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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래빗 May 13. 2020

5월은 완두콩이 나오는 계절

첫번째 이야기



샤브샤브 안 좋아하는 어르신이 있을까요.

어버이날이지만 식사 조차 안 하시겠다는 부모님을 '생활 속 거리두기' 시작한다고 모시고 나왔습니다. 그냥 짜장면이나 시켜 먹자는 말을 믿는 자식들은 없겠죠?

딸들 근처 사시겠다고 40년 살던 고향 떠나 올라 오셨는데 아시는 데가 없어 다니시지도 않으시거든요. 그나마 백수인 제가 틈틈이 모시고 다니는 중입니다.

오늘 온 곳은 노루궁뎅이 버섯으로 유명한 샤브샤브집입니다. 여기 올 때마다 옛날 우리집 주방 생각나서 편안했거든요. 인테리어가 워낙 90년대 스타일이라.. 부모님 처음 모시고 왔는데 너무 좋아하십니다. 서브 해주시는 여사님이 이것저것 챙겨 주시니 아빠는 절로 팁도 나오시네요. 부모님 두 분과 즐겁게 식사하는 순간이 늘 감사하죠. 이러려고 내가 열심히 살았구나 생각도 들고. 20년째 변함없는 돈봉투 무게에도 좋아라 해주십니다. 물론 다시 김치랑 반찬값으로 고스란히 제게 돌아올 거라는 것도 잘 알죠. 그래도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매일을 어버이날처럼 해드릴 수는 없지만, 어버이날을 핑계로 맛집도 모시고 올 수 있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5월은 완두콩이 나오는 계절.

장여사님을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아빠랑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왔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있던 마트 매대 위에 완두콩 주머니가 마치 시골집 옷장 속 배개 마냥 켜켜이 쌓여있는 게 아닙니까. 색깔도 좋아라..생각하는 순간 아빠는 완두콩이 사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엄마랑 둘이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고 말끝을 흐리시네요. 언니집이랑 셋이 나누자고 2만원을 계산했습니다. 언니집과 저, 부모님 집은 차로 20분 거리에 있거든요. 동생네만 강북에 살아서 좀 멀리 떨어져있죠.

오후에 멍 때리고 싶어 햇빛 잘 들어오는 거실에 앉아 완두콩을 까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 우리 3sisters도 이렇게 한 주머니 속에서 올망졸망 살았었는데. 셋이 나란히 누우면 엄마가 무거운 목화솜 이불을 덮어서(눌러서) 재워주셨거든요. 두살 터울씩이라 자랄 때 무지 싸우고, 지금도 가끔 싸우며 세월을 함께 하고 있답니다. 언니는 초등학교 선생님, 동생은 이커머스 시장을 휘어잡고 있는 커리어우먼, 저는 백수로 각자의 위치에서 재밌게 인생을 만들어 나가고 있죠.

장여사님은 원래 몸이 허약하신데, 최근에는 계속 소화기관이 안 좋으셔서 병원에서 여러 검진을 받으시고 수액도 맞으셨어요. 예전에는 아프면 약 드시고 나았는데, 요즘은 그게 잘 안되니까 우울감까지 겹치시는 거 같아서 병원 갈 때는 꼭 시간을 내서 가드리려고 합니다.

어제 읽었던 책에서 꽤 괜찮은 문구를 발견해서 엄마에게 말해드렸어요. 늙어서도 건강하려면 방법은 딱 하나, 뱀파이어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엄마는 잘 살아오셨다고...딸 중에 한 명은 과외없이 서울대도 보내셨고, 한 명은 대한민국 공무원 만드셨고, 남은 한 명은 그냥 백수지만 엄마 옆에 자주 와주지 않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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