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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Feb 19. 2022

도대체 왜 이렇게 운동을 하는 거지?

나의 보잘것없는 유도 이야기 7

비행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널 때만 하더라도 나는 새로운 유도부에서 중간 정도는 할 줄 알았다. 부원이 15명 정도 되었기 때문에 그래도 실력으로 7~8등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함께 운동을 할수록 (나 혼자 생각하는) 순위가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14등 정도에서 멈췄다. 그래도 누운 기술로는 확실히 내가 15등이었으니 14.5등이라고 해야겠다.


당시 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보면 일본에 도착한 지 한 달 만에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처음 큐슈대학 유도부를 찾아갔을 때만 해도 그럭저럭 할 만했다고 썼다. 하지만 보름 뒤에는 운동이 힘들지만 유도로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아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 뒤에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내일 운동은 또 어떻게 하러 가나 두려워하고 있다. 도장을 찾아가는 길에는 '재미있고 힘들지 않은 운동들도 많은데 왜 굳이 유도를 하게 된 것일까'라며 매일같이 후회를 하고 있다.


당시 300엔을 아끼려고 손빨래를 했다. 유도복을 손으로 빨아 보면 우리 삶에 왜 세탁기가 필요한지 알 수 있다.


한국에서도 유도부 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이런 일 있다고 빠지고 저런 일 있다고 빠져서 고작 일주일에 2~3번, 한 번에 한 시간 반 정도 운동을 했다. 그런데 큐슈대학의 유도부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5시 30분부터 8시까지 운동을 했고 심지어 토요일에도 9시에 모여서 11시 30분까지 운동을 했다. 정말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고서야 모든 부원이 운동에 참가했으며 이렇게 하루에 2시간 30분씩 일주일에 6번 운동을 했다.


운동 시간 2시간 30분은 알차다 못해 터질 듯 꽉 차있었다. 처음에는 모두 모여 준비 운동을 10분 정도 한다. 이 시간이 내가 가장 싫어했던 시간인데 아직도 운동 시간이 2시간 20분이나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는 메치기 연습을 20~30분 정도 한다. 이어서 자유연습(란도리)이 시작된다. 이 자유연습은 누운 기술 없이 대련을 하는 것인데 5분씩 6번 한다(더 많이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상대를 했던 한국의 자유연습 방식과 달리 이곳에서는 5분 시간이 경과하면 부저가 울리고 그때 눈이 맞은 사람과 다시 자유연습을 시작하는 식이었다.


자유연습을 하다 보면 매우 껄끄러운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노력하고 별 것을 다해봐도 도저히 안되어서 피하고 싶은 그런 상대가. 내 경우에는 같은 학년(이지만 나이는 어린)의 주장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나보다 키가 15cm 정도 작고 몸무게도 15kg 정도 적었지만 워낙 힘이 좋아서 무엇을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눈을 안 마주치려고 다른 곳을 보기도 했지만 연습을 하다 보면 이번에는 눈을 안 마주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올 때가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다른 곳을 쳐다보다가 살짝 그를 쳐다보면 역시나 그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둘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무엇인가에 끌려 눈이 마주쳤고 자연스럽게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옷을 잡고는 몸을 비비며......




이렇게 하면 거의 1시간 10~20분 정도 시간이 지났고 누운 기술 연습을 하기 전에 3분 휴식시간을 갖는다. 이 시간이 그나마 내가 운동을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쉬는 시간도 타이머를 맞추어 놓기 때문에 에누리 없이 딱 3분만 쉬웠다. 그리고 나서 이번에는 누운 기술 연습을 한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도 하고, 한 명씩 누르고 30초 동안 빠져나오기를 연습하기도 했다.



누르기의 기본 중의 기본. 곁누르기.

일본에 간 초반에 이런 일이 있었다. 누르고 빠져나오는 연습은 한국에서도 많이 했던 것이기 때문에 내 차례가 되었을 때 항상 하던 식으로, 가장 기본적인 곁누르기로 상대를 눌렀다. 한국에서는 보통 이렇게 누르면 상대가 30초 동안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눌려있던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아니 왜 저런 것을 하는 거지' 싶은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다들 말리고 싶은 눈치였지만 일단은 그냥 한 번 해보라고 놔두었다.


상대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나름대로 힘을 주고 렀는데 시작을 알리는 부저 소리와 함께 상대방이 바로 빠져나와 버렸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곁누르기는 너무도 쉽게 빠져나올  있는 기술이라 연습에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정도였다.


어쨌든 이런 연습이 끝나고 나면 상대를 바꿔가며 누운 기술 자유연습을 시간이 끝날 때까지 했다. 이렇게 운동을 하고 나면 녹초가 안되려야 안 될 수가 없었다.


몇 달 이렇게 운동을 하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어느 날 평소와는 다른 곳에서 연습을 했는데 이곳에는 천장에 밧줄이 매달려 있었다. 태릉선수촌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밧줄이. 운동이 끝나갈 때쯤 사범님이 한 명씩 줄을 타라고 했고 모두들 국가대표 선수들처럼 잘도 탔다.


바로 저렇게 밧줄을 탔다. (사진 출처: www.defense.gov)


나는 일 년 전쯤 군대에서 유격훈련 도중 밧줄을 타다가 추한 꼴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밧줄을 오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내 차례는 다가오는데 아무도 실패한 사람이 없었다. 만약 나 혼자서 밧줄 타기에 실패한다면 매우 부끄러운 일이니 머릿속으로는 재빨리 핑곗거리를 찾았다. 마침 복부에 부상을 당해서 허리를 제대로 필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그것으로 변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도 국가대표 선수들처럼 밧줄을 타고 천장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게다가 발은 사용하지도 않고 상체만으로.


나조차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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