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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May 28. 2022

해고도 당해봤는데 파업쯤이야

갈 때까지 가보자

이번 글은 2021년 1월에 쓴 '노조에 가입해 보셨나요?'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벌써 1년도 훨씬 전의 일이지만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찬반 투표는 과반의 찬성으로 마무리되었다. 87% 정도가 노조 설립에 찬성을 하였는데 이 정도면 압도적인 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회사가 자충수를 두었다. 처음에는 나와는 다른 분야의 검사원들만 노조 설립 신청을 하였는데 회사에서 전체 검사원을 대상으로 찬반 투표를 해야 된다고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모든 검사원(약 150여 명)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물론 우리 회사만의 별도 노조가 설립된 것은 아니고 온타리오의 공공기관 근로자 노조라고 할 수 있는 OPSEU 산하로 들어갔다.


막상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고는 하지만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노조가 설립되었을 무렵 이런저런 일로 회사에 온갖 정이 떨어져(지난 글 '다시 쓰는 이력서' 참고) 단체협약이 맺어지기 전에 회사를 떠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쓸 곳이 없었고 생각보다 불러주는 곳도 없었다. 내가 일하는 분야가 워낙 지역에 따라 일자리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애초에 지금 살고 있는 도시를 떠나 더 큰 도시로 이사를 가지 않고서는 처음부터 이직을 할 곳이 마땅치 않긴 했다. 그렇다고 이사를 할 수도 없었는데 그 이유는 첫째로 결혼 후 11년 동안 9번이나, 그것도 대부분 초장거리로만 이사를 해서 더 이상 이사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우리 동네도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토론토나 오타와의 집값에 비하면 턱없는 수준이라 그런 곳에 집을 살 수가 없다. 결국 좋으나 싫으나 그냥 여기에 머물러 있어야 할 운명인가 보다.



그 사이 시간은 흘렀지만 노조와 회사의 단체협약의 진행은 무척이나 더디기만 하였다. 노조가 설립된 직후에는 검사원들을 대상으로 현재 임금과 복지 수준 그리고 본인이 기대하는 임금과 복지 수준 등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물론 남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남아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적어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좀처럼 들리는 소식이 없었다.


노조로부터 다시 소식을 듣게 된 것은 거의 1년이나 지난 이후였다. 그동안 회사와 몇 차례 만남을 가졌지만 회사가 전혀 협상에 임하지를 않아 파업 찬반 투표를 한다는 것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동안 별로 들은 소식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가 뜬금없이 갑자기 무슨 파업이냐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쨌든 중요한 회의가 될 테니 노조원 회의에 참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줌으로 진행되는 회의에 들어가 보니 갑자기 한다는 파업 찬반 투표는 하지 않고 우선 온타리오 노동 관계 위원회(Ontario Labour Relations Board)에 조정(Conciliation)을 신청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노조의 말에 따르면 그동안 회사에서 전혀 협조적이지 않아서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회사 측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협상에 임하려는 태도를 보여서 우선 '조정'을 신청한다는 것이었다.


단체협약 중 노조나 고용주가 필요할 경우 정부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정부에서는 중립적인 '조정 위원(Conciliator)'을 선정해서 협상의 진행을 도와준다고 한다. 다만 이 조정 위원은 강제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노조나 고용주가 그들의 말을 따를 필요는 없다. 만약 최종적으로 조정에 실패할 경우 노조나 고용주는 조정 위원에 'No Board' Report라고 부르는 것(협상 결렬 리포트 정도라고 생각하면 됨)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러한 요청을 받은 조정 위원은 정부에 'No Board' Report를 제출하고 제출 후 17일째 되는 날부터 파업 또는 직장 폐쇄가 가능하게 된다. 물론 그 기간 동안 계속 협상을 할 수도 있고, 17일 이후에도 반드시 파업이나 직장 폐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뭐 일단 회사에서 본격적으로 협상을 하겠다고 하니 빨리 타결되어서 동종 업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월급이나 좀 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이상한 점을 하나 깨닫게 되었다. 법적으로 반드시 조정을 거쳐야만 파업이 가능한데 노조에서는 왜 굳이 처음부터 파업 찬반 투표를 한다고 했을까 싶다. 그냥 단체협약 협상 상황 업데이트라고 말했어도 되었을 텐데. 회사를 자극하고 노조원들의 회의 참석을 독려하기 위해서 그랬을까?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협상은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을 들어보면 여전히 진행되는 것이 별로 없는 듯했다. 딱 한 가지 진행된 것이라고는 노조 설립 이후 동결되었던 2021년 임금 상승분을 2022년 4월에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인상률은 평균 이상 고과자는 1.6%, 평균 이하는 0.9%였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내 월급의 실수령액은 한 달에 4만 원 정도 올랐다. 노조가 협상은 하고 있기는 한 건가 싶을 때 드디어 노조에서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5월 18일 파업 찬반 투표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느낌상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분명 뭔가 할 것 같기는 했다.


회의에 들어가서 노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회사가 하는 짓이 정말 가관이었다. 비록 1년 6개월 정도였지만 지난번 회사에서 노조에 몸을 담가 봤던 나로서는 회사가 이해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어느 단체협약서를 살펴보더라도 휴가, 징계, 퇴직, 해고 등에 대한 절차가 자세하게 적혀있다. 본격적으로 돈 이야기를 하기 전에 (상대적으로 협상이 쉬운) 그러한 내용들을 먼저 정하기 마련인데 그런데 회사에서는 노조가 제시한 내용을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매우 이례적으로 회사에서 노조에게 그러한 내용들을 제시했는데 당연히 노조가 수용할 가치가 없는 것들이었다.


도대체 회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일부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주 5일 40시간 근무에서 주 7일 40시간 근무로 변경

해고 통보 시 최대 3일 전 통보

징계 시 노조 대표 참석은 허용하지 않음

검사원들이 평가(시험)에서 누락될 경우 다른 곳으로 배치할 수 있고, 한 번 더 누락 시 해고 가능

건강 문제로 24개월 이상 근무 불가 시 근속연수 누적을 없앰

병가, 위로 휴가, 연금 등에 대한 구체적인 숫자를 전혀 제시하지 않음


코딱지보다 적은 2021년 임금 인상분도 회사에서는 전혀 이야기가 없었다가 노조에서 기존 계약에 따라 임금 인상을 하지 않으면 계약 불이행으로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해서 받아낸 것이라고 한다. 기존 계약에서야 회사가 인상분을 결정하는 것이니 노조가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할 수는 없었나 보다.


어용 노조가 아니고서야 어느 노조가 현재보다 나쁜 조건으로 계약을 할까 싶다.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저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들은 것 말고는 협상이 진행된 것이 전혀 없었으니 파업 찬반 투표를 할 때가 되긴 했다.


하지만 파업을 하게 되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경제적인 측면이다. 많은 사람들이 월급을 받아서 먹을 것을 사고, 빚 갚고, 기름값을 낼 텐데 갑자기 월급이 끊기면 인생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서 받던 보험 혜택도 끊길 테니 갑자기 치과를 가거나 약을 사야 한다면 더 곤란할 것이다.


이러한 고통을 얼마나 덜어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하루에 4시간 이상 노조 파업 활동에 참여하면 노조에서 하루에 40불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자녀가 있을 경우 한 명 당 일주일에 50불이 추가. 결국 내가 일주일 동안 파업 활동에 참여하면 350불을 받는다는 소리인데 기존 월급의 1/3도 안 되는 금액이니 걱정이긴 하다. 만약 정말 파업에 들어가면 하루에 4시간 최저 시급 알바라도 해야 할 듯하다.


어쨌든 이러한 우려 속에서도 파업 찬반 투표가 진행되었다. 난생처음 해 보는 파업 찬반 투표였다. 질문은 아래와 같았다.


1. 네 - 나는 임금협상팀이 필요시 파업을 요구하는 것을 승인합니다

2. 아니요 - 나는 임금협상팀이 파업을 요구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에 파업에 부정적인 의견도 많았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될지 참 궁금했다. 노조 입장에서도 반대표가 많거나 찬성표가 많더라도 겨우 50~60% 정도의 찬성률이라면 협상에서 강하게 나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결과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3~4분 정도 후에 투표가 마감되었고, 결과가 공유되었다. 무려 89%의 찬성이었다. 이날 노조원의 81% 정도가 참석했으니 꽤나 높은 수준의 찬성률이라고 할 것이다. 긍정적인 결과에 안도가 되었는지 노조 대표도 울먹이면서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어떻게 협상이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뭐 캐나다에서 해고도 당해보았는데 파업이라고 못할 건 무어냐 싶다. 내 인생에 언제 파업을 해보겠냐는 생각에.






높은 찬성률에 힘을 얻은 노조가 다음 날 언론에 관련 기사를 내보냈고, 그다음 날 회사에서는 노조가 잘못된 정보로 노조원들을 호도하고 있다고 메일을 보내왔다. 회사에 따르면 노조가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아서 협상이 지지부진했고, 조정 절차에 들어간 이후에야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노조에서 파업 투표를 했다는 것이었다.


캐나다에서 알게 된 표현 중 '오캄의 면도날(Occam's Razor)'라는 표현이 있다. 원래 뜻은 더 복잡하지만 쉽게 설명하자면, 두 가지 이상의 해석이 존재할 경우 가장 적은 가정을 한 것이 맞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회사는 조정 절차에 들어간 이후에야 노조가 협상에 임했다고 했는데 정작 조정을 신청한 측은 노조였다.


회사가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아 노조가 조정을 신청한 것이 더 단순한 설명일까, 아니면 노조가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는데 불현듯 조정 신청을 하고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는 것이 더 단순할 설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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