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검사 Feb 19. 2022

12년 후 - 내 무릎에 사망선고

마지막 이야기

마지막으로 유도를 한 지 12년이 흐른 2019년 여름.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둘째 녀석이 곧 만 3살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에 있을 때 차세대 에이스라고 불렸던 '토우'에게 언제 처음으로 유도를 시작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언제부터 하면 저렇게 잘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랬더니 만 3살 때부터 유도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언젠가 나도 언젠가 자식을 낳으면 3살부터 유도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태권도나 카라테 도장은 여럿 있었지만 유도 도장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페이스북에서 한 곳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사설 도장은 아니고 그냥 클럽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운동을 한다고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보았다.


운동을 하는 장소는 시에서 운영하는 오래된 레크리에이션 센터(체육관)였다. 2층 넓은 공간에 매트를 깔아놓고 운동을 했는데 주로 어린 학생들이 많이 있었고 성인들은 별로 없었다. 클럽을 운영하는 사범님 말에 따르면 방학 때는 원래 사람이 적고 개학을 하면 학생과 일반인 모두 늘어난다고 했다.


애초에 여기에 온 목적이 첫째와 둘째에게 운동을 가르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든지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첫째는 유도를 좋아했는데 둘째는 영 관심이 없었다. 뭐 사실 돈을 받으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어린아이가 다닐만한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오랜만에 유도를 하고 있으려니 나 혼자 신이 났다.


비록 사설 도장은 아니었고 사람도 많이 없었지만 캐나다에서 유도를 해보니 한국, 일본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받은 느낌은 여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동양 무술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규율이나 예의를 강조하는 동양 무술이 색다를 것이 없지만 여기 사람들에게는 신선한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함께 운동을 하고 있다 보면 이것은 운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구경을 하러 온 것인지 모를 정도로 쉬엄쉬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번은 자유연습을 하는데 내가 너무 거칠다고 살살하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운동을 하면서 이런 말을 듣기는 처음이라 당황했다.


어쨌든 이렇게 12년 만에 일주일에 두 번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기술들을 많이 잊어 먹어서 난생처음 유튜브로 동영상들도 찾아보았다. 그 영상들을 보면서 혼자 상상을 하며 요렇게도 잡아보고 저렇고 잡아보며 연습을 하였다. 이런 식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사범님 말을 들어 보니 시에서 장소를 빌리는데 돈이 들기 때문에 한 달에 50불 정도를 낸다고 하였다. 그리고 매년 유도 캐나다(Judo Canada)라는 단체에 등록을 해야 된다고 하였다. 매년 9월 등록을 해야 하는데 등록 비용이 300불 정도 했다. 사범님은 곧 9월이니 아직은 등록하지 말고 있다가 그때 가서 등록을 하라고 했고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9월이 되면 나와 아이들 모두 정식으로 등록을 하고 사람들도 많이 늘어날 테니 더욱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9월을 얼마 앞두지 않고 이번에도 연습을 하다가 12년 전 다친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다치고 말았다. 이번에도 몸속에서 '딱'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경험상 좋지 않은 소리라고 바로 알 수 있었다. 무슨 운동이든 하다 보면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상대가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상대방은 토론토에 사는 사람으로 그날 한 번 운동을 나온 사람이었는데 뭐 동네 유도에서 그렇게 구차하게 기술을 썼나 싶었다.


이렇게 나의 세 번째 유도 인생은 시작도 하기 전에 꺼져버리고 말았다.


두 번이나 부상을 당한 오금대 떨어뜨리기(Tani Otoshi). 그림에서 볼 수 있듯 파란색 도복의 오른 다리가 다치기 쉽다. 내가 정말 정말 싫어하는 기술(사진: 구글)



우리나라였으면 바로 MRI를 찍고 수술을 받았을 텐데 캐나다에서는 그런 것 없다. 우선 다음날 응급실로 찾아가 검진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손으로 무릎을 잡고 여기 잡아당기고 저기 잡아당겨보더니 십자 인대가 파열된 것 같지는 않다고 수술은 필요 없으니 집에 가도 된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믿기지가 않아 패밀리 닥터와 약속을 잡고 검진을 받았다. 우선 MRI를 찍어 보자고 해서 알겠다고 하였다.


캐나다는 의료가 공짜이지만 기다리는 것도 덤이다. MRI 찍는 곳에서는 4개월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빈자리가 생겼다며 연락이 왔다.  기회를 놓칠  없어서 바로 가능하다고 했다. MRI 찍고    지나서 드디어 정형외과 의사를 만날  있었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수술을 하면 하겠는데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생활하면서 너무 불편하면 다시 연락을 하라고 했다.


정형외과 의사도 수술까지는 필요 없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다음 여름(2020년)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다가 50~60cm 정도 높이에서 자갈로 뛰었는데 다쳤던 무릎에 그 어떤 때보다 큰 고통이 찾아왔다. 나는 무릎을 붙잡고 놀이터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와이프는 처음에 장난을 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옆에서 지나가던 고등학생들도 나를 보며 웃었다고 했다.


이번에는 목발이 없으면 걸을 수도 없는 상태라 물리치료를 받으며 다시 패밀리 닥터와 약속을 잡았다. 거의 한 달 후에야 패밀리 닥터를 만날 수 있었고, 패밀리 닥터는 다시 정형외과 의사에게 보냈다. 다시 만난 정형외과 의사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고 수술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CT를 찍어보자고 하였다. 놀랍게도 코로나 와중에도 CT는 생각보다 빨리 연락이 와서 한 달 정도만에 찍을 수 있었다.


CT 촬영 후 정형외과 의사를 다시 찾아갔다. 그는 예전에 한국에서 수술을 했을 때 뼈에 구멍을 너무 크게 뚫어서 당장 인대를 재건할 수는 없고 우선 주변 연골을 정리하고 뼈에 구멍을 메꾸어야 된다고 했다. 나는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였고 곧 병원에서 수술 날짜가 잡히면 연락이 올 것이라고 했다. 이때가 2020년 가을 무렵으로 코로나도 어느 정도 잠잠해졌기 때문에 곧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가 다시 한번 캐나다 전국을 강타하였고 다시 한번 중환자실도 빠르게 채워지고 말았다. 결국 또다시 모든 수술들이 취소되었고 그렇게 나의 수술은 기약도 없이 미뤄지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그냥 한국에 가서 수술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과연 내가 과연 수술자 명단에 올라가 있기는 한 것일까 의심이 되던 2021년 12월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 보니 아직도 수술을 받을 의향이 있냐며 2022년 1월 셋째 주에 수술 날짜가 잡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된다고 말했고 드디어, 드디어 이번에는 수술을 받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캐나다의 의료 시스템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이제는 몇 번째 웨이브인지 조차 셀 수 없지만 아무튼 또다시 코로나가 전국을 덮쳤고 온타리오 정부에서는 2022년 1월부터 계획된 수술을 모두 취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나의 수술은 또 한 번 물 건너가고 말았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왔으니 수술이 재개된다면 내가 앞순위에 위치하지 않을까 혼자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혹시나 내가 수술을 받고, 코로나도 잠잠해지면 다시 한번 아이들을 데리고 도장에 찾아가고 싶다. 물론 나는 더 이상 자유연습(대련)같은 것은 하지 말고 주로 준비운동만 하는 것으로 해서.

이전 13화 어리석은 욕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