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독일에서 온 히치하이커
약 3주간, 터키 전역을 돌고 배낭을 짊어진 채 이스탄불의 호스텔로 돌아오니 호스텔 앞 테이블에서 독일인 남자 두 명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호스텔 사장님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들 옆에 맥주를 들고 자리잡았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머리를 딱 절반만 밀어버린, 안경을 쓴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어디를 다녀왔냐고.
내가 마르딘으로 내려가 카파도키아, 산르우르파, 아마스라, 사프란볼루 등을 돌고 왔다고 하자 남자는 멋지다며 검은 천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봉투에는 말린 무언가의 잎이 들어있었고, 남자는 손바닥만한 얇은 종이를 꺼내더니 말린 잎을 깔고는 김밥을 싸듯 말았다.
"그거 혹시 마약?"
나의 말에 남자는 한참을 웃더니 담배라고 말했다. 여행자에게 담배가 비싸서 잎을 사서 말아피우고 있다고, 잎 담배는 아무 바자르에 가면 구매할 수 있는데 매우 저렴하다며 귀중한 팁을 알려주듯 말했다. 오래 여행중이냐고 물었더니 시작한 지 한달 쯤 되었다며, 독일에서 히치하이킹으로 태국까지 왔다고 했다.
그게 가능하냐는 나의 놀란 모습에, 재밌다는 듯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독일에서 대학 진학 대신 직업학교를 택했고, 목수 일을 배운 뒤 큰 가구회사에서 인턴십을 하던 중 지나친 도제식 교육이 힘겨워 여행을 떠나왔다고 말했다. 천으로 만든 배낭 하나에 니체의 책 한 권을 넣고, 휴대폰도 없이 그렇게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여행이 끝난 뒤에는 다시 가구를 만들면서 대학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소년처럼 어린 외모의 그 남자는 나보다 한살이 더 많은 24살이었다.
휴대폰은 왜 없냐고 묻자 그는 그냥 자신만의 원칙이라고 했다. 자본주의 체제에 최대한 복속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자신의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권력의 손에 쥐어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만 아쉬운 점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듣고 싶은 음악을 듣지 못할 때라고 했다.
갑자기 서글퍼지는 그의 표정을 보고 나는 내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그동안 정말 듣고 싶었다고, 노래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중 한 곡이 Bill Withers의 Ain't no sunshine 이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는 가방에서 스케치북 한 권을 꺼내들었다. 여행 다니면서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고 소개했다. 스케치북 안에는 블루모스크의 첨탑, 차도르를 쓴 여인들, 고양이 등이 담겨있었다. 밤이 깊어갔고, 남자는 나에게 다음날 함께 이스탄불을 구경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알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