가?!?!?!



그리고 설명회가 있은지 약 한 달 후, 아침에 출근을 하니 상사였던 Chief Inspector가 나를 자기 사무실로 불렀다. 그 사람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당시 진행하고 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사무실을 찾아갔는데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서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곧 Chief Inspector와 인사담당자가 함께 들어오는 것이었다.


사람의 직감이라는 것은 참 놀랍다. 그때까지는 설마라고 생각하며 애써 외면했지만 그 둘이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아! 잘렸구나!'라고 바로 알 수 있었다. 결국 그들은 나에게 해고통지서를 주었고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단체 협약에 따라 60일 이후에 해고가 된다고 말을 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삼일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받았던 해고통지서. 그때 들어갔던 사무실을 생각하면 아직도 조금 쓸쓸하다.






처음 며칠 정도는 분노와 후회와 절망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나자 조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노조원이었기 때문에 해고 60일 전에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내가 해고 통지를 받고 나서 며칠 후 노조원이 아니었던 엔지니어 두 명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해고를 당한 후 바로 짐을 싸서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 우선적으로 했던 일은 바로 옆자리 아저씨에게 단체 협약 책자를 빌려서 자세히 읽어 보는 것이었다. 그제야 단체 협약을 읽어 보니 참 많은 것들이 적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업무 시간, 추가 근무, 휴가 등등. 그중에서도 주의 깊게 살펴본 것이 해고에 관한 내용이었다. 단체 협약에 따르면 노조원은 해고 통지를 받게 되면 다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1. 나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을 밀어낸다(Bumping Option)

2. 해고를 당하고 재고용 차례를 기다린다

3. 퇴직(Retirement)을 하고 가능할 경우 보상(Severance)을 받는다

4. 사직(Resign)을 하고 보상(Severance)을 받는다

5. 무급 휴가를 가고 최종적으로 사직, 퇴직, 또는 해고 중에서 선택한다


말이 다섯 개이지 나같이 연차가 낮고 퇴직까지 무수히 많이 기간이 남은 사람들에게는 하나같이 쓸모없는 조건들이었다. 


그래도 단체 협약을 자세히 읽어 보니 해고(Lay-off)와 사직(Resign)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고를 당하면 고용보험(Employment Insurance)을 수령할 수 있고 나중에 우선적으로 재취업이 가능하다. 만약 사직을 한다면 고용보험과 재취업이 불가능 하지만 약 두 달치 월급 정도의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60일 동안 열심히 구직 활동을 한 후 사직을 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만약 회사에 다시 돌아올 수 있더라도 내가 결국 맨 밑일 테니 언제 다시 잘릴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60일이 지나기 전 당시 다니던 회사와 똑같은 일을 하는 온타리오의 기관에 취업을 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로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절대 사스카추완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3,00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였다. 


만약 내가 노조원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해고당하지 않았을 것이다(내가 해고당한 이유는 오직 연차가 낮았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노조원이었기 때문에 돈을 받으며 이직을 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무척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내가 새롭게 다니게 된 회사는 하는 일은 예전과 거의 비슷했지만 노조가 없는 곳이었다. 이곳도 한 때는 주정부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노조가 있었을 텐데 이미 20년도 전에 정부에서 분리가 되어서 그런지 노조의 흔적조차 없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내가 일하는 곳과 다른 분야의 검사원들 사이에서 노조를 결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더니 올해 들어 갑자기 본격적으로 노조가 설립되려고 하고 있다. 그 결과 캐나다에서 노조가 결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어디 가서 돈을 주고도 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온타리오에서 노조를 결성하기 위해서는 노조를 설립하려는 신청인이 온타리오 노동 관계 위원회(Ontario Labour Relations Board)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때 적어도 직원들의 40%가 노조 가입 동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노동 위원회에서 신청서를 접수하면 대상 회사에 신청서 접수를 알리고 (잠정) 노조원 명단을 통보한다. 대상 회사에서는 이 명단을 검토 후 이견이 있으면 2일 이내에 이의를 신청해야 한다.


노조원 명단에 이의가 없을 경우 곧 직원들을 대상으로 노조 승인 찬반 투표가 벌어지고 찬성이 과반이라면 노동 위원회에서 노조를 승인한다. 만약 (잠정) 노조원 명단에 이의가 있을 경우 우선 투표를 진행 후 이견이 있는 대상자의 표는 구분해 놓는다. 노동 위원회에서는 투표 이후 양쪽 대표를 모아 공청회를 가진 후 이견이 있는 대상자의 표를 포함할지 제외할지를 결정한다. 최종적으로 찬성이 과반이면 노조가 승인된다.


노동위원회의 결정문과 노조 승인 투표를 공고하는 문서


현재 회사의 노조 진행 상태는 이렇다. 노조에서 노동위원회에 노조 설립 신청 서류를 제출하였고 회사에서는 (잠정) 노조원 범위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였다. 회사에서는 네 가지 분야의 검사원이 있는데 그중 한 분야의 검사원만 대상으로 노조를 설립할 경우 회사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고 주장을 하여 내일부터 48시간 동안 우선 모든 검사원들을 대상으로 노조 설립 찬반 투표가 진행될 예정이다. 노동위원회에서 노조 설립 범위를 어떻게 결정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약 노조가 설립된다면 모든 검사원을 대상으로 설립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는 (물론) 노조가 설립되는 것이 매우 불편한지 CEO가 계속 메일을 보내고 Skype로 설명회도 진행하였다. CEO에 따르면 검사원들이 노조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 같은데, 나는 연락을 받은 것이 단 하나도 없어서 조금 의아했다. 내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과반이 찬성하면 어쩔 수 없이 노조에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데 연락조차 없다니 조금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금요일 밤 노동위원회의 서류에 적힌 노조 관계자에게 메일을 보내보니 바로 답이 왔다. 적어도 일부러 누락한 것 같지는 않아서 마음이 누그러졌다. 


나는 평소에는 다른 검사원들을 만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에 도대체 다른 검사원들은 노조 설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전화도 물어볼 수도 없고 말이다. 회사에서는 (당연히) 노조의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한다. 예를 들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 년에 천 불이 넘는 노조비를 내야 하고(그러면서 이것이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노조는 기본적으로 세일즈맨이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이 100% 지켜질 수는 없다 등등. 


나도 처음에는 이럴까 저럴까 고민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지난번 회사에서 경험했던 노조를 떠올려 본다면 노조가 있는 것이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물론 노조가 있다고 해도 정작 가장 어려운 순간에는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고용, 해고, 휴가, 추가 근무 등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문서화되어있기 때문에 어려울 때 조금이라도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내일부터 벌어지는 찬반 투표, 그리고 노동위원회에서 진행할 공청회가 과연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르겠지만 참 재미있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캐나다에 살면서 노조에 가입도 해 보고, 해고도 당해 보고, 노조 창립 멤버가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