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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Feb 19. 2022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나의 보잘것없는 유도 이야기 11

다음 날 아침. 2007년 6월 17일 일요일 8시 30분. 


두 번째 시합을 위해 준비운동을 했다. 날씨가 무더워서 금세 온몸이 땀에 젖었다. 이제 일본에서 운동을 하면서 이렇게 땀을 흘릴 날도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4학년생들은 이번 시합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 대회가 끝나고 두 달 정도 후에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 마음만 있다면 더 운동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친했던 4학년생들이 모두 운동에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일본에서는) 은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시합을 앞두고. 사람 수를 세어보면 15명이 아니라 16명이다. 누군가 나보고 마지막이라고 같이 서보라고 해서 나간 것이다. 매우 부끄러웠다.


준결승에서 맞붙는 교토대학은 강팀이긴 하지만 그 전 대회에서 큐슈대학이 이겨 본 상대라고 한다. 비록 큐슈대학의 전력이 지난해보다는 많이 떨어졌지만 모두들 대등한 경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합은 역시 막상막하였다. 초반에는 무승부로 선방했지만 1학년생 두 명은 역시나 누르기로 지고 말았다. 두 시합을 지고 있는 상태에서 6번째 주자로 2학년의 차세대 에이스 '토우(*)'가 등장했다. 어제 세 명을 이겼듯 오늘은 적어도 두 명만 이겨준다면 큐슈대학으로 승기가 넘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 등(藤)이라는 성(姓)이라 '토우'로 발음


하지만 상대도 필사적이었다. 선 기술로는 상대가 되지 않으니 잡자마자 바로 땅에 누워 누운 기술을 유도하였다. 점점 시간은 흘렀고 자신의 생각대로 경기가 흐르지 않자 '토우'도 흐름이 깨지고 말았다. 결국 그는 한 명도 이기지 못하고 무승부로 경기를 끝내고 말았다. 교토대학의 선수는 가장 강력한 상대를 잡아냈으니 동료들의 환호를 받으며 퇴장을 하였다. 


우리에게는 아쉬운 일이었지만 이것이 고전유도의 묘미가 아닐까 싶었다. 여기서는 상대방이 너무 강해서 누운 기술로 도망을 다닌다고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정말 강하다면 누운 기술로도 상대를 이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날 시합을 마치고 친하게 지내던 부원에게 내일은 '토우'가 어떻게 될까 물어보았다. 그는 2학년에게 의지하지 않고 4학년들이 열심히 해서 시합을 이기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전날 그가 3명을 연속으로 이겼을 때 우리 팀의 승리를 예감했듯, 이날은 그의 무승부를 보자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이후 시합은 정말 막상막하였다. 계속 무승부의 경기가 펼쳐지다가 큐슈대학에서 중반에 1승을 추가해서 1:0으로 추격을 했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패배를 당해서 2:0으로 차이가 늘어났다. 이후에도 계속 무승부가 되었고 시합은 종반부에 접어들어 큐슈대학의 14번째 선수와 교토대학의 12번째 선수가 선수가 맞붙게 되었다. 


큐슈대학의 14번째 선수는 주장의 차례였다. 이 친구는 키는 165cm 정도에 몸무게는 60kg로 왜소한 편이었지만 유도에 임하는 자세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카리스마도 넘쳐서 운동부 주장이 딱 어울리는 성격이었다. 그런 그가 정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시합에 나서게 된 것이다.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서로 누운 기술로 들어갔고 치열한 공방전 끝에 굳히기로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이제 차이는 1:0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다음 상대는 체격 차이가 꽤나 났다. 이번에도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누운 기술로 들어가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야속하게 시간만 흘러갔다. 결국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고 말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선수는 어젯밤 10시에 도착한 5학년 선배. 이 선배도 지난 일 년간 운동을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정말 필사적으로 상대방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상대 역시 필사적이었고 경기는 그대로 무승부가 되어버렸다. 결국 단체전 최종 결과는 교토대학의 3:2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표정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아쉬웠다. 경기에 져서 그리고 경기에 나가지 못해서 아쉬웠다. 나의 실력이 별로 안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경기에서 졌던 1학년 두 명보다는 나았으니 만약 내가 들어갔다면 연장전(단체전 최종 결과가 동점으로 끝날 경우 최대 3번의 연장전을 가짐)까지 갈 수 있었을까?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그에 대한 답을 알 수 없기에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아쉬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3등. 같이 떠나는 4학년생들과 함께.



오후에 벌어진 결승전에서는 우리를 이긴 교토대학이 토호쿠 대학을 3:0으로 물리치고 최종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 또한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우리가 준결승만 통과했더라도 우승팀 멤버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했다. 


(좌) 마지막 시합에서 승리하는 교토대학 / (우) 승자는 기쁨을 패자는 아쉬움을


경기가 모두 끝나고 저녁에 뒤풀이를 하였다. 울고 싶지는 않았지만 주장이 고별사를 말하자 그도 울고, 다른 4학년들도 울고 결국 나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렇게 짧지만 지옥 같았던 9개월간의 큐슈대학 유도부 생활도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말은 못 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몇 번이고 도망가고 싶었다. 초기에는 운동을 하고 나면 온몸의 마디마디가 쑤셔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운동이 얼마나 격렬한지 이러다가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거나 이가 빠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어서 의료보험에도 가입했다. 


그런데 막상 끝나고 나니 더 열심히 하지 못했다는 후회만 들었다. 운동을 조금 덜 빠질 걸, 조금 더 적극적으로 운동을 할 걸...


그래도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다른 교환학생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지만 나름 행복했던 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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