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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Jun 01. 2021

다시 쓰는 이력서

5년 만에

마지막으로 이력서를 쓴 것은 정확히 5년 전의 일이다. 당시 잘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해고 통지를 받게 되었는데 그나마 노조원이었던 관계로 단체협약에 따라 60일 전에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60일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나서 처음 며칠 동안은 엄청난 충격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정신을 추스른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이력서를 열어서 업데이트하는 것이었다.


그보다 1년 반 전에 처음 캐나다로 넘어와서 취직을 하고자 무수히 많은 이력서를 돌렸었다. 오일 가격의 하락으로 알버타와 사스카추완의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도 겨우 얻은 직장이었고 주 정부 기관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이력서를 꺼내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겨우 1년 정도 만에 다시 이력서를 꺼내서 업데이트를 하려니 마음이 착잡했다. 다행이었던 것은 이제 캐나다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겨우 4~5 곳에 지원을 했을 뿐이었는데 다시 직장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보통 첫 번째 직장을 잡기 위해서는 백 차례 이상 지원을 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새직장은 3,000km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또다시 주를 이동하는 초장거리 이사를 해야 했지만 그래도 예전에 살던 곳 보다 기후도 온화하고, 어차피 똑같은 일을 하는 곳이라서 만족을 하며 다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이 회사가 내가 만 14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오랫동안 다닌 회사가 되어버렸다.


처음부터 이렇게 자주 직장을 옮길 의도는 없었다. 다만 내 인생의 첫 번째 직장은 서울과 멀리 떨어진 곳이었던 관계로 결혼 이후 여러 가지 사정 상 4년 만에 서울로 직장을 옮겨야 했다. 두 번째 직장은 경력 사원으로 입사를 한 데다가 업무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는지 정이 잘 가지 않는 곳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계속 이렇게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던 중 미국 시카고 출장 이후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여기저기를 살펴보다가 캐나다의 FSWP(Federal Skillied Worker Program)를 발견하였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캐나다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약 2년 반 만에 두 번째 회사도 그만두게 되었다.


내 인생의 세 번째 직장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내 의도와 달리 1년 반 만에 떠나야 했다. 그리고 얻은 지금의 직장이 바로 지금 일 하고 있는 곳으로 나의 네 번째 회사이다. 2016년 8월부터 시작했으니 어느새 만 5년 정도 몸을 담고 있다. 일도 편하고 업무 시간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고, 무엇보다 사무실로 출근을 안 하니 직장 상사를 볼 일이 없어서 아주 만족하면서 다니고 있었다. 굳이 한 가지 단점을 꼽자면 월급이 적다는 것이지만 사실 내가 일하는 시간이 일반 회사의 1/2 ~ 2/3 수준일 테니 일 한만큼만 받는다고 생각하며 다니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한 회사를 4년 이상 다니자 또다시 방랑벽이 도졌는지 최근에 급속도록 회사에 정이 떨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정이 떨어진 계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첫 번째는 내 검사 스케줄을 잡아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검사를 받고 싶은 회사가 직접 나에게 전화를 하면 되었지만 지난 3월부터 모든 검사의 예약은 본사의 스케줄 담당자(이하 전화 아가씨)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캐나다에 오면서 직장 생활에 대한 모든 꿈과 욕심을 버렸기 때문에 정말 웬만하면 시키는 대로 별 말없이 하는 편이다. 이상한 것들이나 이해가 안 되는 것들도 그냥 그러던가 말던가 나는 내 일이나 하자라는 마음으로 편하게 흘러 보냈다.


하지만 이 전화 아가씨들은 정말 참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저 위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 검사원들 하는 일이 단순해 보일지는 몰라도 물론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하는 검사의 종류만 십 여가지가 넘고 상황에 따라서 십 분이 걸리는 일도 있지만 4~5시간씩 걸리는 일들도 있다. 전화 아가씨들이 아무리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교육을 받는다고 하여도 그 무수히 많은 검사 종류와 고객들의 요구 사항을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애초에 그들이 완벽하게 우리의 검사 스케줄을 잡아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혹시 가능하다고 하여도 검사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뭐하러 10명이 넘는 사람들을 고용해서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처음 이것이 도입되었을 때 한 달 넘게 대혼란이 있었다. 검사원들은 물론이고 고객들도 엄청난 불만을 쏟아냈는데(물론 지금까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회사에서 한다는 소리가 백로그(밀린 일) 해결을 위해서 4~5명 더 고용한다는 것이다. 아니 맨날 돈 없다고 가서 검사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도대체 이 불필요한 일에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붓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새로운 IT 시스템 도입이다. 새로운 IT 시스템 도입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기존에 쓰던 프로그램은 20년이나 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바꿀 때가 되긴 하였다. 그래서 또다시 무수히 많은 돈을 들여서 새로운 CRM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을 도입하였다. 어쩌다 보니 나는 팀에서 컴퓨터를 잘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버렸기 때문에(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면 누구나 캐나다에서 컴퓨터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 개발 과정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내 역할은 사용자 입장에서 이 프로그램을 테스트하여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발견하고 개선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팀 별로 2~3명의 검사원이 테스트에 참여하였지만 어느 순간 모두 떠나고 나와 다른 아저씨 한 명만 남게 되었다. 그 결과 내가 약 100여 명에 달하는 검사원들을 대상으로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교육을 해야 했다.


이때까지는 그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별생각 없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다른 검사원들 교육을 하고 나서부터 이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 이후 온갖 사람들이 나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뭐 내가 교육을 했으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프로그램에 대한 온갖 버그나 사용 절차서에 대해서 나에게 문의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엊그제 내 슈퍼바이저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복수의 휴가를 올리면 시간 계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시간 날 때 확인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무슨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람도 아니고 IT 사람도 아니고 HR 사람도 아닌데 도대체 이런 것들을 왜 나한테 물어보나 싶다. 애초에 프로젝트 매니저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다들 문제가 있어도 누구에게 물어볼 줄 모르고, 심지어 문제를 해결할 사람도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캐나다에서 검사원(Inspector)으로 일하면서 느낀 것이 이 직업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엔지니어라면 굳이 검사원으로 일할 필요는 없겠다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엔지니어라고 한다면 협회에 등록된 P.Eng (Professional Engineer, '피이엔지'로 발음)를 말하는데 사실 서양 사람들 중에서 P.Eng 타이틀을 달고서 검사원 일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있다면 젊어서 경험을 쌓은 후 매니저 급으로 올라가려는 사람들 정도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이민자들은 대부분 P.Eng를 달고서 검사원을 일을 한다. P.Eng가 없다면 적어도 공대를 나온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직장 생활에 대한 모든 꿈과 욕심을 버렸다고는 하여도 어느 순간 굳이 내가 계속해서 검사원으로 일을 해야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팀의 캐나다 할아버지 한 분이 최근 은퇴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검사원으로 일을 한 것이 정말 행복했다. 검사원이 내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이기 때문에 나는 정말 검사원이 되고 싶었다.

특정 직업을 비하한다고 느끼실 분들이 있어서 이 아저씨가 원래 무슨 일을 했는지 말을 하기 그렇지만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들었던 이 말이 어느 순간부터 계속 머리에 맴돈다. 내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는 어디일까?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5년 만에 다시 이력서를 꺼내보았다. 처음에는 특별히 쓸 곳이 있어서가 아니라 만약을 대비한다는 생각이었다. 여기서 일하면 어떨까 생각을 하는 곳들은 있어서 오랜만에 indeed.com와 같은 취업 사이트들도 기웃거려 보았다. 그러다가 아주 괜찮아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 연방 정부 자리였는데 내가 원래 하던 일들과 관련이 있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했던 일들과도 관련이 있는 자리여서 괜찮아 보였다. 무엇보다 엔지니어를 채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P.Eng라는 타이틀 덕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다시 본격적으로 이력서를 업데이트를 한 후 이 자리에 지원을 하고자 홈페이지에 접속을 하였다. 회원 가입 후 지원을 하려고 하다가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캐나다에서 이런 경험은 처음인데 무슨 한국에서 취업할 때 쓰는 자소서처럼 온갖 것을 다 물어보는 것이었다. 네가 과거 경험했던 일 중에서 어쩌고 저쩌고 했던 일 두 가지를 써라 등등 답을 쓰는데만 며칠 소요되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작성하니 영주권 사진도 올려야 했다. 그리고 학력인증, 영어 성적, 졸업증명서(학위) 등의 제출은 선택 사항이었는데 이민 준비하면서 스캔해 놓은 것들이 있어서 그냥 다 업로드해버렸다.


정부의 일이 빠를 일이 없기 때문에 당장 연락이 올 것 같지도 않고 연락이 온다는 보장도 없지만 뭐 이왕 쓴 것 면접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끝으로 기다리는 분들은 많이 없지만 한 동안 브런치에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이유를 간략히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 모든 것을 팽개치고 유튜브 동영상 제작에 매진한 결과 원래부터 조회수가 별로 없던 브런치는 물론이고 그나마 방문자가 있던 블로그마저 사람들의 방문이 현저하게 줄고 말았다. 브런치는 괜히 시작했다 생각하면서 접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여기 있는 글들을 또다시 옮기기도 그래서 그냥 가끔씩이라도 글을 올려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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