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용사들을 자주 안 썼더니 근질근질하다.그동안 했던 일들은객관적이고 딱딱한 명사들을필요로 했다.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가령시청에 접수하는 신청서나 정수기렌탈 계약서 같은 문서처럼 말이다.끽해야 '좁은, 높은, 어려운' 정도만 썼을까. 그것도 구두상으로만 썼을 뿐, 문서상에 쓸 일은한 차례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을 적시한 명확한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관적인 느낌과 생각이 목적인글쓰기도 분명 필요하다. 전자는 일과 같다면 후자는 쉼과 같기 때문이다.쉼이 있어야 머릿 속도 정리되고 새로운 힘을 얻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형용사가 잔뜩 쓰인 글을 쓰고 싶나, 생각하니 잃어버린 여름에 대한 보상 심리 탓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계절의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게 못내 억울했다. 올해는 유난히 날씨가 의뭉스러워 종잡을수 없었다 치더라도 어쨌거나 난 놓친 게 확실했다.
작년 같았으면
꽃을 사두고 맥주를 마시고 인센스를 펴놓고 일요일 저녁에도 주저 없이 나가 땀으로 등을 적시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저녁 뜀을 마무리하고 자주 수첩에 글을 적었을 것이다.
재작년 같았으면
텀블러에 백포도주와 얼음을 담고 모기 기피제를 뿌리고 책 한권을 가방에 넣어 그늘 진 공원 벤치에서 읽고 가끔 고개를 들어 반질반질한 코트 위에서 농구하는 아이들과 조그만 아이가 헬멧을 쓰고 아빠와 킥보드를 타고 다니는 걸 지켜봤을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일 탓도 있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막연한 죄책감때문이었다.'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지금 이런 걸 쓸 때가 아닌데. 다른 할 일들이 넘치는데.' 그러다 냉정하게따져봤다. 글쓰기가 정말 미룰 일인가? 아니, 결코 그렇지 않았다. 글쓰기가 부담을 준 적도 많았지만 그보다 도움을 줬을 때가 훨씬 많았다. 때로는 정신과 의사와 같았고, 해결사 같았고, 친구 같았고, 애인 같았고, 가족 같았고, 신과 같았고, 나와 같았다. 그렇기에 글쓰기를 미뤄두는 건 뭔가 배은망덕한 일이다. 평생 갚아도 모자랄 은혜이니 계속 조금씩이라도 써서 갚아나가야 한다.
글을 쓰려할 때마다생겼던 막연한 죄책감은 결국 내가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립하면 사라지는 문제였다.글쓰기가 당장 수익을 낼 수 없고 지금 나의 생업과 특별히 관련되지 않았다고무작정 미뤄두어선 안된다. 건강을 지키는 게 중요한 일이듯이 글쓰기도정신 건강을지키는 중요한 일이다. 뿐만 아니다. 불안과 고통의 심리적 최전방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무기인 동시에 그저 그런 무감한 어른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계속 나를 깨어주는 연장이기도 하다.
덕분에지금 글을 쓰는 나는 점점 마음이 맑아지고 개운해지는 중이다.감각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못썼던 형용사를 실컷 쓰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무용하게 늘어진다. 작년 여름의 어느 날처럼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