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엔딩이란 없다

과연 제주 온다고 '해방'할 수 있긴 할까???

by 킴 소여

제주를 이주하고 세 번의 고뇌가 있었다.


첫 번째 고뇌- 제주에 정착하고 싶은 고뇌

공부방을 오픈하기 전. 그냥 빨리 꿈에 그리던 제주에 이주해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 외엔 큰 걱정은 없었다. 저 아름다운 제주에 속해 있고 싶다는 갈망과 희망.


두 번째 고뇌- 공부방이 자리 잡기 바라는 고뇌

공부방을 나름 충분한 사전조사로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오픈 첫 달 동안 문의가 한통도 없었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홍보해 보고, 아직 한 달밖에 되지 않음에 위안을 해보지만. 점점 차오르는 불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실패의 가능성을 처음 떠올리게 된다.


세 번째 고뇌- 공부방 번성. 고뇌 끝??

3월 개학과 동시에 갑작스레 증가하는 학생. 입소문으로 빠르게 학생이 가득 찬다. 공부방도 자리 잡았겠다. 이제 고뇌는 끝! HAPPY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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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것 같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동화 속 남녀 주인공은 결혼 후에도 삶은 계속 이어지며, 제주에 이주해 공부방이 잘 되어도 끝이 아닌 삶은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그토록 원했던 해피엔딩의 뒷 이야기는 훨씬 더 길기 때문에 결코 해피하기만 할 수 없다.




제주로 이주해 시작한 창업은 꽤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성공의 객관적인 지표가 없기에 '성공했다.'라고 단정은 짓지 못하겠지만, 공부방의 경우 오픈 1년도 되지 않아 30명 남짓의 학생수를 기록했다. 공부방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알만한 성공이다. 학원 확장도 거의 할 뻔했었다. 거기다 대구 본래 집을 이용한 숙박업도 에어비앤비 평점 만점을 유지하는 '슈퍼호스트'로 자리 잡을 정도로 예상보다 선전하였다.


제주 이주와 경제력 확보. 모든 것이 이상적이다. 이제 모든 것이 해피 엔딩일 것 같았지만 그 안에 새로운 고뇌와 갈망이 생긴다.

첫째, 일과 휴식의 밸런스 부족

공부방이 잘 될수록 여가시간이 부족해진다. 수업 준비, 학부모 상담, 교제 채점 등 해보기 전엔 몰랐던 수업시간 외적인 시간이 많이 들어갔다. '잘 되면 좋은 거지 배부른 소리'라고 다른 원장이 들으면 손가락질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제주에 온 이유는 '제주에서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이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돈은 나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고, 그중 하나인 여유 시간을 침해한다면 그건 내 기준에선 안 좋은 것이다.


둘째, 긴 통근 거리

공부방을 선정할 때 많은 상권조사와 숙고 결과 서귀포 도심지로 장소를 택했다. 반면에 거주할 집은 꿈꾸던 조용한 전원생활을 위해 멀리 떨어진 곳을 택했다. '꿈과 현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하루 왕복 1시간의 긴 통근 거리를 택했다. 도시에서 통근 1시간은 사실 흔한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제주에서는 현지분들이 모두 말렸다. 일단 1시간이 그냥 1시간이 아니라 전혀 밀리지 않는 순수한 1시간 거리이며, 그 길은 산 길이다 보니 연비가 낮아 유류비가 많이 든다. 특히 산 길 밤 운전은 가로등이 거의 없어 퇴근길에 피로도가 높았다.


셋째, 교육 이상과 현실의 괴리

학생이 많아질수록 동시간 수용 학생 수가 늘어난다. 한 아이당 내가 할애해 줄 수 있는 시간이 1/N로 줄어들면서 스스로 수업의 질이 만족스럽지 못해 진다. 자존감이 높은 나라는 사람은 나 자신의 기준이 가장 중요한데, 내가 내 수업이 만족스럽지 못해지자 스트레스가 커진다. 그럼 학생수를 줄이면 되지 않느냐? 그러면 공부방 운영 타산이 맞지 않다. 공부방 위치가 좋아 월세가 높고, 출퇴근 유류비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심, 갈망, 근심은 끝나지 않는다. 오죽하면 행복은 욕망하던 것을 잠시 이루었을 때의 순간 감정일 뿐, 이내 그 행복도 권태에 빠져 새로운 욕망을 갖는다고 한다. 그럼 진정한 행복, 영원한 행복이란 없는 것일까? 도시에서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제주로 와 어느 정도 잘 정착했음에도 여전히 헤매고 있다. 나다운 삶이 무엇인지. 나로 이르는 해방이 가능하긴 한 건지. 흔히 말하는 부자나 경제적 자유 없이 노동이 생산성의 주를 이루는 방식으로는 사유할 수 있는 여가 시간의 부족으로 나다운 삶을 찾는 것은 정녕 어려운 것인지.


너무 어렵다. 제주에만 오면 모든 것이 다 생각처럼 될 것 같았는데..


그렇다. 어렵다. 그게 그렇게 쉬울 리가 있는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쨌든 나는 이곳, 제주에 있다.

힘든 몸을 이끌고 돌아간 내 집엔 꽃과 풀과 나무가 가득하다. 즐겁기도 힘들기도 한 몸을 이끌고 돌아가 나를 기다리는 곳에서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 맺고 시드는 자연들이 있다. 나와 우리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늙어가는 자연이라는 가족. 서로의 늙음을 서로 지켜봐 주며 아름다울 때 함께 기뻐하고, 초라할 때 함께 슬퍼해주는 가족들이 있다.



해피 엔딩은 없다.

해피 나우만 있을 뿐.


제주에 온다고 모든 것이 동화처럼 짠! 행복해지진 않았다. 여전히 삶을 살아야 하며 생계라는 많든 적든 인류 역사 공통의 문제가 끝없이 따라다닌다. 그럼에도 내 옆을 감싸는 공기가 자연이라는 것에. 내가 기쁘든 슬프든 옆을 감싸고 있다는 것에 충만함을 느낀다.


아침에 너무 많은 새들의 지저귐에 깰 수밖에 없고, 밤엔 풀벌레 소리의 풍성함에 묻혀 잠든다. 자연의 방대함 속에 둘러싸인 기분. 자연의 침대는 어떤 호화스러운 호텔보다 나를 더 행복하게 한다. 여전히 헤매고, 해방이 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한 수많은 선택들 중 가장 잘 한 선택은 '제주를 내 삶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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