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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Feb 19. 2022

어리석은 욕심

나의 보잘것없는 유도 이야기 12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마지막 학기를 다니게 되었다. 예전 글에서 언급했듯 교환학생을 다녀오면 적어도 한 학기 이상을 반드시 본교에서 다녀야 졸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9학기를 다니게 된 것이다. 그래도 일본에서 열심히 15개의 수업이나 들은 관계로 이미 졸업이 가능한 학점은 모두 채우고도 남았다. 다만 군 입대로 학기가 맞지 않아 전공 필수 과목을 한 두 개 못 들었기 때문에 그것만 들으면 되었다. 그 외에는 그저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하는 일만 남았다. 


대학 생활이 마무리되어 감에 따라 나의 유도부 생활도 이제 막을 내리고 있었다. 일본의 유도부에서는 밑에서 3~4등을 하는 수준이었지만(그나마 1학년들이 들어와서 순위가 올라감) 한국의 유도부에서는 부끄럽지 않은 실력이었다. 이제 남은 대회는 라이벌 학교와의 대항전 및 서울시 유도 대회가 있었다. 그동안 지독하게 승리의 운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어느 누구와 시합을 하더라도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그렇게 힘들게 운동을 하고 와서 그런지 우리 유도부원들의 노력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도 운동을 나오는 사람도 적었고 다들 운동보다는 말만 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유도부원이 운동을 해야지 운동을 하지 않는 유도부원은 필요 없다고 말을 했다. 웃긴 것은 나도 예전에는 이런저런 일로 맨날 운동도 빠지고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자만심과 교만함이 하늘을 찔렀을 때이다(이런 성격으로 볼 때 만약 내가 계속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면 분명히 꼰대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결국 라이벌 학교와의 시합을 앞두고 사달이 났다. 


시합을 앞둔 마지막 토요일에 부원들을 모아 운동을 했다. 시합에 나가는 사람은 모두 나오라고 했지만 빠지거나 늦은 사람이 많았다. 이것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아 투덜대며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연습 시합을 하는데 상대방이 건 기술에 다리가 꺾이며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다. 몸 안으로 '딱'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움직일 수가 없어서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았지만 뼈에는 별 이상이 없어서 나중에 MRI를 찍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후 다시 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보았는데 전방 십자 인대가 파열되었다며 의사 선생님은 군대를 다녀왔냐고 물었다. 다녀왔다고 하니 군대 안 갔으면 면제일 텐데 안됐네라고 했다. 


이런. 미리 알려주시지.


결국 2007년 11월 말에 우측 전방 십자인대 재건 수술을 받았고, 움직일 수가 없어서 한동안 자리에 누워있어야 했다. 한 번은 수술이 끝나고 병원에서 어머니가 머리 감는 것은 도와주시다가 내 귀를 보고는 귀가 왜 그렇게 되었냐고 물으셨다. 일본에서 돌아온 지 4개월이나 되었는데 그제야 발견하셨나 보다. '멋있지 않나요?'라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사이 유도 대회들은 모두 끝났고 나는 졸업을 하였다. 이번에도 대회에 나가지 못했지만 별로 아쉽지는 않았다. 그냥 이 정도나 했으면 이제 떠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도 유도를 할 일은 거의 없었다. 회사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유도는커녕 다른 운동을 할 시간도 별로 없었다. 


사실 그 이후로는 유도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유도 시합을 보는 일조차 거의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선수들이 시합을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내가 유도를 했을 때 너무 힘들었던 것이 생각나서 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우리나라 선수들이 이기면 괜찮은데 지기라도 한다면 그들이 어떻게 운동을 했을지 알기 때문에 너무 슬퍼서 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나는 유도에서 완전히 멀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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