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도쿄에서 잭팟이 터졌다.
숙소 근처 1층에 아주 번쩍번쩍한 오락실이 있길래 들어갔는데 오락실이 아니었다. 진짜 카지노였다. 물고기를 잡는 것도 있고 카드 게임도 있고 슬롯머신도 있었다. 건물 내부는 진짜 밝았고 깔끔했다. 그 어느 곳 보다 밝게 되어있어서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게임 머신 앞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영혼이 없어 보였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서 끊임없이 될 때까지 돈을 무한정으로 넣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기계 같았다. 왜 정장을 입고 이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일종의 매너인 걸까? 나도 한 번 해보고는 싶었지만 일본어로 되어있기도 했고, 사실 언어와 별개로 당기고 누르는 게 전부였긴 했지만, 분위기가 무서워서 그냥 구경만 빠르게 하고 얼른 나왔다.
카지노가 아니라 진짜 오락을 하고 싶어서 오락실을 찾았는데 오락실의 규모가 거의 백화점 수준이었다.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전부 오락실이었다. 맨 위층은 성인들만 입장이 가능한 카지노였다. 한국에서 경험한 오락실은 진짜 비교도 안 된다. 내가 한국에서 하던 게임들이 다 있었다. 당연히 일본에서 넘어온 것들이니, 현지에서 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성인들만 입장이 가능한 5층엔 현지인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대부분 관광객들이었다. 아마 현지인들은 앞서 이야기한 곳으로 가지 이런 건전한 곳으로 오지는 않는 거 같다. 그렇다고 건전하다고 하기엔 마작, 경마, 카드게임, 물고기 게임, 동전 게임 등 없는 게 없었다.
5층에서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었지만 게임을 할 줄 모르는 데다가 돈도 없었고 애초에 도박과 나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기에 그냥 적당히 게임만 일반 게임만 하고 하는 사람들 구경이나 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 게임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대충 버튼 좀 누르고 운 좋으면 동전이 마구 나오는 게임이 있었다. 누가 봐도 여행객 같은 친구가 하고 있길래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운 좋게도 잭팟이 터져서 동전이 미친 듯이 나왔다. 사진에 나온 동전이 나에게 나눠준 동전이다. 저만큼을 나와 내 친구에게 나눠주고도 본인은 얼마나 많이 챙겨갔는지 감이 올 것이다. 아마 그 친구도 계속 누르다가 잭팟이 터진 거 같다. 코인의 가치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20개에 1,000엔 이 정도 했던 거 같다. 환전을 해서 보다 풍족한 여행을 즐길 수 있었지만 일단 일본어를 할 줄 모르고 이 코인을 준 친구는 분명히 내가 게임을 즐기길 원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차피 해보고 싶었으니 기념으로 1개만 빼고 다 쓸 생각으로 열심히 탕진을 했다.
그 사람이 떠난 그 자리에 바로 앉아서 그 기운을 이어받아 열심히 게임을 했다. 무슨 게임인지 모르지만 일단 열심히 돈 넣고 버튼을 열심히 눌렀다. 죄다 설명이 일본어니까 알 수는 없었다. 그저 나는 열심히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는 거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연하게도 돈은 한 푼도 벌지 못했다. 이러다가 돈을 다 날리는 게 아닌가 싶어서 언어와 전혀 관계가 없는 언어를 몰라도 할 수 있는 카드 게임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래도 왕년에 컴퓨터에서 카드 게임 좀 했으니까 승산이 있다고 봤다. 그리고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고 꽁으로 들어온 돈이라서 내가 가볍게 생각을 한 것인지, 묻고 2배로 3배로 가는 바람에 다 잃었다. 기념으로 가지고 갈 1개를 제외하고 다 잃고 나서 드는 생각은 "조금이라도 남았을 때 환전할 걸"이라는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어쩌면 내가 환전을 했더라면 다음날 근사한 한 끼를 먹으며 진정한 잭팟을 만끽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지나고 나서 드는 생각일 뿐. 당시엔 돈을 다 써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마음 한편엔 조금이라도 불려서 환전해서 쇼핑을 할 심산이었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을 구경하고 있으면 다들 반듯한 자세로 게임을 하고 있다. 게임하러 간 거면 대충 앉고 삐딱하게 앉아서 할 법도 한데 누구 하나 삐딱하게 앉아서 하는 법이 없다. 게임할 때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인 건지, 지금 하는 게임이 마지막 게임인 것처럼 하는 마음인 건지, 아니면 몸에 밴 자세인 건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질서 정연하고 정리가 된 일본 사회가 때론 섬뜩할 때가 있다. 순간순간 굳이 이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좀 과격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로봇 같기도 하다. 감정 없이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각져있거나 자로 잰 듯한 느낌을 줄 때도 있다. 이게 일본의 매력이라면 매력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