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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수 Dec 15. 2020

내 글씨는 아빠를 닮았다

오늘, 아빠의 마지막 메모를 옮겨 적었다 


초등학교 때 쇼트커트로 머리를 잘라주던 아빠의 손, 사각, 사각거리던 가위 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눈이 감길 때쯤 긴 마루 끝에서 괘종시계가 울렸다. 아빠와 함께 올랐던 뒷산, 어깨에 카메라를 멘 아빠…. 아빠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그래서일까? 입학식과 졸업식 사진에 있는 아빠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딱딱하고 어색하다.


아빠가 중환자실에 입원하기 두어 달 전쯤,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 솔직히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빠가 원하는 것 같아, 아침 일찍 길을 떠났다. 아빠는 그 짧은 여행이 나와의 마지막 여행이 될 줄 알고 있었던 같다. 그 후 나는 중환자실에 의식 없이 누워 있는 아빠와 마주했다. 말을 하지도, 눈을 뜨지도 못하고 누워 있는 아빠. 짧은 면회가 끝나면 서둘러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중환자실을 오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같은 서울이었지만 그 길은 끝나지 않는 미로처럼 내 마음을 깊은 곳으로 끌고 갔다.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긴 겨울이 지나갔지만 아빠는 끝내 봄을 맞지 못했다. 그 해 봄은 왜 그렇게 화창했을까? 아빠가 없는 봄, 햇살 속에서도 자꾸만 옷깃을 여몄다. 아빠는 내 곁이 아닌 그 어느 곳에서, 영원히 올 수 없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나는 아빠의 또 다른 부재를 인정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나는 가끔 뜨문뜨문한 기억 속에서 아빠와의 조각난 기억을 맞춰간다. 아빠와 나는 무엇이 닮았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누구는 얼굴이 닮았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냥 하는 말 같고… 

“넌 글씨가 아빠를 닮았어. 저기 꽂혀 있는 엄마 책 표지에 쓴 글씨, 그거 아빠 글씨잖아.” 


‘뭐라고, 저 책 표지에 쓰여 있는 글씨가 아빠 글씨라고. 엄마는 왜 그걸 몇십 년 동안 말하지 않다가 오늘 말하는 거지.’ 


생각해 보니 아빠 이야기는 우리 사이에 금기였나 보다.


‘그래, 나는 아빠랑 글씨가 닮았다.’ 


종이에 글씨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냥 좋아한다가 아니라 무척. 각기 다른 종이의 결도 좋아하고, 펜이 종이에 미끄러지듯 닿는 순간, 종이에 닿으며 내는 사각거리는 소리도 좋아한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소리는 어린 시절 내 머리를 잘라주던 아빠의 가위 소리와 닮았다. 한 자 한 자 종이에 글씨를 적다 보면 무념무상. 그렇게만 시간을 보낼 수 있어도 좋겠다. 글씨 쓰는 회사가 있다면 정말 일 잘할 자신이 있는 데, 아직 글씨 쓰는 사람을 구하는 회사는 없는 것 같고. 


‘아빠와 글씨가 닮았다’는 말에 서랍 깊숙이 넣어 놓은 아빠의 마지막 메모를 꺼냈다. 이 메모는 아빠가 나와 할아버지 산소를 다녀온 다음 쓴 것이다. 아빠는 그 메모를 쓰면서 아마도 당신이 봄을 맞지 못할 것을 예견했던 것 같다. 네모난 잎새, 목표도 없는 목적지. 


아빠는 그 많고 많은 단어 중에서 왜 잎새를 택했을까? 마지막 잎새를 생각했던 것일까? 그것도 네모난 잎새라니…. 


이 짧은 메모는 아빠의 마지막 글이 되었다. 아빠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지만, 내 글씨는 아빠를 닮았다. 닮은 글씨를 나에게 준 아빠, 고마워.   



아빠의 네모난 잎새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빠는 나보다 먼저 네모난 잎새를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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