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방학 일상
6시 30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곧 여름인지라 이른 아침부터 해가 밝게 빛나고 있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렌즈를 빼고 잠을 깨기 위해 양치를 한다.
물로 대충 세수를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워버린다.
이제 엄마가 일어날 때까지 누워서 밀린 인스타그램 알림 들을 확인하고 이따가 그림을 그리기 위한 레퍼런스들을 찾아놓는다.
그렇게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보면 한 시간이 쏜쌀같이 지나가 버린다.
조금이라도 생산성 있는 걸 하기 위해 영어 단어 어플로 들어가서 단어를 외우다 보면 8시다.
탁탁 탁탁-
우리 집 강아지 모모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즉, 엄마도 일어났다는 뜻이다.
모모는 엄마 껌딱지라 항상 함께 움직이려고 한다.
1층으로 내려가면 햇살에 잡아먹힌 거실이 보인다.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다. 아침에도 해가 가득 들어오는 거실에서 아침을 먹는 것만큼 행복한 게 없다.
물론.. 가끔은 선크림을 발라야 할 정도로 해가 심하게 드는 날도 있지만..
우리의 아침 메뉴는 항상 바뀐다.
가끔은 고소한 식빵에 달달한 땅콩버터와 까매지기 직전인 바나나를 예쁘게 썰어 올려서 먹고,
가끔은 꾸덕한 그릭요거트에 차가운 냉동 블루베리를 넣어서 먹기도 한다.
그렇지만 요즘엔 시간 여유가 있어서 “끼처리”라는 음식을 자주 해 먹는다.
사실 인터넷에 찾아보면 “khichdi”라는 이름이 뜨며 여러 발음 방법들이 나오지만 우리는 그 음식을 “끼처리”라고 부른다.
끼처리는 인도의 한 지역에서 먹는 음식으로, 사고펄과 닮은 “사부다나”라는 펄로 만든 요리다.
밤동안 이 펄을 물에 불려놓고 아침이 되면 감자, 고수, 땅콩, 페페론치노 등과 함께 볶으면 된다.
이렇게 볶으면 노란색 펄로 변하는데, 매콤하면서도 고소한 이국적인 맛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작년 여름, 지리산에 가서 이모할머니 집에서 묵었을 때 이모할머니가 해주셔서 알게 된 음식이다.
이모할머니는 딸들의 이름을 인도 지역명으로 지으셨을 정도로 인도를 사랑하시는 분이셔서 그런지 한식보다는 인도 음식을 더 자주 해주신다.
지리산에서는 여러 가지 과일을 넣은, 할아버지가 만드신 “라씨”와 함께 이 끼처리를 먹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어쨌든 티비를 보며 아침을 먹고 나서는 방에 들어온다.
학업에 파묻혀서 여태까지 쓰지 못했던 블로그 글을 정성 들여 적다 보면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글도 다 썼겠다, 이제는 그림을 그릴 차례다.
이탈리아의 한 오래된 화방에서 사 온 스케치북을 열고 스케치를 시작한다.
헤드셋에서는 요즘 내가 빠져있는 검정치마의 노래들과 실리카겔의 노래들이 순서대로 흘러나온다.
너무 여유롭게 그림을 그린건지.. 벌써 12시, 점심시간이다.
곧 엄마가 회사에서 나올 시간이다. 일이 많은 날에는 한시가 다 돼서야 도착하지만 다행히 오늘은 12시 30분 즈음에 도어록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한참 계란프라이를 할 때면 아빠도 집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다 같이 오순도순 비빔밥을 먹는다.
할머니가 해주신 고추장과 직접 짜서 병에 담아주신 참기름을 넣고 여러 나물들과 함께 비벼 먹는다.
평소에는 학교에서 식은 밥만 먹다가 집에서 오랜만에 다 같이 먹으니까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한시 반쯤에는 엄마도 아빠도 다시 회사에 간다.
그러면 나도 다시 그림을 그린다.
벌써 3시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걸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 거의 매일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놓는다.
어쨌든 이제 집에서 나갈 시간이다.
바로 앞에 사는 언니와 함께 빙수를 먹으러 갔다가 우리 아파트로 돌아와서 영화도 한 편 본다.
그러다가 각자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하기 위해 만나는 것이 우리의 루틴이다.
아직 부모님이 퇴근하시기 전이라 냉장고에서 식빵을 하나 꺼내서 프라이팬에 굽는다.
양면이 노릇노릇해지면 치즈부터 올리고 이모가 사다 주신 트러플 마요네즈와 고추로 만든 소스를 슬쩍 발라준다.
냉장고에서 상추랑 햄을 꺼내서 올려주고 계란프라이도 부쳐야 할까 잠시 고민하지만 귀찮아서 그냥 먹는다.
그래도 배고픈 건 싫으니까 작은 연두부 팩을 하나 꺼내서 숟가락으로 중간에 구멍을 파준다.
그 구멍 안에 간장을 넣고 티비 앞으로 간다.
“코타로는 1인 가구”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며 밥을 먹고 다시 언니를 만나러 공원으로 간다.
오늘은 운이 좋다. 사람이 거의 없고 날씨도 화창하다.
언니랑 작은 호수 주변을 돌고, 자고 있는 오리들을 지나치며 러닝을 한다.
그러다가 새로운 공원을 발견했다. 강아지를 위한 공원이다.
잠시 의자에 앉아서 뛰어노는 강아지들을 구경하다가 해가 지고 있는 핑크빛 하늘도 바라보며 다음에는 책을 읽으러 다시 오자는 이야기를 한다.
미래에 가고 싶은 여행지들을 공유하다 보면 벌써 어두워지는 하늘이 눈에 띈다.
다시 원래 공원으로 뛰어가서 운동을 하다가 우리 아파트 단지로 들어온다.
애기들이 술래잡기를 하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다음 주에는 승마를, 다다음주엔 운동 용품 쇼핑을, 그다음 주엔 영화를 보러 가는 약속들이 계속해서 잡힌다.
띠리리링-
엄마가 집에 얼른 들어오라며 전화를 건다.
정신 차려보니 10시 30분이네..
언니랑 헤어지고 얼른 집으로 뛰어간다. 엄마가 나 기다린다고 잠을 못 자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하루가 끝나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황금 같은 방학 또한 끝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