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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H Apr 05. 2022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잘못은 일어났다. 하지만 아무도 잘못한 사람은 없다.

회사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금방 그만뒀다. 이제는 이런 상황들이 딱히 놀랍지 않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고 다 같이 인사하고 함께 일하던 직원이 나간다고 슬퍼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다 보면 사람이 들어오고 빠지는 것도 더 이상 내부 직원들에게는 특별할 것이 아니다.


최근, 다른 부서의 분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새로 들어온 분은 어때요?"

"아직은 일을 인수인계하는 단계여서요. 그런데 이쪽 경험도 있으시고 잘하실 거 같아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왜 일을 알려드리면 드릴 수록 곧 그만두실 거 같다는 생각이 들까요?"

"ㅋㅋㅋㅋㅋㅋㅋ 왜요?"

"우리 회사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해서? 계속 물으시더라고요. 이건 왜 이렇게 해요? 저건 왜 그 시스템을 안 쓰는 거예요?"

"왜 안 쓰는데요?"

"대표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거죠 뭐."

"이전 분도 비슷한 이유로 나가지 않았어요?"

"뭐 비슷했죠."

"그럼 바꿔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근데 그 방식으로도 꾸역꾸역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나. OO님 같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했다. 이건 그렇다면 누구의 잘못일까. 말도 안 되는 방식을 고집하는 대표의 잘못일까. 말도 안 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꾸역꾸역 일을 해내고 있는 직원들의 잘못일까.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취준생들에게 분명히 말한다.
입사율보다 퇴사율이 높은 회사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입사율보다 퇴사율이 높은 회사에 다니는 내가 이딴 말을 하다니...)


입사율보다 퇴사율이 높은 회사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로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에 체계화가 없는 것을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업무처리에 체계가 잡히지 않았다는 것은 업무 R&R 역시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포함한다. 사람이 적을수록, 부서가 세분화되지 않을수록 '누가 맡아야 하지?'라고 생각되는 잡무들이 생긴다. 그 잡무들은 자연스럽게 그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질 것이다. (사실 이런 업무는 지금 사내 사람들 중 누구에게 가도 이상하다.)


일을 시키는 대표와 회사는 모른다. 이것이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니 될 수 있는 게 아니고 이것은 분명하고 명확한 퇴사의 원인이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회사를 어느 정도 다녀 이런 방식의 업무가 익숙해진 사람보다 처음 들어온 사람이 훨씬 더 그만두기 쉽다. 일주일만 다니면 안다. 이 회사가 업무체계가 제대로 잡힌 회사인지 아닌 회사인지. 회사를 5일 동안 다녀보고 이제 이 회사만 나가면 더 이상 보지 않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퇴사를 결정하는 건 단 5분이면 된다.


그럼 이제 이 회사는 새롭게 유입되는 인원이 없는 이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로만 겨우겨우 살림을 꾸려가야 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은 사람들에게 업무과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 이제 그 사람들도 퇴사를 선택하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매일 같이 잘못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잘못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이 그 잘못을 깨우쳐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럼 이 상황에서는 누가 잘못을 하고 있는 걸까. 이젠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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