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격 Jun 30. 2022

손님, 감정

체험 시작 한지 이제 일 년이 되었다. 작년 이 맘 때쯤, 손님이 들어서면 나도 어색하고 서로 어색했다. 

설명하고 궁금한 것 묻고 답하며 2시간가량의 시간이 지나면 그새 정이 든다. 서로 고마운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아쉬움을 갖고 마중을 한다. 


이제는 체험 시작 후 농담 어린 질문을 던져 보기도 한다.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원하는지 확인해서 어색함을 초반에 지워 버리기도 한다.


내 기분이 별로 일 때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손님이 내 기분을 풀어 주면 컨디션이 좋아져 노력을 하게 된다. 

그를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나처럼 컨디션이 좋아져 노력을 할 것이다. 


아이들은 거리를 좁히는데 주저함이 없는 것 같다. 

내 손을 꼭 잡으며 구경하는 아이.

설명하다가 멈칫 했다. 믿는다는 의지가 느껴질 정도의 악력이었다. 

헤어질 때도.

주저함이 없다. 

인사드려야지! 엄마의 얘기가 끝나기 전에 벌써 문 밖이다. 


말이나 표정 어디에도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손님이 있다. 이 경우 같이 텐션이 죽어 버린다. 

친구들이 지적하는 것이 이 부분이겠다. 

넌 서비스가 안돼.


체험 한 달 후 완성품이 나오면 다시 만나게 된다. 

기억이 희미해져 한 달 전 감정도 흐릿하지만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기억이 급격히 살아나면서 그때의 감정으로 포장하고 봉지에 담아 드린다. 

참으로 괜찮다. 

장사만 잘되면 괜찮은 직업이다.


실망하거나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면 된다. 

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릇 찾으러 오실 때 바나나를 사 오신 분이 계셨다. 

너무 큰 걸 만들어서 미안했다고 하신다. 

재차 계속 미안하다고 하신다. 

따님과 싸웠나? 

모녀가 같이 체험을 했는데 제작 도구의 크기를 넘어서는 접시라서 이런저런 곤란함이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하지. 내심 짜증이 일었었다.

 

주부님들의 경우 개수를 많이 하려 하거나 크기로 본전을 뽑으려 하시는 경향이 있고 이분도 그런 분이구나 생각했었다. 

같이 온 따님이 뭐라고 해서 타협을 했기에 사실 양호한 편에 속한다. 

근데 내 속마음이 드러났나 보다 

바나나를 받아 든 손이 무안했다. 

흘려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 놓았던 감정이 엉뚱한 데서 넘친다.  


그래도 젊었을 때와 다르게 짜증이 올라오면 바로 느낄 수 있다. 조금 발전했다. 

애정은 표현해야 느끼지만 미움은 표현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것 같다. 

내가 부족하니 상대가 이런 거에 둔감했으면 좋겠다. 


체험 후 재벌까지 마친 그릇을 가마에서 꺼내면 

주인에게 연락을 돌린다. 


공방입니다. 그릇 나왔어요^^ 오실 때 연락 주세요~


상냥하게 문자를 돌린다. '오실 때 연락 주세요' 이 부분이 내가 하고 싶은 얘기이다. 

반은 연락하고 오고 반은 그냥 오신다. 


불쑥 들어서면 당황스럽다. 

나의 영역을 침범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분명 부탁했는데. 

언제 올지 모르니 편하게 쉬지 못한다.

불쾌한 감정이 올라온다. 


수업을 시작한 직후. 

물레를 차고 있을 경우.

잠깐 자리를 비웠을 경우.

놀고 있을 경우도 

불쾌한 감정이 올라온다. 


연락하고 오시지. 그럼 준비해 놓았을 텐데요. 

눈치를 주기도 했다. 

이제는 생각을 고쳐 먹으려 한다. 


나 편하자고 욕심을 냈던 부분이다. 

준비되지 않은 모습. 노출돼도 괜찮다. 

하던 일 멈추고 준비를 하고 시간이 소요되지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여긴 사적 공간이 아니니까. 

늘 사람들이 들고 나는 공간이니까. 

나 편하자고 욕심을 냈던 부분이니까. 


네이버 리뷰를 좋게 달아 줘서 고마웠던 손님이 있다. 

리뷰 확인은 잘 안 하는데. (확인해서 뭐 할 게 없으니까. 안 달거나 좋은 얘기 해주거나 둘 중 하나이다)


플레이스 등록 정보를 보강하려고 (손님 없어서) 했다가 리뷰를 확인했다. 

아직 그릇을 찾아가기 전이라서 만나면 고마움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날 불쑥 손님이 들어오셨다. 

짜증을 숨기려고 짧게 손짓으로 응대했다. 

누군지 몰랐다. 

완성품 중에 손님의 그릇을 찾고 나니 기억이 났다. 


그분이구나

고마움을 표현해야 하는구나. 


무뚝뚝했던 얼굴을 순간에 바꿀 수가 없었다. 

그런 거 못한다. 

적절한 멘트를 찾아 머리는 바쁘게 돌렸지만 입으로 나오는 건 없었다. 

그분은 만족스러운 체험의 

그 기분으로 오셨다가 어색하게 돌아가셨다. 

남편과 또 가겠다고 약속했다는 리뷰를 남기셨었는데.

찜찜함이 오랫동안 남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 

작가의 이전글 응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