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거울

배려치

by LEESHOOP 리슙


쉽게 쉽게 글 쓰려 마음먹어도 마음 어러워 쓰기 어려웠다.



생각이란 게 마구잡이로 증식하다가 임계를 넘동으로 흩어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새로 태어난 생각과 스스럼없이 만날 테다.

아니면 맞춰 놓은 온도에 도달고 난 후 저절로 멈추는 에어컨이 작동면 좋겠다. 그면 후회와 걱정 낮춘 채 현재에 쾌적하게 머무를 테다.


하지만 행히도 금 내 머릿속은 시원찮게 굴러가는 중이다. 모든 게 과부하다. 미 다녀간 상념과 아직 오지 않은 상념지 뒤죽박죽이다. 장마철 습기 같은 각들이 주렁주렁 맺혀 마음 푹푹 삭아다.


제습이 필요하다. 글 쓰기 망설여지는 굽굽한 기분을 키보드로 눌러대 본다.




근래를 되돌아다. 그렇게 번잡했을까.

배려할 줄 아는 능력-'배려'를 거의 다 써버려서 그런 게 분명하다. 미 간당간당하게 남았을 때도 애써 모른 했다.

'나 아니면 누가 해.', '그래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자.'

선의의 결심이 후회로 돌아는 경우가 는데 요새가 랬다. 을 넘는 배려는 크게 세 가지 결과를 가져온다.




1. 마음에 탈이 난다.


국어사전에 배려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란 뜻이다. 배려는 마음의 힘이 필요한 일이다.


사람마다 음식 섭취량이 다른 건 각자가 지닌 힘, 소화력이 달라서이다.

배려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지닌 마음의 힘은 저마다 다르다.

래서 지나친 배려는 과식과 같다. 내 마음의 소화력, 이해력을 무시한 채 타인을 받아들 결과이다.

그러다 보면 서운함과 억울함 혀서 나 물론 내 주변롭게 한다. 말에서든 행동에서든 티가 나 곁의 사람을 찌르 마련이다.


그러니 내 마음의 소화력을 넘어서는 배려는 당히 거부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도 관계도 건강하게 돌볼 수 있다.




2. 자유를 뺏긴다.


과도한 헤아림은 스로에게 감옥이다. 상상 속에 지도 않은 제3의 감시자, 제4의 감시자까지 만들어 스스로를 감시하고 억압다. 상상의 감옥 속에서 무수한 야기이 끊임없이 아지는데 거진 다 비극이다.

'저 사람이 혹시나 이게 필요했던 거 아닐까', '내가 너무 세게 말했나?', '날 나쁘게 보면 어떡하지?' 등등


지나친 염려가 점점 쌓이면 쌓일수록 눈치 볼게 많진다. 눈치 볼수록 주눅 들고 위축다. 축되면 창의력 쪼그라든다. 사유가 자유롭게 활개 치지 못한 채 고꾸라진다.

꼭 필요한 배려만 하는 관이 나의 날개를 지다. 나를 자유롭게 한다. 그 이상의 배려는 무거운 족쇄일 뿐이다.




3. 자유를 빼앗는다.


선을 는 배려는 타인에게도 감옥이다.

자칫하면 원치 않은 동정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것만큼 불쾌한 일도 드물 것이다.


과도한 배려는 지나친 상상에서 나오고 지나친 상상은 생각을 왜곡시켜 있는 그대로를 못 보게 한다. 편견의 감옥에서는 나도 타인도 갇혀버린다.


배려는 <配 짝 배, 慮 생각할 려>로 이루어져 있다.

둘 다 편해야 배려이다. 하지 않아도 될 배려까지 해서 괜히 서로 불편하게 만들지 말자.






배려의 경계에 대해서 곰이 생각해봤다. 결국 경계선을 넘는 배려는 구도 유쾌하지 했다.

그래서 내 마음의 자유까지 침범하지 못하도록 '거절'이라는 방파제를 잘 세워놓아야 한다. 마음의 한계가 날 선 감정과 태도로 휘몰아치기 전에 말이다.

나 역시도 타인의 마음을 헤치면서까지 배려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배려의 경계선을 신경쓰더라도 배려치 자체를 줄이고 싶지는 않다. 배려치는 충분히 키울 수 있고, 키워야만 하는 능력이다. 좋은 배려심은 감 능력을 향상시키고 선한 영향력을 끌어주는 원동력이 때문이다.

평소 신체 운동처럼 꾸준히 마음 근육을 단련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배려의 경계선도 점점 더 확장되리라.


적어도 정으로 마음에서터 우러나온 축복 해줄 수 있는, 공감 정도는 마구잡이로 퍼줄 수 있는 배려 부자는 되고 싶다. 늘도 배려치를 한 칸씩 늘려본다.


2022.5.26 여수 바다 위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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