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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처녀 Mar 13. 2017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결심

5. 시리아와 국경을 접한 '마르딘'에 가기로 결심하다


나 마르딘에 가고 싶어요.


터키 여행을 준비하던 어느 날, 우연히 음료수 ‘레드불’의 한 광고 영상을 보게 됐다. 젊은 남자가 금빛으로 빛나는 사막 도시의 건물들을 맨몸으로 뛰어다니는 영상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이 스포츠의 이름은 ‘파쿠르(Parkour)’. 사전에서는 순수 인간의 힘으로 도시와 자연환경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애물들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극복해낼 수 있게 도와주는 훈련 방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건물을 넘나드는 남자의 스킬보다도, 태양이 비치자 빛나기 시작하는 그곳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척박한 평야 위에 우뚝 솟아오른 산처럼 지어놓은 요새 모양의 마르딘(Mardin)이라는 이름의 도시였다. 메소포타미아 평원 한가운데 위치한, 옛날에는 태양을 섬겼던 도시. 그 단순한 색감의 건물들과 태양 빛이 만나 발생하는 순간의 화학작용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시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곳의 치안이 걱정되었다. ‘마르딘’이라고 검색하면 인근에 군대가 배치되었다는 국제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머물며 친해진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거기는 쿠르드 족이 사는 위험한 동네다. 안 가는 것이 좋겠다.”며 만류했다. 이스탄불 사람들도 잘 안 가는 여행지라는 것이었다. 론리플래닛은 분명 "외국인들은 잘 모르지만, 터키인들에게 인기있는 여행지"라고 소개했는데 말이다.



며칠을 고민하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과 저녁에 맥주를 마시다 말했다. 마르딘에 가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사장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외쳤다. "가고싶으면 가야지! 여기까지 왔는데." 맞다. 여기까지 왔는데. 중간에 중국에서 경유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거의 20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하늘길에 뿌렸는데. 터키까지 와서 가고싶은 곳을 안 가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물던 게스트하우스 인근의 피데(pide, 터키식 피자)집 주인아저씨의 마르딘 홍보도 나의 결심에 힘을 보탰다. 피데를 사러 갔는데 벽에 마르딘처럼 보이는 사진이 붙어있길래 "마르딘?"이라고 물었더니 본인이 마르딘 출신이라며 엄청나게 반가워했다. 그는 마르딘이 정말 아름다운 도시이며, 너도 가보면 사랑에 빠질 거라며 향수에 젖은 듯 마르딘 자랑을 해댔다.


그렇게 마르딘 인근 공항인 디아르바키르(Diyarbakir) 공항으로 가는 항공권을 약 5만원에 끊었다. 일주일 만에 친해진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퀴축 아야소피아 내 카페 주인아저씨, 피데집 주인아저씨에게 모두 이별의 인사를 전했다. 터키 전역을 여행한 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노라고 약속도 했다. 약속의 징표로, 내가 가지고 있던 천원짜리 지폐와 동전을 털어서 그들에게 선물했다.


그렇게 나는 황금의 도시를 밟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얼마나 값진 경험들을 할 지, 그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인생은 때때로 마법을 부린다. 그 마법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삶을 제대로 누리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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