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잘것없는 유도 이야기 5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내 인생은 항상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로만 흘러가고 있었다. 때로는 내 의지에 의해서, 때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큐슈대학에서의 교환학생 생활도 그랬다. 후쿠오카에 처음 도착하자마자 유도부를 찾아간 것은 물론 나의 의지였지만, 교환학생 일 년 동안 오직 유도부 생활만 하게 된 것은 순전히 나의 의지만은 아니었다.
나도 처음에는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외국에서 공부를 한다는 생각에 매우 들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도 만나고, 다른 학교에서 온 한국 사람들도 만나고, 같이 수업을 듣는 일본 학생들도 만나니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오직 나 혼자만, 그 많은 교환학생들 중 오직 나 혼자만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지하철 역도 자전거를 타고 30분은 달려야 나오는 그런 곳에 살게 되었다.
당시 큐슈대학은 후쿠오카 시내에 몇 개의 캠퍼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시설이 너무 오래되었고, 개발도 제한되어 불편함이 컸다. 그래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이토 캠퍼스라는 새로운 캠퍼스를 만들어 향후 몇 년에 걸쳐 모든 캠퍼스를 이전시킨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하필이면 캠퍼스 이전의 선두 주자는 바로 공과대학이었고, 2006년 10월에는 오직 공과대학만이 캠퍼스 이전을 완료한 상태였다.
물론 교환학생을 가기 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캠퍼스를 이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아무것도 없을지는 몰랐다. 도착해서 보니 이토 캠퍼스에는 공학관 건물, 도서관 그리고 식당으로 쓰이는 건물 정도만 지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학교 기숙사 건물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첫날 기숙사에 도착해 보니 방에는 침대(매트리스는 없었다), 책상, 의자만 있을 뿐이었고 화장실에는 휴지조차 없었다.
물론 기숙사 주변에도 아무것도 없어서 밥 먹을 식당도 없었고 슈퍼도 없었다. 다행히 학교 건물로 가보니 편의점이 하나 있어서 그곳에서 급한 대로 먹을 것과 휴지를 살 수 있었다. 이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나를 담당했던 교수님(이 분이 공항에서 픽업을 해 주심)과 그 연구실의 조교가 다음 날 슈퍼에 데려다주었고 며칠 후 안 쓰는 자전거도 가져다주셨다.
반면 다른 교환학생들은 모두 시내에 있는 기숙사 건물을 사용하였다. 물론 교환학생들 중에는 공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공대 사람들은 모두 지난 학기에 왔기 때문에 시내로 기숙사를 배정받을 수 있었다. 공과대학만 캠퍼스를 이전한 것도 억울한데 하필이면 내가 오기 직전에 공대 기숙사가 완공되는 바람에 오직 나 혼자만 이곳에 살게 되었다. 그나마 나와 같은 과로 교환학생을 온 형님 한 분이 있어서 그분을 통해 몇 면 다른 교환학생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래도 워낙 사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었고, 과도 달랐기 때문에 다른 유학생들을 만날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찾아갈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큐슈대학 유도부. 일본으로 오기 전 인터넷을 찾아보니 물론 큐슈대학에도 유도부가 있었고 방학 중에도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하는 장소와 시간을 알아낸 뒤 아무도 불러주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는 곳으로 나 홀로 찾아갔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도장까지 가려면 30분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전차) 역까지 간 후 한 번 갈아타야지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 큐슈대학 유도부를 찾아간 것은 일본에 도착하고 나서 이틀이 지나서였다. 이번 학기에 교환학생으로 오게 되었는데 함께 운동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다들 별 반응이 없었다. 아니 그래도 외국에서 왔는데 이렇게 관심이 없을까 놀랐지만 어쨌든 첫날부터 바로 함께 운동을 하였다. 한국에서만 운동을 해봤던 나로서는 그들의 운동 방법이 매우 특이하였다. 준비운동도 특이하였고, 기술 연습(익히기)을 할 때도 한국에서는 전혀 보지 못한 특이한 방법으로 연습을 하였다.
그래도 운동을 하는 순서는 비슷해서 기술 연습이 끝나니 자유연습(란도리, 서로 맞잡고 연습 시합을 하는 것)이 시작되었다. 정해진 시간 동안 이 사람 저 사람과 자유연습을 했는데 한국에서 듣던 것과는 달라서 꽤나 충격적이었다. 어디선가 일본은 변칙 기술을 쓰지 않고 매우 정석적인 유도를 한다고 들었다. 심지어 일본 사람들은 목 뒷깃도 잡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런 소리를 누가 했는지 기억해 낼 수 있다면 한 대 차 주고 싶을 정도였다. 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었던 내가 이상한 것이었다.
이곳에서 운동을 하기 시작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 했던 것은 운동도 아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