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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잇 Jul 10. 2022

아무 말

오뒷세이아

의기소침하고 마른 김 씨가 방 안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데 거기엔 팬과 30cm 자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글쓰기. 열흘이 지났다.


2016년 6월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탔다. 유라시아. 토요일 오전에는 남산을 올랐다. 남대문에 있는 한옥카페에도 갔다. 목요일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봤다. 화요일에 영등포 타임스퀘어 교보문고에서 책 <멜로가 체질 대본집>을 구매했다.


유치원 다닐 때 장난감 플라스틱 삽을 부러뜨렸다. 놀라서 모래에 묻어 숨겼다. 선생님이 자수하라고 했지만 나가지 않았다. 나가지 않으면 지목할 줄 알았다. 지목하지 않았다. 이때 일이 아직도 남아있다. 무심코 문을 열고 나가다가 뒤에 있던 같은 반 아이의 코피를 터트린 일도 있다.

드라마 지난겨울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를 재밌게 봤다. 늠름해지자.

지난 주말에는 뭐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생각났다. 영화 <위 아 40>을 봤다.

책 모임이 끝났다. 모임은 끝났지만, 영화를 열심히 보기로 했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이웃집 토토로>를 볼 계획이다.


매일 관상 기도를 해야 된다. 아침 노트 분량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다음 주 토요일에는 서울 퀴어 축제에 갈 계획이다. 수요일에는 자원봉사 사전 교육이 있다.

역사는 돌고 돈다. 빛이 나는 솔로. 산티아고 순례길. 하는 일이 문제다. 거룩한 일. 말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혼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맡기는 일은 하지 않는다.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을 감당한다. 선풍기가 돌아간다. 지구는 움직인다. 대중가요. 격주로 참석. 계속 보고 싶다. 누가 영화 많이 보나 천하제일 무술 대회. 책을 보겠다. 영화,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다. 가만히 앉아 있을 시간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진주 냉면을 먹었다. 육전과 고기가 올라가 있다. 집에 아주 작은 바퀴벌레가 계속 나온다. 어젯밤에는 세 마리를 잡았다. 볼 게 없다는 소리만큼 슬픈 이야기가 없다. 볼 게 없으면 직접 만들자.

<잃어버린 사랑>. 사랑 3부작. 책을 볼 시간이 없다. <스티브 잡스>를 계속 보고 있다. 기도에 관한 책을 계속 보고 있다.

콘텐츠에 관심이 많다. 얼굴에는 로션, 선크림만 바른다. 스킨은 다 떨어졌다.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함부로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도 함부로 여긴다. 집중해서 써야 한다. 자기 전에는 전자기기를 보지 않는 것이 좋다.


책을 읽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책 모임을 신청했다. 파트너에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됐어도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세상에 대한 미움이 많다. 그리스도님 불쌍히 여기소서.

독립.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글을 쓸 때면 제임스 조이스의 <울리시스>를 떠올린다. 물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쓸 능력이 없다. 피카소는 구상화를 잘 그렸다. 기초수학이 탄탄해야 현대 수학도 할 수 있다. 호흡과 자세도 무너져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살겠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서 당신의 쉴 곳이 없다.

죽음을 애도할 때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노화는 죽음을 환기한다. 죽음을 탓하지 말자. 모든 사람은 죽는다. 오히려 죽음이 자유를 줄 수도 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진시황도 피하지 못했다. 스티브 잡스는 죽음을 발명품이라고 했다.

주중 저녁에 읽어야 할 과제가 많다. 슬랙 중독이다. 핸드폰에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틱톡은 없지만 슬랙이 있다. 슬랙을 계속 확인하고 글을 올린다. 회사 사람들이 애인 있냐고, 결혼할 계획이 있냐고 묻는다. 비전 있냐고.

다양한 결혼 생활을 저마다 한다. 영화 <결혼 이야기>를 보면서 사람을 사귀는데 겁을 내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물론 이혼할 때 변호사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뭔가 조롱하는 사람들이 정말 싫다. 내가 나도 모르게 뭔가 조롱하나 보다. 뭔가 싫다는 것은 내가 그것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내 눈에 들보를 빼내야 상대의 티끌을 걷어낼 수 있다.


차별금지법 공청회 유튜브 영상에 찬성 댓글을 달았더니 반대 대댓글이 달린다. 인신공격도 한다. 거울처럼 똑같이 받아친다. 그러다 보면 지친다. 인터넷이 정신을 소모할 수 있는 공간을 확장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을 봤다. 박찬욱 감독의 <몽타주>와 <오마주>를 사서 볼 엄두는 안 난다. 영화보다 책을 보는 것이 더 좋다. 영화보다 책이 더 입맛대로 소비하기 좋다. 영화는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 감독과 제작사를 그만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드라마도 그렇다. 책은 보다 마음에 안 들면 덮으면 된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보면 된다. 영화는 끝까지 봐야 한다. 드라마도 보다가 안 보면 기분이 별로다. 나중에 다시 보려면 그만큼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 책은 언제든지 펼쳐 보고 덮을 수 있다.


죽음과 싸워 이긴다. 죽음을 무시한다. 강도 만난 자를 도와준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웃을 사랑한다. 내가 강도 만난 사람이다. 마음에 새기고 싶은 글을 쓴다. 무덤을 찾는다. 장 콕토 <시인의 피>. 어떻게 장 콕토를 알게 됐는지 모르겠다. 오르페우스.


왓챠페디아로 서로의 영화 취향을 비교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인풋을 넣어야 한다. 하지만 게으르기 때문에 인풋을 넣지 않는다. 변명하자면 나름 열심히 살았다. 다시 인풋을 하면서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다. 영화 <샤인>을 보면 같은 글을 반복해서 쓰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샤인을 보면 같은 글을 반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샤인을 보면 같은 글을 반복해서 쓰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샤인>을 보면 같은 글을 반복해서 쓰고 있다. 복사, 붙여 넣기가 아닌 이상 이것도 힘이 들어간다. 왜 쓰는가? 더 나은 마음을 얻기 위해서 쓴다.


영화 <큐어>의 원작이 있을까 싶어서 찾아봤는데, 없다. <오이디푸스> 이후 해 아래 놀랄만한 반전이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발명국에서 시계 맞추는 일을 했다.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는다. 내일 출근이지만 영화 <큐어> 감독의 <스파이의 아내>를 보고 자야겠다. 런타임 1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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