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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Feb 19. 2022

그들이 먹는 것

나의 보잘것없는 유도 이야기 8

운동이 끝나면 8시나 되니까 배가 무척이나 고팠다. 그렇다고 운동을 가기 전에 무엇을 먹고 가기도 그런 것이, 워낙 운동이 격렬해서 시작 전에 뭔가 먹었다가는 그것들을 다시 만나기  좋게 생겼기 때문이다.  사실 너무 격렬하기 때문에 운동 중에는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도장에서 내가 머물고 있는 공대 기숙사까지 가려면 한 시간 정도는 걸렸기 때문에(게다가 그중에 마지막 30분은 자전거!!) 처음에는 다른 유도부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갔다. 그래서 도장 주변에 있는 식당들을 여기저기 가볼 수 있었는데 다들 맛이 정말 좋았다.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튀겨서 따끈따끈했던 카라아게(닭튀김), 일본식 중국집의 니라레바(부추와 돼지고기 간을 볶은 것)와 스부타(탕수육), 양도 거대한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 후쿠오카의 명물 모츠나베(곱창전골과 비슷) 등등 많기도 하다.


(좌) 돼지의 간을 조리 중인 아저씨. 너무 인상 깊어서 사진까지 찍었다 / (우) 완성된 니라레바. 지금도 정말 먹고 싶다.


(좌) 나의 최애 음식이었던 모쯔 나베. 내가 일본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먹고 싶다고 한 것도 이것이었다 / (우) 양이 거대한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끼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도 나의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은 바로 흔하디 흔한 카레이다. 게다가 이것을 파는 식당은 겨우 한 번 가보았을 뿐이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절대로 잊히지 않는 곳이다. 시작은 이렇다.


하루는 운동을 마치고 주장이 사람들에게 오늘은 무엇을 먹으러 갈까 물었다. 그러자 누군가 어느 식당 이름 하나를 말했는데 그것을 듣고는 주장이 갑자기 '아!! 거기만은 정말 가고 싶지 않아!!'라고 몇 번이나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정말 거기는 가기 싫은 데 갈 수밖에 없어!! 김상도 있으니 안 갈 수가 없어!!'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에 간지 보름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곳이길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사람을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도착한 식당은 '카와(河, 강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테이블이 대여섯 개 밖에 되지 않는 조그마한 식당이었다.


메뉴를 보니 이곳에는 오직 카레만 팔고 있었다. 정말 다른 것 없이 카레만 팔고 있었는데 토핑으로 돈까쓰를 올리거나, 고로케를 올리거나, 새우튀김 등을 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특이한 점이라고는 하나 없는 식당이었는데 왜 이렇게 오기 싫어했을까 싶었다. 하지만 메뉴를 보다 보니 곧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보통 밥의 양이 많으면 당연히 돈을 더 받을 텐데 이곳은 밥의 양에 상관없이 똑같은 돈을 받았다. 그리고 밥의 양은 소 250g, 보통 450g, 중 700g, 대 1kg에서 고를 수 있었다. 물론 먹다가 남기면 100~200엔의 벌금이 있긴 했다. 어쨌든 유도부 사람들은 여기에 오면 전통처럼 무조건 1kg를 시키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오기 싫어했던 것이다.


나는 한 번도 1kg 양의 밥을 먹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솔직히 이것이 얼마나 많은 양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만 몇 달 전 전역한 군대에서 보급병으로 일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군 장병들의 일일 쌀 보급기준을 기억하고 있었다. 2006년 기준으로 국군 장병 일일 쌀 보급 기준(하루 세끼를 합쳐서)은 620g였다. 쌀 몇 그램으로 밥을 하면 수분을 흡수해서 1kg가 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어쨌든 밥 1kg는 엄청난 양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래도 모르면 겁도 없다고, 나는 원래 많이 먹기 때문에 이 정도는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돈까쓰 카레에 쌀 밥 1kg을 주문하였다.


(좌) 이 또한 너무 인상적이어서 찍었던 메뉴판. 중간쯤에 밥의 무게가 쓰여있다 / (우) 사진으로는 얼마 안 되어 보이지만, 거짓말 안 보태고 장난 아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좋든 싫든 총 8명 모두 쌀 밥 1kg씩 주문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주문을 받더니 우선 문으로 향하셨다. 이제부터 밥 8kg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기 위해 문에다가 '만석'이라는 표시를 붙인 것이었다. 시간이 꽤나 흐른 후 드디어 우리의 카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아가씨들이 우리의 밥을 보며 서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 그들도 1kg짜리 밥은 처음 봤으리. 그것도 8개나 한꺼번에.


음식을 받고 보니 나에게는 한 가지 실수와 한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먼저 나의 실수는 돈까쓰 카레를 시켰다는 것이었다. 밥 1kg를 먹기도 힘든데 거기다가 스스로 돈까쓰까지 얹다니!! 먹는 내내 돈까쓰는 뺄 걸 후회했다.


그리고 문제는 밥에 비해 카레의 양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도 먹고살아야 했기 때문에 밥의 양은 늘어나도 카레의 양까지 많이 늘릴 수는 없었나 보다. 나중에 먹다 보니 카레는 다 떨어지고 맨밥만 남았다. 이미 배는 터질 것 같았지만 맨밥만 먹기에는 밥이 넘어가지 않아 단무지를 반찬 삼아 먹고 또 먹었다. 결국 그날 1학년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밥을 다 먹어 치웠다. 다들 이곳에 오면 한 달 정도는 카레를 안 먹게 된다고 했는데 나도 그날 이후 한동안 카레에는 손도 댈 수 없었다.


운동 후 이렇게 먹고 있으려니 우리 유도부의 '비육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어디든 유도부는 몸 불리기에 힘쓰나 보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니 이 카레집 말고도 한 때는 몸을 키우려고 '텐맥'이라는 것도 한다고 했다. 한 명 당 맥도날드 햄버거 10개씩 먹는 것인데 집안이 부유했던 치과 대학의 한 선배가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로는 조금 뜸해졌다고 했다. 그래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해보지 못했다.






운동이 끝나고 집에 가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늦은 시간에 혼자서 밥도 해야 되어서 다른 부원들이랑 식사를 하는 것은 참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신입 부원이라고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나이도 많은 내가 계속 얻어먹고 있으려니 어느 순간 매우 불편해졌다.


그래서 얼마 지나고 나서부터는 함께 밥을 먹는 횟수를 줄이다가 나중에는 그냥 밥을 먹지 않고 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빠질 것이 아니라 돈을 내지 않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나도 내야겠다고 솔직히 말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지금이라고 성격이 별로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그때는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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