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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Feb 19. 2022

전국 칠대학 유도 우승 대회

나의 보잘것없는 유도 이야기 10

어느새 2007년 6월이 되었고 우리는 전국 칠대학 유도 우승 대회(全国七大学柔道優勝大會) 참가를 위해 신칸센을 타고 교토로 향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교토는 여러 번 가본 곳이기 때문에 내심 내가 한 번도 안 가본 곳에서 시합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나는 어차피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가하는 대회가 될 테니 말이다. 그래도 교토에 도착해 보니 역사가 오래된 도시라서 그런지 시합이 벌어지는 곳도 너무 고풍스러운 곳이었다. 언제 이런 곳에 들어오나 싶어서 갑자기 괜찮아졌다.  


1899년 지어진 교토의 구 부도쿠덴(武徳殿). 예전에 지어진 '무술 도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나의 출전 가능 여부는 도착한 당일까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나와 같은 단기 유학생이 시합에 참여를 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경기 전날 경기 규칙과 대진표 등을 확정하는 자리에서 의논을 해야 된다고 했다. 만약 경기에 나가게 된다면 경기 내내 긴장감과 싸워야 하겠고, 만약 나가지 못하게 된다면 평생 나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결정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었고, 나는 지난 9개월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회의가 길어졌는지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저녁식사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8시 30분이 지나서야 숙소로 돌아왔는데 우선 대진표 추첨 결과는 최상이었다. 제일 약체로 평가되는 팀과 첫 번째 시합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첫날 첫 번째 시합을 이기면 이튿날 벌어지는 준결승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었다.


당시 경기 대전표. 모든 팀이 적어도 2번의 시합을 갖는다. 



첫 번째 좋은 소식과는 반대로 나의 출전은 찬성 4, 반대 3의 결과로 무산되었다고 했다. 규정을 고치거나 신설하기 위해서는 7개의 학교 중 5개 학교 이상이 찬성을 해야 하는데 1표 차이로 부결이 되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긴장감은 사라졌지만 대신 그래도 지난 9개월 동안 일본에 와서 한 것은 이것밖에 없었다는 생각에 아쉬웠다. 교환학생의 출전을 반대를 한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일본은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폐쇄적인 곳이리. 


솔직하게 말해서 아직 내가 상대를 이길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시합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큐슈대학 유도부 입장에서도 아쉬운 결정이었다. 이 대회는 한 팀 당 15명이 출전하는 단체전이기 때문에 실력 유무를 떠나서 우선 인원수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한 학년 당 4명씩만 있어도 15명을 채울 수 있겠지만 일본에서도 유도를 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지 1년 이상 운동을 한 사람으로 15명을 채우기는 쉽지가 않다. 이점은 다른 학교들도 마찬가지여서 단체전 멤버에 하얀 띠가 포함된 학교들도 있었고 심지어 결국 13~14명으로만 시합에 참가하는 학교도 있었다.


당시 큐슈대학 유도부는 나를 제외한 4학년이 8명, 3학년이 1명, 2학년이 4명, 그리고 1학년이 2명이었다. 딱 15명이었지만 2학년 한 명은 부상으로 출전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참가를 해야 15명을 맞출 수 있었다. 결국 혹시 15명을 채울 수 없을 때를 대비해 보험 삼아 동행했던 5학년(일본에서는 졸업 학점이 모자라 학교를 1년 더 다닐 경우 5학년이라고 함) 선배를 긴급 투입하여야 했다. 문제는 이 선배가 지난 1년간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음 날 식사를 마치고 다른 부원들과 호텔을 나서니 호텔 로비에 택시들이 줄을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 기사들이 모두 차에서 내려서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뭔가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들 긴장했는지 택시 안에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약 30분 정도 준비 운동을 하고 나니 개회식이 열렸다. 개회식에서 대회를 주관하는 교토대학의 유도부 회장(OB)이 인사말을 하였다. 이곳이 바로 1940년까지 진행된 고전유도 대회가 벌어진 장소라고 했다. 그리고 모두가 유도부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겠고 유학생 출전 문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나마 있는 교환학생이라도 출전시키면 유도부원 부족 문제를 조금은 해결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참고로 교토대학이 바로 유학생 출전을 반대한 3개 대학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좌) 1920년대 고전유도 시합 사진 / (우) 2007년 나나다이센 당시 사진. 그러고 보니 같은 곳인가 보다



첫 경기는 예상했던 대로 손쉽게 승리를 했다. 상대 학교가 인원이 부족하여 13명밖에 출전하지 못한 데다가 큐슈대학이 중간중간 승리를 따내어서 5명이나 남기고 승리를 확정했다. 특히 큐슈대학의 차세대 에이스라 불린 2학년생 '토우(*)'가(나중의 일이지만 결국 그가 졸업 때까지 차세대 에이스로 등극하지는 못하였다) 3번째 주자로 나서 연속으로 3명을 이기고 4명째(**)에서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을 때 이미 80%이상 승리가 넘어왔다. 

(*) 등(藤)이라는 성(姓)이라 '토우'로 발음
(**) 앞의 글에서 이야기하였듯 이 대회는 15:15 단체전이며 이긴 사람이 계속 경기를 하는 방식이다


경기 후에는 다음 날 우리 팀과 맞붙게 되는 팀이 결정될 시합을 지켜보았다. 결국 예상했던 대로 교토대학이 우리와 다음 날 준결승에서 맞붙게 되었다. 홈팀인 데다가 언제나 강력한 우승 후보인 교토대학이니 다음 날 경기는 오늘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잠이 들기 전 다음 날 시합을 대비해서 어떻게 오더를 정할지 논의를 하였다. 이 회의에서 이 시합에서 유일하게 패배를 기록한 5학년 선배를 대신하여 다른 5학년생을 긴급 투입하기로 결정하였고 대타는 신칸센을 타고 밤 10시에 교토에 도착하였다. 


남들이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유도 시합일 뿐이지만 여기에 모인 우리들만은 정말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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