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을 때를 알려줘
사랑한다는 표현을 아낌없이 쓸 수 있는 몇 가지가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엄마, 하늘, 음악, 산책, 커피, 저수지, 향수, 오렌지, 달리기, 재키, 늦잠, 언니 등. 가만히 헤아려보니 백 개 정도는 더 가뿐하게 A4 용지 앞뒤면으로 빼곡히 적을 수 있을 거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다시 스무 개 정도 추려본다.
'가장 사랑하는'의 선정 기준은 '포기'이다. 만일 '가장 사랑하는'스무 개와 '사랑한다고 하기에 애매한' 여든 개가 충돌했을 때, 후자를 모조리 포기할 수 있을 정도여야 '가장'의 자리에 합류할 수 있다. 이 정도면 꽤나 큰 포기로, 일상에서 재빨리 일어나는 소소하고 습관적인 포기(예를 들어 늦잠을 자기 위해 아침밥을 포기하는 일)와는 다른 셈이다. 생각지 못한 갈등과 고통이 뒤따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혹은 그 이상 마주칠 수밖에 없는 포기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나는 포기 중 하나는 22년 3월에 있던 일이다. 한 달 가까이 상주보호자로 병원에 있어야 했고 나는 잠과 수면, 커피와 산책, 저수지와 달리기를 포기해야 했다. 그렇지만 갈등도, 아쉬움도 전혀 없었다. 엄마의 보호자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사랑은 매사를 당연하게 만들어 갈등을 덜어주는 재주가 있다. 큰 결단을 내리는데 뒤따르는 고뇌와 수고마저 덜어준다. 그래서 그 당시의 마음은 오히려 평온했던 기억이 난다.
동시에 사랑은 언제 내려놓고 떠날지를 아픔이나 깨달음을 통해 알려주기도 한다. 때문에 사랑할수록 일은 쉽게 풀리고, 상처는 잘 아물어 간다. 만일 사랑할수록 괴롭다면 또는 포기가 안 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닌 떠나보낼 때가 한참 지난 집착이나 오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