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첫 파업 이야기, 그것도 캐나다에서 1
이번 글은 2022년 5월에 쓴 '해고도 당해봤는데 파업쯤이야'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지난 (2022년) 5월 노조에서 실시한 파업 찬반 투표 결과 파업에 찬성하는 노조원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회사는 여전히 노조와 협상에 임할 생각이 없으면서도 계속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말을 할 뿐이었다. 누가 봐도 이대로 간다면 파업으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마 우리나라의 법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지만 온타리오에서는 법적으로 파업을 하기 위해서는 몇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선 노측과 사측이 단체 협약 과정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할 경우 노측 혹은 사측에서 정부에 조정(Conciliation)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면 정부는 조정관(Conciliation Officer)을 임명하여 양측이 협상을 할 수 있도록 도우는데 이 조정관은 협상을 돕는 것 말고는 특별한 권한이 없기 때문에 노측이나 사측에 이래라저래라 말을 할 수는 없다.
이 조정 과정을 통해서도 아무 진전이 없으면 노측이나 사측에서 조정관에게 협상 결렬을 통보하게 되고 조정관은 정부(Ministry of Labour)에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보고를 한다. 그러면 정부에서는 더 이상 조정 위원회(a board of conciliation)가 없다고 노측과 사측에 통보를 하게 되는데 이를 흔히 'No-board Report (노보드 리포트)'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노보드 리포트'가 발송되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17일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지만 노조는 파업에 들어갈 수 있고 반대로 회사도 직장을 폐쇄할 수 있다. 드물게 파업이나 직장 폐쇄 없이 협상이 이어진다거나 중재 또는 회사의 최종 오퍼에 대한 찬반 투표 등도 이루어질 수는 있으나 여기까지 왔으면 대부분 파업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경우 1년에 가까운 협상 및 조정을 통해서도 전혀 진전이 없었기 때문에 6월 말 노조에서 조정관에게 협상 결렬을 통보하였고 2022년 7월 4일 정부에서 '노보드 리포트'가 노조와 회사로 발송되었다. 정부 관련 기관인 회사가 직장을 폐쇄할 일은 없고 노조원들은 이미 파업에 찬성했기 때문에 이때부터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7월 21일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다면 바로 파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한편 나는 이 흥미진진한 상황을 한국에서 지켜봐야 했다. 코로나 때문에 한 동안 한국에 들어가지 못하다가 4년 만에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7월 21일이 다가올수록 상황이 아주 급박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계속해서 노조를 비난하면서 파업이 시작되면 컴퓨터, 전화기, 자동차와 같은 회사 물품을 반납해야 한다고 통보하였다. 또한 노조에게 자신들의 '마지막 오퍼'라면서 이것을 받던가 그렇지 않으면, 아... 그렇지 않으면이라는 가정 자체가 없으니 그냥 받으라고 통보한 것이었지. 그러면서 노조가 파업을 하더라도 일을 계속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일을 할 사람은 슈퍼바이저에게 통보하라고 하였다.
반면 노조에서는 지역별로 대표를 뽑아서 파업을 이끌어 갈 사람을 정하였고 '파업 출정식'이라고 불릴만한 행사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파업 기간 중 일주일에 20시간 이상 파업 활동에 참여하면 노조에서 파업 참가비를 주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설명을 하였다. 또한 피켓 라인을 넘어가면(즉, 노조를 배신하고 회사로 돌아가면) 노조의 규약에 따라 파업 기간 중 받은 월급 중 $ 10,000까지를 벌금으로 낼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어떻게 되든 좋으니 파업이 시작되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그동안 회사가 보여 준 모습에 정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협상 과정도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회사가 직원 알기를 똥같이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파업에 적극 찬성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휴가 기간 동안 한국에서 회사 업무를 전혀 신경 쓰지 않다 보니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한국에 가도 길어야 2주밖에 갈 수 없어서 중간중간 메일도 확인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휴가가 길어서 그런지 처음부터 연락도 없고 메일도 거의 없었다.
그 결과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이렇게 일 걱정 없이 산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휴가 기간 중간 파업에 들어간다면 메일이나 전화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 아니란 말인가! 게다가 원래는 캐나다로 돌아가자마자 바로 다음 날부터 일을 시작해야 했는데 이 참에 몇 주 일을 안 나가도 되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었다. 아이들과 한 두 주 정도는 집에 있으면서 시차 적응을 할 수 있을 테니.
그래도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다들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가 있는데 나는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혼자서만 파업 활동에 참여를 안 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 보기 민망하겠지만 돌아가서 잘 참여하면 되겠지 생각하며 남은 휴가를 더 잘 보내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