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 아빠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청도이 식당에서 나와 그랩을 호출했다. 치앙마이 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는 '앙깨우 호수'가 산책 코스로 좋다기에 시간도 적당하고 거리가 멀지 않아 넷째 날 늦은 오후 계획에 넣었다. 걸어서 30분이면 가는 거리지만 내려서도 족히 한 시간은 걸어 돌아다닐 거라 빠르고 편하게 가기로 했다.
우리가 탄 차는 출발한 지 오래되지 않아 치앙마이 대학 캠퍼스 안으로 진입했다. 온라인 사전답사(?)를 통해 본 대로 상당한 넓이의 치앙마이 대학 캠퍼스는 건물이나 길이 놓이지 않은 곳은 대부분 나무와 풀로 채워져 있어 자연 친화적인 인상을 풍겼다. 앙깨우 호수 또한 그런 인상에 한몫을 차지하고 있으리라 기대하던 중에 차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렸다. 호수를 감싸 안은 산책로에 올라서니 앙깨우 호수 전경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눈에만 담기 아쉬워 사진도 몇 장 찍고서 아빠와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산책하거나 조깅하는 사람이 눈에 많이 띄었다. 오후에 졸업식이 있었는지 학사모를 쓰고 있는, 아마도 이곳 학생일 거라 짐작되는 사람들이 일행과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그 때문인지 해 질 녘의 앙깨우 호수 주변은 조용하고 평화로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밝고 가벼운 분위기였다.
나 : 진짜 치앙마이는 앉아서 멍 때리기 좋은 데 천지 아니야? 그래야 사람이 건강해지는데.
아빠 : 근데 더운 지방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처럼 빨리빨리 급한 그런 게 없는 거 같어.
나 : 그런데 아빠, 따지고 보면 더운 지방 아니어도 나 워킹홀리데이 갔을 때 캐나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 그냥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여유 없이 사는 게 아닐까.
호수 한 귀퉁이를 돌자 보이지 않던 저 건너편 안쪽까지 호수가 뻗어있는 것이 보였다. 지난해 12월, 아빠가 교통사고를 낸 날 이야기를 꺼냈다. 책장 정리를 하다가 엄마 전화를 받은 것, 떨리는 목소리의 엄마 말을 듣고 순간 가슴이 무너졌던 것, 그리고. 아빠에게 이제 그만 운전대를 놓으셔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던 것까지. 그건 권유라기보다는 아주 강하고 날카로운 주장, 바른대로 말하자면 강요에 가까웠다.
나 : 지나서 생각을 해보면, 나도 그러고 나서 그다음 주에 혼자 여행 준비하고 끄적이면서 생각을 해보면서, 아빠가 서운했을 것 같기는 해. 자꾸 자식들이 나이 들었다고 하나, 둘 씩 하지 말라 그러면... 뭐, 사람이 늙는 게 원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나는 다른 면으로는 아빠가 연배에 비해서 되게 건강하다고 생각하거든. 운동 능력이라던가 기억력이라던가. 나도 운전하다가 차가 막힐 때나 신호 기다릴 때는 딴짓을 하거든? 나도 잘하는 거는 아닌데, 아빠도 그런 버릇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대처하는 반응 속도나 주의력이 (나이 때문에) 약간 더 안 좋아진 거겠지? 아예 운전습관을 바꾸지 않는 한은 계속 그럴 가능성이 있지. 습관을 바꾸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니까.
말을 마치고 아빠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묵묵히 걷고 있는데 역시나 아빠는 말이 없다.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저 이 대화 주제가 불편한 것인지 아빠의 표정이 읽히지 않는다. 할 수 없이 하려던 말을 계속 이었다.
나 : 그러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어릴 때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가, 나이를 먹어야 할 수 있는 일들이 한두 가지 씩 늘어나는 거잖아. 술은 스무 살이 되어야 마실 수 있고 이렇게. 그래서 어릴 때는 빨리 나이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어른이 된 다음에,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내가 할 수 있었던 것들이 다시 하나둘씩 없어지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여행 오면서 아빠랑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하고 싶었는데, 있는 그대로 뭐랄까 사람이 혹은 남자로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라든가 늙음을 대한다는 것이라든가. 뭐,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걸 아빠한테 한 번 물어보고 싶었어.
아빠는 끝내 말이 없다. 듣기 싫은 소리였다면 '쓸 데 없는 소리를' 하면서 고개를 젓기라도 했을 텐데 아무래도 바로 대답할 수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더 보채지는 않았다. 아직은 많이 남아 있다. 지금 걷고 있는 산책로도, 치앙마이 여행도.
그리고 아빠의 삶도, 많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여전한 나의 욕심으로, 아빠가 운전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
해 질 녘이 다 되어가서 그런지 덥지 않아 좋았다. 걷다 멈춰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걷고를 반복했다. 어느새 아빠와 나는 호수 건너편에 와 있었다. 저 건너 우리가 출발한 지점이 조그맣게 보였다. 아빠는 걷다가도 주변에 커다란 나무가 보이면 어김없이 나무에 다가가서 기둥을 만져보고 꼭대기를 올려다본다. 어렸을 적부터 산에서 나무하는 데에는 아주 이골이 났다는 분이 태국에 와서는 내내 나무에 관심이 제일 많다.
나 : 아빠는 콕 짚어서 언제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아빠 : 글쎄... 40대 후반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창 일할 때.
나는 아빠가 어린 시절이나 20대 초중반의 한창 젊었을 때를 이야기할 줄 알았다. 왜 하필 40대 후반일까. 내 주변 40대 초중반 형님들은 벌써부터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데.
나 : 아빠가 40대 후반이면 내가 10대 후반이니까 나 고등학생 때? 왜 하필 그 때야?
아빠 : 그 나이 때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많이 하고 그랬으니까.
나 : 사십 대 후반에? 더 젊었을 때가 아니라?
아빠 : 아휴, 더 젊을 때는 정신없었지. 그때는 회사 들어가서 쫄따구... 휴가도 마음대로 못 내고 그럴 땐데. 회사에서 중간급 이상 됐을 때...(그 때가 좋지)
나 : 뭐가 그렇게 하고 싶어? 아빠가 어제 그 얘기했잖아. 하고 싶은 게 되게 많은데 나이가 많아서 서글프다고.
어제 치앙다오에서 아빠는 그런 말을 했다. 하고 싶은 게 아직도 많은데, 나이가 들어 서글프다는. 아빠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나는 아빠에게 하던 걸 그만 하라고 한다. 그건 진심으로 아빠를 위한 말이었지만 아빠를 보는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아빠 : 이제는 좀, 돈 벌려고 하는 건 좀 내려놓고. 나이가 있으니까. 손주한테 글씨라도 하나 써 줄 수 있게끔 붓글씨도 배우고 싶고, 목공 이런 거 했으니까 이거를 팔려고 하는 게 아니라 뭔가 만들어가지고 시골에서 펜션 하면서 벤치 같은 거를 만들거나 원두막 같은 걸 짓고 집 한 번 손질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어.
나 : 아, 아빠 근데 펜션 겁나 빡세. 장난 아니야, 내가 알기론.
아빠 : 힘들다고?
나 : 내가 알기로는, 그게 일이 진짜 많데. 잡다한 일이. 손님들 상대하는 것도 그렇고 되게 힘들다고 들었어 나는.
아빠 : 돈 벌라고 크게 할 필요 없이 작게 하는 거니깐.
나 : 그게 말이 편해서 하는 말이지, 돈 벌라고 하는 게 아니면 뭐하러 펜션을 합니까. 어쨌든 최소한이라도 유지를 하려면 벌어야 하는 게 있는데. 그거 진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이 많데.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학교 자유 과제가 있었는데 뭘 알지도 못하면서 겁도 없이 '조선왕조 5백 년 역대 왕들'에 대해 하고 싶다고 아빠에게 말한 적이 있다. 당연히 아빤 그게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어마어마한 일인지 나를 이해시키려고 애를 쓰면서 말도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땐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니 지금 생각해도 말이 정말 안 되는 생각이긴 했다. 그땐 그런 아빠가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내가 아빠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다. 엄청 힘들데, 일이 많데, 싹둑.
나 : 또 뭐하고 싶어?
아빠 : 산에도 가고 낚시도 가고.
나 : 산하고 낚시는 그동안 많이 갔잖아. 그냥 놀고 싶은 거 아니야? 아하하.
아빠 : 그냥 놀고 싶은 거지.
나 : 그냥 놀고 싶은데 체력이 안 받혀줄까 봐?
아빠 : 체력이 아니라 그럴 여유가 없다는 거지.
나 : 아이, 돈만 많이 안 들이면 되지 뭐 아빠 나이에 여유가 없을 이유가 있나.
곱씹어보니, 내가 생각이 짧았다. 나이가 든다고 여유가 저절로 생기는 법은 없는 거였다. 아빠는 여전히 말도 많고 탈도 많으며, 해야 할 일도 많은 복잡한 세상을 산다. 그 여유의 의미가 돈이라고 해도 그렇고, 마음이라고 해도 그렇다. 돈이든 마음이든 나이 먹는다고 여태 없던 여유가 뚝딱하고 생길 리가. 나는 여전히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생각이 짧고 성급하다. 이곳에서는 내가 아빠보다 앞서서 걷고 있지만 아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의 길을 나보다 먼저 걷고 있다. 간격은 영영 줄어들지도 벌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아빠에게 묻고 싶은 건 딱 하나 일지도 모른다.
아빠, 먼저 걷고 있는 거긴 어때?
앙깨우 호수를 한 바퀴 돌아 그 길로 치앙마이 대학교 정문까지 걸어 나오는 데까지 50분쯤 걸었다. 정문을 나설 때는 해가 거의 넘어가서 어둑해졌다. 구름이 조금 끼어 있어 호수 위로 번지는 석양을 아주 말끔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어제 치앙다오에서 산길을 산책했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오늘 앙깨우 호숫가 산책 역시 좋았다.
치앙마이 대학교 정문 건너편에는 야시장이 들어서 있다.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방콕이나 치앙마이의 여느 야시장들처럼 몸에 걸치는 것, 바르는 것, 몸에 좋다고 하는 것, 휴대폰 액세서리, 생활용품, 인테리어 소품과 기념품에 각종 길거리 음식과 푸드 코트까지 있을 건 다 있다.
야외 푸드코트에 있는 여러 식당 중에 가성비 좋은 스테이크 맛집으로 유명한 곳에 갔더니 이미 자리가 꽉 차 있어서 30, 40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단다. 밥 먹고 야시장 구경을 하느냐 야시장 구경을 하고 밥을 먹느냐의 차이일 뿐이라 메뉴를 먼저 골라 놓고 연락처를 남겼다.
한 잔에 30바트 짜리 생과일주스를 각자 하나씩 손에 들고 야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아빠는 말로는 돌아갈 때 엄마에게 줄 기념품을 하나 사두어야 한다면서 딱히 파는 물건들에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앞으로 남은 일정 중에 큰 야시장이나 현지 재래시장에 갈 예정이 있어 꼭 이곳에서 무얼 살 필요는 없었다.
길거리 음식을 파는 곳에서 돼지구이 꼬치인 '무삥'을 하나 집어 들었다. 달짝지근하고 짭조름한 양념소스를 바른 돼지고기 꼬치를 불에 구운 거라 우리 입맛에도 거부감 없이 맛있다. 아빠에게도 하나를 권했는데 아빠는 '아이 싫어' 하면서 내민 손이 무안하게 손사래를 친다. 예상치 못하게 과민한 반응에 머쓱해진 나도 은근히 기분이 상했지만 별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건 다음날 벌어질 사태의 작은 전조였다. 물론 그땐 몰랐지만.
더 이상 둘러볼 곳도 없겠다 싶을 즈음 딱 맞추어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여전히 만석이라 앉을 곳을 고를 수가 없어서 서빙하는 분이 안내해주는 곳에 앉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자리가 조리 부스에 붙어 있는 바 테이블이었다. 투명 유리창으로 분리되어 있긴 했지만 앉은자리 바로 코 앞에서 고기를 굽고 음식을 플레이팅 하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음식을 기다리면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좁은 부스 안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사람은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주로 그릴 앞에서 각종 스테이크와 버거에 들어갈 패티, 가니쉬를 굽고 다른 한 명은 조리된 음식을 플레이팅 하거나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둘 다 손이 아주 빠르고 호흡이 척척 맞아서 보는 내가 다 흥겨웠다(정작 조리하는 둘은 힘들겠지만). 그중에서도 플레이팅 하는 솜씨가 예술이어서 각기 다른 음식마다 다른 느낌으로 플레이팅을 재빠르게 척척 해내는데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다. 옆에 앉아 같이 보고 있던 아빠도 완전히 빠져들어서 서로 감탄해 마지않았다.
나 : 아빠, 저분은 <생활의 달인> 나오셔야겠는데.
멋들어진 플레이팅에 맛도 훌륭한 쇠고기 스테이크 2인분을 먹고 낸 값은 498바트. 우리 돈으로 약 2만 원이다. 메뉴를 보며 확인한 돼지고기 스테이크는 여기에 절반 정도 가격이었으니 사람들이 괜히 많이 찾는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우리나라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온 곳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아직 저녁 8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내일은 새벽 3시 40분에 일어나 4시부터 이동해야 하기에 저녁을 먹고 바로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날 무리가 없으려면 적어도 아홉 시 전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자고 일어나 내일이 오면 어느덧 8박 9일 여행의 절반을 지나게 된다. 내일 이후로는 보낸 시간보다 보낼 시간이 적어진다. 여행만 오면 이렇게 흐르는 시간이 귀하고 아깝다. 가만 생각하니 여행 오기 전 아빠와 지난 1년 동안 함께 있었던 시간을 다 합해도 4박 5일이 채 안될 것 같다. 때때로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셔도 한 달에 한 번 꼴, 명절에도 자고 온다거나 한 적이 없으니 한 번 만날 때 보내는 평균 시간이 네댓 시간이나 될까. 후하게 쳐서 매번 볼 때마다 여섯 시간을 있었다 쳐도 1년이면 72시간, 만으로 3일이다. 아빠와 내가 이곳에서 보내는 8박 9일은 평소로 따지면 3년 치 시간 분량인 거다. 평소에는 대부분 다른 가족들과 함께 만나는 것을 감안해서 시간의 밀도까지 계산하면 3년 그 이상일지도.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흐르는 시간이 더욱 아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