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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처녀 May 09. 2016

[책갈피] 자기 앞의 생

(2)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

'자기 앞의 생'은 열네 살 고아 소년 '모모'가 고아들을 맡아 키우는 유태인 로자 아줌마와 함께 지내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병과 노환으로 죽어가는 아줌마를 보며 모모가 생(生)이 행복한 것들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아줌마를 파괴해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하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할아버지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몸에 좋다는 박하차만 한 모금 마실 뿐이었다. (...)

"하밀 할아버지, 왜 대답을 안 해주세요?"

"넌 아직 어려. 어릴 때는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이 있는 법이란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p. 12-13.



그 개 때문에 한 가지 불상사가 일어났다. 나는 그 개를 끔찍이도 사랑하게 되었다. (...) 녀석을 산책시킬 때면 내가 뭐라도 된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녀석에게는 내가 세상의 전부였으니까. 나는 녀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남에게 줘버리기까지 했다. (...) 쉬페르가 감정적으로 내게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자, 나는 녀석에게 멋진 삶을 선물해주고 싶어졌다. 가능하다면 나 자신이 살고 싶었던 그런 삶을. (...) 나는 오백 프랑을 받고 쉬페르(개)를 그녀에게 넘겼는데, 그것은 정말 잘 받은 가격이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안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오백 프랑을 접어서 하수구에 처넣어버렸다. 그리고는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두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송아지처럼 울었다. 하지만 마음만은 행복했다. p. 28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p. 69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건, 인간 안에 붙박이장처럼 눈물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울게  돼 있는 것이다. 인간을 만드신 분은 체면 같은 게 없음이 분명하다. p. 91



나는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며 어느 집 대문 아래 앉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 p. 114



하밀 할아버지가 종종 말하기를, 시간은 낙타 대상들과 함께 사막에서부터 느리게 오는 것이며, 영원을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바쁠 일이 없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도둑질당하고 있는 노파의 얼굴에서 시간을 발견하는 것보다는 이런 이야기 속에서 시간을 말하는 것이 훨씬 아름다웠다. 시간에 관해 내 생각을 굳이 말하자면 이렇다. 시간을 찾으려면 시간을 도둑맞은 쪽이 아니라 도둑질한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p. 174



그들에게 얘기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끔찍했던 일들도, 일단 입 밖에 내고 나면 별게 아닌 것이 되는 법이다. p. 242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p.252



"로자 아줌마, 왜 내게 거짓말을 했어요?"

그녀는 정말 놀라는 것 같았다.

"내가?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했다구?"

"열네 살인데, 왜 열 살이라고 하셨냐구요."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로 그녀는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네가 내 곁을 떠날까봐 겁이 났단다, 모모야. 그래서 네 나이를 좀 줄였어. 너는 언제나 내 귀여운 아이였단다. 다른 애는 그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네 나이를 세어보니 겁이 났어. 네가 너무 빨리 큰 애가 되는 게 싫었던 거야. 미안하구나." p. 257



"너는 아주 영리하고 예민한 아이야. 너는 정말 남다른 사람이 될 거다. 훌륭한 시인이나 작가나, 아니면..."

그는 또 한숨이었다.

"반항아가 되거나... 하지만 안심해라. 네가 정상이 아니라는 말은 결코 아니니까."

"나는 절대로 정상은 안 될 거예요, 선생님. 정상이라는 작자들은 모두 비열한 놈들뿐인걸요." p.268



사랑해야 한다.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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