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이별, 관성의 법칙, 성숙의 계기
살다 보면 겉으로는 괜찮아도, 혼자 끙끙 앓는 힘든 순간을 마주한다.
그 수 많은 순간 중 하나만 꼽아보자면 바로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이다.
요즘 해외에 혼자 살며, 코로나 팬더믹을 맞이한 나의 일상과 마음은 이별의 후유증을 겪을 때와 같았다.
한 때 사랑했던 연인과의 이별. 잠들기 전 그와의 전화처럼 일상에 그가 스며들었어도, 우리는 이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별의 횟수가 늘어도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몇 주 전부터, 사내 메신저에는 '비활성화'된 프로필이 늘었다. 받고 싶지 않은 퇴사하는 직원들의 마지막 인사 이메일도 읽게 되었다. 그들 중엔 친했고, 대화를 나눴던 동료도 있었다. 여행업계가 어려워지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해고 되었다. 내부에서는 정리 해고가 있을 거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을 마주하니 마음이 아프다. 안녕이라는 작별 인사가 내게는 너무 어렵다.
동화같던 암스테르담 출근길 풍경은, 재택근무로 인해 내 집 안 풍경으로 변했다. 활기빼면 시체인 암스테르담 길거리도 고요와 적막만이 가득했다. 이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리고 두려웠다. 괜찮아지겠지? 라는 작은 희망은 간절함을 담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그 상태로 운동하려고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한다. 관성의 법칙이 없다면 이별은 쉬울 것 이다.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오면, 우린 그 상대를 계속 생각하려 한다. 습관처럼 통화버튼을 누를 뻔 하고, 맛집을 가면 그가 생각난다. 그가 자주 불러줬던 노래를 나도 모르게 혼자 흥얼거린다. 관성이라는 놈이 나를 괴롭힌다.
부푼 마음으로 암스테르담에 처음 온 날이 기억난다. 귀엽고 오목조목한 도시는 화려하진 않지만 따듯했다. 매일 서로를 반기며 하루를 커피 한잔으로 시작하던 동료들이 그리웠다. 코로나 시국에도 우리 팀원들은 함께 일하고 싶어 주 1회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규제 때문에 회사로 출근하진 못했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었다. 줌 켜두고 같이 운동하기, 커피 마시기, 공부하기 등등. ‘관성의 법칙'이 우리 심리에도 재현된 것 같다. 익숙함에 비해 변화(이별)는 어려운 일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보니 달라진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더는 그가 그립지 않다. 그와 나는 돌아갈 수 없는 남남이란 것을 인정한다. 진짜 안녕을 고한다. 이제 내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해 쓴다.
방구석에서만 혼자 지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비효율적으로 소비되는 시간이 싫다. 발전 없이 지체되는 내 자신을 예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배달 음식을 줄이며 건강한 식습관으로 개선했다. 꾸준한 운동으로 나의 몸을 더 사랑해줬다. 규제 안에서 여행도 다니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면서 나에게 활력을 선물한다.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바뀌었다. 코로나가 하루빨리 종식되었으면 좋겠지만,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회귀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머지않은 훗날 “우리 그때 마스크 쓰고 다니고, 모임도 못 했잖아. 우리 다 힘들었지만 잘 이겨냈어"라고 말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마스크의 일상과 코로나 관련된 모든 뉴스가 하루빨리 과거형이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나는 최근에 헤어지지 않았다. 감성에 젖어 쓰는 글이 아니니 재미로 봐주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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