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거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SHOOP 리슙 Jan 31. 2024

섣불리 생략하지 말 것

이심전심은 우선 넣어둬요



예전에 VMD를 하던 시절 한 달에 두 번 생화를 주문하고, 매장 분위기에 맞게 배치하고, 관리하는 일도 내 업무 중 하나였다. 당시 거래 업체에서는 먼저 물어보지 않는 이상 꽃 이름과 관리법을 알려주시지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물어보고 유튜브에서 본 대로 따라서 나름 신경 써서 관리했다. 그래서 그런지 주문한 꽃 대부분은 보통 2주 정도 갔다.

하지만 라넌큘러스랑 거베라 종류는 그렇지 않았다. 매일 물을 갈아주고, 끝의 줄기를 조금씩 잘라줘도 소용없었다. 며칠 지나고 나면 줄기가 곧 흐물흐물해지고 물러터지는 거였다. 이런 안 좋은 기억 때문에 그 뒤로도 얘네 종류는 피하게 됐다. 집에도 두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친절한 사장님을 통해 알게 됐지 뭔가! 이런 애들은 물도 조금 주고, 줄기도 사선이 아닌 일자로 잘라줘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도 여쭤보기 전에 먼저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꽃 명칭도 한 번 더 알려주시서.

이전 거래 업체는 무슨 꽃을 사든 항상 꽃병의 반 정도 올만큼만 물을 채우면 된다고 했던 기억이 얼핏 스쳤다. 

역시 꽃은 잘못이 없었.


어제 구매한 그림처럼 휜 줄기와 송이


이처럼 소비자의 긍정적 인식에 기여하는 전문성은 사소해 보이는 짧은 몇 마디에서 갈리는 거 같다. 오랫동안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상대방이 다 나처럼 알고 있을 거라는 무의식적인 전제를 의식적으로 배제한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


나 역시 운영하는 입장으로서 수시로 재장착하는 관점이다. 학부모님께서 아무리 아이를 지금까지 쭉 키워오셨고, 대학까지 간 다른 자녀가 있더라도 지금,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과 전형마다 천차만별인 입까지 다 아실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그렇기에 항상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하려 노력한다. 수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내게 익숙한 게 상대방에게는 생소할 거란 생각을 기본적으로 염두에 둔다.


차라리 '그 얘기는 이미 알고 있어서 말씀 안 해주셔도 괜찮아요'라며 먼저 얘기를 듣는 게, '그건 왜 말씀 안 해주셨나요?'라고 나중에 얘기 듣는 거보다 훨씬 낫다.

이심전심은 아무 때나 통하지 않는다.


작년에 같은 꽃집에서 구매한 꽃. 여전히 한결같으신 사장님.




낯설고 어색한 상황에서, 또는 친하지만 나는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누군가가 곧잘 세부 사항과 질문은 생략한 채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 쏟아내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 나중에 상대가 필요하면 알아서 물어볼 거란 안일한 기대가 기조에 깔려있는 듯하다. 애초부터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는데 안 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냥 귀찮아서? 아니면 상대방도 어느 정도 알 거란 근거 없는 믿음이나 막연한 착각 때문에?(만약에 다른 개인적인 앙심 때문이었다면 내가 여기서 할 말은 없다) 어찌 됐든 상대의 입장보다 내 입장만 신경 쓴 탓에 벌어진 일이다. 때론 아예 생각조차 못 해서 일어나기도 한다. 일방적인 책임 전가는 소리 없이 말을 타고 넘어가 부정적 감정을 전이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궁금한 게 있어도 먼저 물어보지 않는다. 의문이나 불편한 점이 생겨도 표현하지 않은 채 조용히 관심을 끄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한 번 등 돌린 마음은 다시  되돌리기 쉽지 않다. 훨씬 까다롭고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러므로 뭔가를 설명할 일이 생겼을 때는 같은 분야의 스승이나 선배가 아닌 이상 늘 자세히 이야기하는 편이 좋다.
직장 생활을 했을 때처럼 학원에서도 계속 되새기려 노력하는데 가족과 친구 사이에도 필요할 때가 많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째 서른셋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