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검사 Feb 19. 2022

전역 그리고 다음은

나의 보잘것없는 유도 이야기 4

이런저런 사정으로 남들보다 훨씬 늦게 군대를 가게 되었다. 원래는 6학기를 마치고 입대를 하려고 했기 때문에 친구들도 거의 없이 황량한 학교에 홀로 남게 되었다. 혼자서 학교를 다니려다 보니 이대로라면 제대하자마자 바로 취업 준비 후 졸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생의 한 번뿐인 나의 대학 생활을 이대로 마무리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군대에 다녀오고 나서 교환학생에 지원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냥 휴학을 하고 어학연수를 떠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나가면 학점도 채울 수 있기 때문에 졸업이 늦어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교환학생에 지원할 수 있는 학기는 6학기째가 마지막이었다. 왜냐하면 학교 규정상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나서 최소 한 학기 이상을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6학기는 등록을 취소하고 유도부에서 운동이나 하면서 교환학생을 지원하기 위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지원 시기를 살펴보니 대부분(아마 전부?) 봄 학기에 지원을 해서 가을 학기부터 상대방 학교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내가 전역을 하고 나면 2006년 봄 학기에 맞추어 복학을 할 수 있었으니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교환학생을 모집하는 학교들을 살펴보았다. 주로 미국과 캐나다의 학교들이 많이 눈에 띄었으나 문제는 그러한 학교들은 경쟁률이 워낙 높아서 학점도 좋아야 되고 영어도 잘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나의 학점은 1학년 이후 계속 하강을 하는 추세였고 영어는 열심히 공부를 안 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나마 합격 가능성이 있는 학교는 일본에 있는 대학교들이었다. 마침 일본어는 그럭저럭 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군대 입대 전에 다시 학원을 다니고, 군대에서도 공부를  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영미권 학교들보다는 경쟁률낮았다. 요즘은 일본 학교들의 교환학생 경쟁률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당시까지는 교환학생 제도가 본격적으로 정착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일본 학교들의 경쟁률은 그나마  만한 수준이었다.


이렇게 일본에 있는 대학교로 교환학생을 가기로 마음을 먹고 입대를 하였다. 그리고 군생활 후반부가 되어서부터 본격적으로 부대 내에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였다. 마침 내가 근무했던 부대는 정말 운이 좋게도 전주 시내에 있는 부대였다(내 경우는 순전히 운이었다. 하지만 부대 내에 백을 써서 들어온 사람이 꽤나 많았다). 당나라 부대라서 그런지 매일같이 취침 시간 이후 한 시간 정도는 TV를 봐도 간부들이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맨 끝 구석에서 훈련할 때 쓰고 남은 백열등과 전등갓으로 전등을 만들어서 한 시간 씩 일본어 공부를 하였다.


그렇게 공부를 해서 전역을 조금 앞둔 2003년 12월, 전주 시내의 한 학교에 가서 일본어 능력 시험(JLPT)을 보았다. 부대에 이야기를 잘해서 외출로 시험을 보고 왔는데 혼자서 군복을 입고 시험을 보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외출로 시험을 볼 수 있는 곳에서 군생활을 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복학 후 기다리던 교환학생 공고를 보니 일본에서도 이런저런 대학교가 교환학생을 모집하였다. 내 기억에 대부분 도쿄에 있던 학교였고 지방에 있던 학교로는 센다이의 토호쿠(東北) 대학과 후쿠오카의 큐슈(九州) 대학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도쿄에 있는 학교에 지원을 할까 했지만 아무래도 경쟁률이 높을 것 같아서 지방에 있는 학교가 안전해 보였다. 그래서 토호쿠대학과 큐슈대학을 놓고 무수히 많은 고민을 하였는데 결국 모집 정원이 조금 더 많은(5명) 큐슈대학에 지원을 하였다.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고 나서 얼마 있다가 합격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국하기 전에 보니 큐슈대학으로 떠나는 사람은 나 말고 다른 학생 한 명이 더 있을 뿐이었다. 분명 5명 모집한다고 했는데... 미달이라도 합격은 합격. 이 학교에서 JLPT 1급을 요구했기 때문에 지원자가 적었던 것이라고 혼자 믿기로 하였다.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2006년 9월 후쿠오카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짐가방에 들어있던 유도복과 함께.


후쿠오카 항구 위를 지나는 다리에서(아라쓰대교)


사실 처음에만 하더라도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떠나는 김에 일본에서도 유도를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1년 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내가 유도를 하기 위해 일본에 왔던 것인지, 교환학생을 위해 일본에 왔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전 04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