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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격 Nov 22. 2022

소수자의 사고 형태.



친구들에게 그거 왜 샀냐? 그거 왜 했냐? 

물으면 유행이란다. 


알았어. 근데 왜 샀어?

유행. 유행이라고.


유행이라는 게 답이다.


어린 시절. 벽면 가득 레코드판이 있었다. 

십 년 차이나는 작은형의 취미였다. 

주로 팝송이었고 젊은 사람들은 팝송만 듣던 시절이었다. 

환경이 그러니 나도 팝송을 듣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노래는 많았으나 누구의 무슨 곡인지는 잘 몰랐다.

앨범 표지 그림과 몇 번째 곡이라는 것만 기억해서 꺼내 들었다.  

누가 불렀고 그 누구는 누구고 이런 건 관심 없었다. 


외향적인 경우 어떤 작품을 볼 때 누가 만든 것이고 그 누구는 어떤 사람이고 시대적 배경이라든가 유명하냐 아니냐 같은 주변 가십거리에 관심이 있단다. 


누군가와 얘기 나누기 위해서 작품을 보는 사람. 

본인이 즐기기 위한 정보만 보는 사람.

외로움은 무조건 싫은 사람.

외로움이 필요하기도 한 사람.


외향적인 이들의 가치관이나 취향은 본인의 취향이 아닌 외부 분위기에 의해 결정되는 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향 내려와서 토박이들과 생활하면서 하나 같이 같은 형태의 사고를 하는 걸 보고 드는 생각이다. 

사회성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지. 나는 사회성이 없었지. 

괴짜로 지적받지 않으려면 주변 분위기를 봐야 한다. 

내 고향이 원주가 아닌 외부인이었으면 여기서 어떤 느낌이었을까.

내가 외향적이었으면 잘 녹아들었겠지.


환경을 생각하고 개념 소비 같은 게 트렌드처럼 보이지만 내 주변까지는 기세가 형성되지 않았다. 

여기서는 예전처럼 살아야 한다.


포장이 너무 화려한데?

일회용품 좀 쓰지 마.

물 좀 잠그고 설거지해.

  

유난 떤다. 얘 왜 이러냐? 

친구들이랑 놀러 가고 어울리다 보면 듣는 소리다.  


그리고 난 

민감한 사람이다. 디테일한 감정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부럽다.  

다수에 속하는 애들이 부럽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유행을 기준으로 잘 뭉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대세가 되는 유행은 외향인 들의 취향이 기도 하겠구나. 

물 들어온다는 말.  

유행에 잘 올라타면 그런 성향의 사람들을 확보할 수 있는 건가

외향적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만들어야 하나?

난 내향적이므로 의도적으로 노력해서 타인의 취향을 살피지 않으면 사회와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민감 성향은 유행을 진작에 느낄 수 있겠지만 내향적 성향이 합쳐지면서 유행을 주의 깊게 보지 않게 된다. 

취향을 존중하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맞춤 콘텐츠를 제공해 줄수록 사고의 형태가 각자의 길로 멀리멀리 가게 될 텐데. 내적 만족에 치중하게 되어서 각자 플레이하겠지. 


그러면 

유행이라는 형태로 드러내지 않을 뿐. 어딘가에서 내적 만족을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 


판매를 위해서 책상머리에 앉아 머리 굴리고 있던 시절.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하여간 그 시절.

나도 모르게 기성품을 닮아 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빈틈없는 모양과 흐트러짐 없는 무늬를 추구하며 스트레스 받고 있었다. 수제 느낌을 지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게 품질이고 필수 요소라고 생각했다.

다이소, 이케아 제품을 사는 사람을 만족시키려 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흠잡을 때 없는 제품을 제공하는 것은 포기한다. 

품질은 마감에 대한 것이지 취향에 대한 것은 아니다. 취향이 될 수 있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힘줄 때와 뺄 때를 구별하지 못했다. 


자연스러운 느낌의 수제품을 사는 사람은 따로 있다. 


타인의 취향을 쫓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깊이 파라. 

그것에 미쳐라!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어라. 


여러 가지 좋은 얘기들이 지금 나에게는 맞지 않는 얘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알맞게 다듬어서 적용해야 할 말들이었다. 


가슴이 흥분하는 일을 해야 한단다. 

그런데 자신의 가슴이 끌리는 일은 어렸을 때나 하는 거고

이제는 다른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에서 내 가슴이 뛰어야 한단다.

 

무슨 말인가 곱씹다가 이해가 되었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고객이 갖고 싶은 것을 만들어야지.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에 가슴이 뛰어야지. 

그게 어른스러운 열정이구나.

맞지. 책임이 있고 부양해야 할 사람이 있는 어른은 그래야지. 


나 같은 소수자의 어른스러운 행동은 어떤 것인지 고민하다가

다수자를 이해하고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처럼 타인의 취향을 존중해야지.   

어른스럽게 행동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단은 어딘가에 있는 소수자들의 마음을 사야겠다. 그러다 보면 다수자들이 쳐다보겠지. 

쳐다보는 시선에서 취향의 힌트를 얻어야지. 그렇게 다수자를 확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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