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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Dec 27. 2021

쥐 수이 죄ㅎ외

그래도 나는 행복해요

몇 달 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온갖 정이 다 떨어져서 5년 만에 이력서를 꺼냈다. 그 사이 한 번도 이력서를 업데이트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고쳐야 할 내용들이 많이 있었다. 시간을 들여서 이력서를 고쳤지만 그렇다고 많은 곳에 지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너무 잦은 이사를 해서 더 이상 이사를 가고 싶지 않았고, 적어도 지금 일하는 곳보다는 나은 곳에 지원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겨우 두 군데에 지원을 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어느새 캐나다에서 일을 한 지도 6년이 넘었기 때문에 내심 지원한 곳들에서 연락이 올 줄 알았다. 캐나다에서는 어느 분야든 웬만큼 경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내가 지원했던 자리는 모두 연방 정부의 일자리들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원래 정부 일자리는 채용 절차가 느리다고 말을 해주었다. 어느 분은 자기 주변에서 지원하고 나서 일 년 뒤에 연락이 온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그동안 캐나다에 살면서 지켜본 바로는 그것이 참 말이 되는 소리였기 때문에 나도 일단은 그냥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지원하고 나서 처음 두 세 달 동안은 가끔 웹사이트에 들어가 진행 현황도 살펴보고, 새롭게 올라온 공고는 없나 살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5~6달이 지나도록 전혀 연락이 없기 때문에 언젠가부터는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지도 않고 새로운 공고도 살펴보지 않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어떻게 인터뷰를 보자는 연락조차 오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서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약인지 나중에는 내가 지원한 자리들이 내 경력과는 맞지 않는 곳이구나 정도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정이 떨어졌던 지금 다니는 회사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냥 뭐 이 정도면 계속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현재 온타리오 주 정부의 보일러 압력용기 검사원(Inspector)으로 일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주 정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본다면 'OO공사' 정도에 소속되어 있다고 보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한국도 공무원이나 공사에 다니는 사람들의 경우 월급은 적게 받지만 일이 편한 것처럼 캐나다도 정부 관련 일자리는 대부분 월급은 적지만 그나마 일은 편하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온타리오주는 인구가 많아서 그런지 다른 주들에 비해서 월급이 더 낮은 편이다. 그나마 나는 토론토나 오타와 같은 대도시에 살고 있지 않아서 이 정도 월급을 받으며 어떻게 먹고살고는 있지만, 토론토나 오타와에서 일을 하고 있는 다른 검사원들을 그 돈을 받으면서 어떻게 먹고사는 게 가능한지 궁금할 따름이다. 아마도 맞벌이를 하지 않고서는 집세와 생활비 내기 빠듯한 수준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안 나가고 다니는 이유는, 게다가 한 번 그만두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일반 회사보다 일이 적고 편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말이 잘 통하는 한국에서도 '을'의 입장에서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을 텐데 캐나다라면 말을 다했다. 그런 점에서 이 검사원이라는 직업은 언제나 검사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갑을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적다.


그리고 일반 회사보다는 확실히 일이 적은데 특히 나는 다른 검사원들보다도 매우 한가한 편이다. 그나마 코로나가 있기 전에는 지금보다는 바빠서 보통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8시에 집을 나가서 3시가 조금 지나 집에 들어오고 금요일은 오전에만 일을 하면 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덮친 작년부터는 검사량이 평년의 70% 정도 수준으로 떨어져서 아무리 늦어도 오후 1~2시면 퇴근을 하게 되었다. 평소에도 한가했던 금요일에는 아예 일이 없고.


그 결과 최근 몇 달 동안 월요일에는 밖에 나가 달리기를 했고, 수요일에는 동네에 전단지를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금요일에는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금요일 오후 수영장의 물살을 가르고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드는데 한국에서 바쁘게 사는 것이 싫어서 캐나다에 왔으니 이 정도면 그냥 괜찮은 삶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한국에서 일을 했던 회사들은 다른 회사들에 비해서는 정말 일찍 퇴근을 하는 회사였다. 8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경우도 많았고 아무리 늦어도 6~7시에는 회사를 나왔다. 그럼에도 출퇴근이 한 시간 씩 걸렸기 때문에 아이가 눈 뜨기 전에 출근해서 눈을 감은 후 퇴근하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애들을 학교에 다 보내고 나서 일을 시작해서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집으로 돌아온다. 물론 저녁에 컴퓨터로 한두 시간 정도 서류 일을 해야 하지만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에는 나쁜 직장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인생의 목표가 없으면 심심하기 때문에 새로운 목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유튜브 스타가 되기에는 그른  같고, 블로그 브런치 또한 별로 가망성이 없는  같아서  보람찬 목표를 찾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생각한 것이 바로 프랑스어이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캐나다의 공용어는 영어와 프랑스어이다. 하지만 알버타와 사스카추완에서  때만 해도 과연 퀘벡을 제외하고 캐나다에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이  정도였다. 주변에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연방 시설을 제외하고는 서류나 표지판도 모두 영어로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접할  있는 프랑스어라고는 제품 포장에 영어와 함께 적혀있는 프랑스어였다.


영어와 프랑스어가 함께 써진 캐나다 제품들. 오뚜기밥에도 불어가 쓰여있다. 영어만 쓰여있는 제품을 본다면 물 건너, 아니 미국에서 국경을 건너 넘어온 제품일 확률이 크다.



그런데 온타리오의 킹스턴으로 이사를 오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동네 맥도널드에서조차 사람들이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서 2~3시간만 달리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퀘벡이 나오니 아무래도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연방 정부에서 일을 하려면 프랑스어가 필수인 자리가 꽤나 많다.    연방 정부에서 일을 하는 지인과 통화를 하다가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고는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캐나다에도 프랑스어 학습 관련 책들이 많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외국어 강의는 한국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어렵다는 핸드폰 인증까지 통과하여 한 인터넷 강의에 등록을 하였다.  


광고를 해 주는 것이니 문제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여 옆모습으로..



정말 오랜만에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라 매우 낯설다. 그래도 우리 동네에는 지천으로 널려있는 것이 프랑스어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배우는 것보다는 빨리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제품 포장지며 표지판이며 도로 위를 달리는 트레일러에도 프랑스어가 써져 있으니 말이다. 아직은 왕초보 2탄 강의를 듣는 수준이지만 어느 날 고속도로를 운전하다가 놀라운 경험을 하고 말았다. 앞에 있던 트레일러에 써져있던 프랑스어 문장의 뜻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Nous sommes...(우리는 ... 입니다, 아쉽게도 '...'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안 남)'라고 쓰여있었는데 어린아이가 간판을 읽듯 하나하나 읽어 내는 것이 보람차다.


게다가 나에게는 OO스쿨의 클OO 선생님 말고도 외고 불문과 출신의 와이프가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인터넷 강의의 한계라고 한다면 내가 발음을 맞게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인데 와이프는 나의 발음이 틀릴 때마다 옆에서 친절히 고쳐준다. 예를 들어 내가 'Tu(뛰)'의 발음을 '뚜'라고 하면 '뚜비뚜바~ 뚜비뚜바~' 노래를 부르며 채찍질을 해주는 식이다.


내가 가장 관심 있어하는 책의 장르는 바로 도서관에 있는 어린이용 프랑스어 책들


그리하여 나는 프랑스어를 배워서 10  연방 정부로 이직을 하는 것을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10 동안 내내 프랑스어를 배우겠다는 뜻은 아니고 당장 이사를 가는 것은 힘드니 막내가 고등학교  때쯤에는 이사를 가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나의 원대한 목표를 듣고는 지인  분이 '아니, 나이 오십에 이직하시게요?'라고 물어보시는 것이었다. 요즘  나이만 사용하다 보니 내가 한국 나이로 벌써 사십이 넘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목표를 변경하여 오십이 되기 전에 은퇴할 만큼 돈을 모아서 프랑스로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오십이 되기 전에 은퇴하는 것이 요원할 경우 이직을 하는 것을 플랜 B로 유지하고.



어쨌든 이 정도면 나는 더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해도, 불러주는 회사가 없어도, 월급이 적어도 행복하지 않나 싶다.


쥐 수이 죄ㅎ외(Je suis heure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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