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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Sep 07. 2022

숨 막히는 배신자 추격전

인생의 첫 파업 이야기, 그것도 캐나다에서 2

캐나다 시간으로 2022년 7월 21일 0시부터 파업이 시작되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나는 파업이 시작될 때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파업이 시작되었고는 해도 당장 피부에 와닿는 것은 없었다. 파업 전후로 노조에서 온라인 미팅도 많이 진행했지만 시차가 14시간이나 되기 때문에 참여하기가 애매했다. 주로 캐나다의 저녁 시간에 미팅이 있었는데 나는 그 시간이면 밖에 나가서 아이들과 열심히 놀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파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은 바로 회사 전화기가 막혀버렸다는 것이다. 사실 회사 측에서 파업에 들어가면 더 이상 메일에 접근을 할 수 없고 컴퓨터, 핸드폰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긴 했다. 그런데 뭐 메일에 접근을 할 수 없다면 휴가 중에 더 이상 메일을 확인할 필요가 없으니 더 좋고, 컴퓨터야 어차피 쓸 일이 없으니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회사 핸드폰은 카메라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들고 다녔지만 전화가 먹통이 되고 메일에 접속이 안 되는 정도라고만 지레짐작을 하였다. 하지만 파업이 시작되고 이틀 정도가 지나자 잠금 화면이 '분실된 폰'이라는 문구로 바뀌면서 잠금을 해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럴 수가! 


회사에서 가끔씩 잠금 화면 사진도 일괄적으로 바꾸어 버리고는 했으니 당연히 이 정도를 예상하고 있어야 했는데 내가 노는데 바빠서 미처 여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았다. 아...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옮겨서 글도 쓰고 유튜브 영상도 만들어야 하는데 망했다.


그다음 변화는 바로 월급이 끊겼다는 것이다. 캐나다는 이주일에 한 번씩 급여가 지급되는데 파업 전날까지의 급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급여가 지급되지 않았다. 일을 하지 않으니 당연히 월급도 받지 않게 된 것이었지만 막상 월급이 딱 끊기고 나니 새삼스러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주일에 한 번씩 노조에서 파업 급여(Strike Pay)가 지급된다는 것이다.


내가 속한 노조(OPSEU, '옵수'라고 발음, 온타리오 공공 근로자 노조)에서는 파업이 3일 이상 이어질 경우 주 20시간 이상 파업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파업 급여가 지급된다. 나 같은 경우 매주 400~500불 정도 받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산정이 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예전 회의 때 파업 급여는 하루에 40불이 지급되고 부양하는 미성년자가 있을 경우 한 명 당 10불을 추가로 지불한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내가 참석하지 못한 회의에서 금액에 대한 업데이트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들어오고 있으니 자세히 안 찾아보고 그냥 주는 대로 잘 받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변화는 바로 내가 캐나다로 돌아오자마자 회사 용품들을 수거해 갔다는 것이다. 파업 시작 직전 회사에 내가 캐나다로 돌아가는 날을 통보하긴 했지만 정말 오자마자 회사 차량이고 핸드폰이고 컴퓨터를 모두 수거해 갔다. 캐나다의 모든 것이 그렇듯 이 놈의 회사는 평소에는 무엇이든 느리고 일처리도 거지 같더니만 이런 것은 정말 번개같이 처리해서 깜짝 놀랐다. 자동차의 경우 어차피 개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으니 파업 기간 중에는 쓸 생각도 없었지만 6년 동안 항상 같은 자리에 서있던 차가 없어져 버리니 뭔가 허전했다. 와이프는 우리 집 앞에 더 이상 이 차가 세워져있지 않은 것을 보고는 드디어 내가 파업 중이라는 사실이 확 와닿았다고 했다. 






막상 캐나다에 돌아왔지만 내가 파업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시위를 하는 현장에 갈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경우 파업을 한다고 하면 자신들이 출근을 하는 사무실이나 건설 현장으로 나가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겨우 170명 정도 되는 검사원들이 한국보다 몇 배는 큰 온타리오 전역에 퍼져있는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한 군데 모여서 시위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니, 모여서 시위를 할 곳을 찾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본사에 나가서 시위를 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어차피 절반 이상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본사에 가서 시위를 한들 별로 효과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 회사의 본사는 토론토 공항 근처에 있기 때문에 주변에 별다른 것이 없어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만한 곳도 아니었다. 


그나마 검사원들이 많이 몰려있는 토론토나 오타와에서는 자주 검사를 나가는 곳이나 건설 현장에 나가서 시위를 하고는 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검사원이 나 혼자이기 때문에 혼자 어디 가서 피켓을 들고 있기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내가 토론토나 오타와의 시위 현장으로 가면 좋겠지만 집에 남은 차 한 대를 가지고 멀리 나가 버리면 와이프와 아이들이 집에서 발이 묶여 버리기 때문에 혼자서 나갈 수가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캐나다에 돌아왔지만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차피 시차 적응하는데 시간도 필요하니 이참에 마음 편하게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자고 생각을 하였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주간 미팅에 참석하는 것이니 오랜만에 주간 미팅에 들어가 보았다. 회사와 협상은 전혀 진전이 없아 보였고 지역 별로 시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가 공유되었다. 


그런데 미팅이 끝나고 내가 속한 노조 지부의 대표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나의 노조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 있다면서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내가 너무 노조 활동에 참여를 안 해서 메일이 왔나 보다 생각하면서 마침 그날 개통한 번호를 알려주었다(지금까지는 회사 전화기만 사용해서 개인 번호가 없었음). 


다음 날 노조 대표와 통화를 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 노조 대표는 나에게 지금까지 활동이 전혀 없는데 혹시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즉, 노조를 배신하고 회사로 돌아갔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그렇지 않다며, 그동안 휴가였고 엊그제 한국에서 돌아왔을 뿐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차가 없어서 도대체 참여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노조 대표는 현장에 나오는 게 힘든 경우 다른 일, 예를 들어 온라인(트위터)으로 시위를 해도 된다며 우선 이야기를 마쳤다. 


당시에는 내가 파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말 모르긴 했다. 나는 전화를 끊이며 그저 지금까지 내가 너무 안 보여서 전화를 했나 보다 정도라고만 생각을 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철없이 전화기에서 백업을 하지 못한 것이 있어서 잠금을 잠시 풀어달라고 회사 IT팀에 연락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노조 대표에게 회사에 그런 것을 요청해도 되는지 먼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바로 내 프로그램(*)의 노조 담당(Steward)에게서 문자가 왔다.

(*) 내가 일하는 곳에는 보일러/압력용기, 엘리베이터, 연료 세 가지 프로그램이 있고 각각의 검사원들은 전혀 다른 일을 하기 때문에 다른 프로그램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름


아직도 회사 전화기를 쓰고 있다는 소리는 네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나?



이럴 수가! 잘못하면 배신자로 찍히기 딱 좋겠구나!!


나처럼 노조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을 텐데 배신자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래서 구구절절이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우리 보일러/압력용기 검사원 중에서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계속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몇 있기 때문에 나도 일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고 하는 것이었다. 또다시 구구절절이 그렇지 않다고 설명을 해서 (적어도 내 생각에는) 오해를 풀 수 있었다. 


배신자를 잡으려는 자의 질문은 짧지만 오해를 풀려는 자의 대답은 구구절절하게 길다






그 이후 파업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게 되면서 느끼된 것이지만 회사 구조상 혼자 살겠다고 회사로 돌아간 배신자를 찾아내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소에 일할 때를 생각해 보면 각자 검사원들은 그저 자기가 맡은 구역을 돌아다니면서 알아서 검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검사원들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 특히 십 년 넘게 회사를 다녀도 다른 프로그램의 검사원, 다른 지역의 검사원들은 얼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170명의 검사원들이 다들 멀리멀리 떨어져 있으니 파업 활동에 얼굴을 비추지 않는 사람 중에 누가 회사로 돌아갔는지, 누가 생계를 위해 다른 일(파트타임)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단순히 파업에도 참여 안 하고 회사로도 안 돌아갔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주소록이라도 있으면 전화라도 해볼 텐데 사람들이 나처럼 파업 전에는 개인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메일 말고는 연락할 방법이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일반적인 경우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회사로 돌아간다면 파업이 끝난 후 다른 노조원들에게 좋은 시선을 받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일하면서 어차피 다른 검사원들을 볼 일이 없으니 그냥 회사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중에 크게 불편한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이유로 노조에서는 누가 회사로 돌아갔는지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되었고, 점점 길어지는 파업 속에서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한 노조원들도 누가 누가 배신을 했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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