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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처녀 Apr 01. 2017

샤프란, 사프란볼루

16. 소박한 삶

사프란볼루는 이스탄불로 회귀하기 전 꼭 들르겠다고 생각했던 장소였다. 아기자기한 선물가게가 가득한 고즈넉한 고택의 도시. 조용한 이곳에서 여행의 여독을 풀고 그동안 배낭에 담아온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보고 무작정 찾아간 게스트하우스는 기대보다 훨씬 좋았고, 원래는 3명이 써야 하는 화장실 딸린 넓은 방을 혼자 독차지할 수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수줍어하면서도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과일을 건넸고, 짐을 풀어놓은 뒤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나는 마을 산책길에 올랐다.


사프란볼루의 골목골목마다 작은 수공예품 가게들이 있었는데, 스카프나 작은 전등 그리고 찻잔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해온 듯 익숙하게 무언가를 만드는 모습은 평화로웠다. 지갑에 손이 가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나는 나의 소유욕을 눌러놓기 위해 노력했다.


무언가를 소비하기 위해 눈이 바빠지는 순간, 그 시간 동안 느낄 수 있는 다른 즐거움이 사라진다는 것. 두어 번의 바자르 쇼핑을 통해 나는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돈과 관련된 유혹에 빠지는 순간, 가지는 것에 목표를 두기 시작하는 순간 못 가진 것이 더 많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몇천원짜리 물건을 사자고 나의 시간을 풍경 대신 물건에 투자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면서, 나는 가게가 아닌 먼 곳으로 눈을 돌렸다.



길이 나 있는대로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도달해있었다. 언덕 너머에는 커다란 계곡이 펼쳐져있었고, 계곡을 따라 샛노랗게 물든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있다보니 한 양치기 노인이 산양 떼를 몰고 언덕에 올라와 풀을 먹인다. 노인은 도로 한가운데 앉아 양들이 풀을 뜯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양들과 그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유대감이 있었다. 양들은 그가 나무막대기로 땅을 탁탁 치기만 할 뿐인데도 말을 알아듣고 무리를 이탈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용히, 시간을 자연 속에서 흘려보내며 나이드는 삶이 부러워졌다.


우리는, 나는 왜 무언가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을까. 언제나 '꿈', '장래희망'과 같은 것이 있어야 했고 그것이 없는 삶은 부끄러운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목표가 커야 근처라도 간다고 배웠기에 목표는 언제나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 같은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목표가 좌절되는 순간 나는 조금씩 더 작은 인간이 되어갔다.


그러나 치열하지 않고 평화롭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치열한 삶의 당위를 고민했다. 왜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이라는 곳이 꿈, 장래희망, 목표를 가지라고만 하고 왜 가져야 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 사회였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쓸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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